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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Oct 13. 2023

말, 그중에서도 '악담'이 가진 힘

(그림 출처:강태진 작가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 최종화)

요즘 브런치에 일기를 쓰지 못하는 건 외근 일정 때문이다. 아침 9시 이전에 출근해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다 오후에 업무를 마치면 몰래몰래 브런치에 일기를 쓰고 6시 딱맞춰 퇴근하는 패턴을 지켜오고 있었는데, 회사가 외부에 큰 전시회를 하면서 전시장 오후 지킴이에 차출됐다. 이번주 내내 1시부터 전시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게 업무다. 사실 이런 지킴이 업무는 전시 콘텐츠에 대한 이해나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고, 과한 노동이나 업무도 없어 그저 '꿀'이라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오며가며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해치지 않는지 살피면서 그들의 눈에 특별히 띄어서도 안되고, 또 찾으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냥 쉴 수 만은 없다. 더군다나 나 혼자 있으면 평소에 갖고만 다니고 읽지 못하는 책이라도 읽을텐데, 직속 상관과 함께 나란히 앉아 4시간 연속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쳐줘야 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더군다나 내 상관은 '욕을 해야 사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욕한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회사 사람이 대상이다.  별 일이 아닌 것도 트집을 잡아 험담을 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자신도 매일 사무실에서 점심을 드시면서,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는 다른 사람을 욕한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적지 않은 연세에도,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고 지나치게 꼼꼼하게 업무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성과는 완전해보이지만, 속도가 너무 더뎌 성과량 자체가 적다. 그러나 이러한 본인의 단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 스타일이 이렇기에, 완벽하게 일하지 않는 다른 모든 직원들이 이 사람의 먹잇감이 된다. 하나만 책이 잡혀도 가루가 되도록 깐다. 젊을 때는 그 면전에 대놓고 까느라 그 밑에서 배겨난 직원 없이 홀로 외로운 임원급 직원이 됐다. 나는 운나쁘게 이런 상관을 만났고, 불행 중 다행으로 운좋게도 이런 사람의 날개가 꺾이고 기세가 조금 누르러진 말년에 부하직원으로 채용됐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욕하는 건 여전히 일상이다. 다만, 이제는 면전이 아닌 그의 밑에서 일하는 나에게 욕을 쏟아놓는다는 게 문제다. 나는 종일 이 사람 입을 통해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험담을 듣고, 적당히 맞장구쳐준다. 내가 받는 월급의 98%쯤, 이 사람의 험담을 응대하는 업무로 받는 거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껏 어찌어찌 잘 견뎌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회사가 올해 연달아 큰 행사를 계획하고 있고, 내 상관이 이 행사의 몇가지를 맡았다는 점이다. 본연의 업무는 제쳐두고 큰 행사를 혼자 끌어안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도 잠시. 본래 남을 욕하는 사람은 타인의 결점보다도 자신의 불안과 조바심을 다른 사람의 흠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목도하며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행사 준비를 맡은 외부업체 직원은 하루가 멀다하고 불려와 인격모독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 그렇게 한바탕 부정 에너지가 넘치고 나면 상사는 나를 불러 또 업체 욕을 한바가지 쏟아놓았다. 멍청하다, 머리가 안돌아간다, 눈치가 없다, 감각이 없다, 촌스럽다, 태도가 이상하다, 대답을 잘 안 한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 서울대를 나온 똑똑한 상관 앞에서 일이 미흡한 업체 직원은 순식간에 바보멍청이천치가 되었다. 나는 상사의 말을 들어주며 네네, 힘드셨겠어요, 너무하네요 라고 응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빠릿빠릿하지 못하단 이유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업체 직원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자칫, 나 역시도 한번 삑사리만 내도, 이 사람의 집요한 면박과 비인간적인 언사를 초래할 거란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러다

어제는, 정말. 정말. 힘든 하루였다. 행사장 당번을 온 종일 이 상사와 둘이 앉아 함께 해야 했다. 눈에 보이는 행사장에 대한 욕이 계속됐다.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이 업체와 관련된 모든 일화가 다시 지금, 여기로 소환됐다. 험담이 거듭되면서 상사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이 행사장 전체의 물품과 세트가 새 것이 아닌 재활용인 듯 하다는 의견이었다. 우리 행사를 위해 새로 제작된 게 아니라, 이전에 했던 어떤 행사의 틀을 재활용하려고 우리의 콘텐츠의 숫자와 크기를 재단했다는 것이었다. 응당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 어쩌겠는가. 이렇게 투덜거릴 게 아니라, 정말 납득할 수 없다면 문제가 있다는 증거를 확보해 잔금을 치르기 전 문제를 제기하고, 계약한 금액의 일부를 차감하던가 계약 위반을 문제삼으면 될 일이다. 옆에 앉는 부하직원에게 주구장창, 귀에 피가 나도록 나쁜말을 반복할 게 아니라. 말이다.


종일을 그런 말로 가득찬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니 만사가 귀찮고 모든 일에 짜증이 났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처럼 '목욕하기 싫어!'하며 도망가는 아이를 보니 부화가 치밀었다. 협박을 하며 욕실로 불러들이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유난히 날카로운 나를 남편이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오늘 회사에~"라며 이런 상사를 모시고 종일 험담을 들어 그런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은 "회사 일은 회사에 두고 집에 와야 한다더라고요."라고 답했다. 자기도 못하면서. 매일 그날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사고와 자기가 맡은 변사사건의 전모를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싶어 하면서. 나는


"일은 두고 오지만, 그 감정은 두고와지지가 않네요."라며 사과했다.


감기로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를 보는데,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상사를 향한 원망으로 치환됐다. 좋은 말도 한두번이고, 두번 이상 계속되면 질리는 법인데. 나는 나쁜 에너지가 가득한 부정적인 말을 종일 들었다. 그리고 봤자해준답시고 적당히 응수하며 같이 맞장구쳤다. 결국 나도 '하청업체 죽이기'에 일정부분 기여한 공범이었다. 귀로 들어온 나쁜 말들이 소화는커녕 제대로 조합되지 않은 채 단어로, 짧은 문장으로 종일 머리를 맴돌았다. 말의 힘이 이렇게 무섭구나. 좋은 말의 에너지보다도, 나쁜 말의 에너지는 훠얼씬 더 막강했다. 다른 사람의 하루를 망치고, 머릿속을 망치고, 그 사람의 관계를 망치기에 충분했다. 아이를 키우며 병행할 수 있는 '나의 좋은 직장'인데, 이 상관의 말을 어떻게 방어하고 막아낼 수 있을까. 마음 속으로 동요를 불러야 할까. 아이와 함께 부르는 헬로카봇 주제가를 계속 읇조려야지. 헬로헬로 나의 친구 카봇, 우리들의 용감한 친구, 어언제나 위허엄할 땐 시계를! 돌려봐요오 ~ 노래를 마음 속에 품겠다 다짐하는 지금, 옆 자리 상사 목소리가 파티션을 넘어온다. "정 기자, 이제 정리해요. 슬슬 행사장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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