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by 상현달

나는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었다. 여러 선생님들 중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가끔은 멋진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가수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꿈들이 생겨났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것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면서 보람된 일이기도 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친구들이 수학문제집, 국어문제집을 가지고 내게 온다. 그럴때면 나는 먼저 친구의 설명을 들은 후에 어느 지점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확인하다.


그리고 친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준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보다 공부 더 잘 하는 친구들보다 오히려 내게 더 자주 물어본다. 친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는 내가 확실하게 알아야하고 또 내가 친구를 가르쳐주면서 한 번 더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공부를 더 하게 된다. 내가 설명한 것을 친구들이 이해하고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마음이 정말 기쁘다.


교육대학교에 입학한 순간 나는 어려서부터 꿈꾸어 왔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길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사골 마을에 사는 없는 형편이지만 부모님은 첫째 딸인 나를 어떻게든 공부시켰다. 아빠는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멀리 떨어져 있는 중,고등학교로 6년 동안 나와 함께 학교를 오고갔다. 치마를 입은채로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차가운 바람이 부나 새벽부터 일어나서 나를 학교에 태워주셨다.


부끄러움이란 지금 내 상황이나 처치에 대한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일 것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오토바이와 함께 하는 아빠, 하루의 처음과 나중을 따뜻한 밥으로 함께 하는 엄마. 결국 나는 그 분들의 사랑으로 교육대에 입학했고 선생님이 되었다.


23살의 여자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처음 출근했을 때의 그 떨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흙수저 가정에서 태어나 내 스스로 과외를 하며 대학교 납부금을 벌었다.사립대학교라면 납부금이 엄두도 못할 만큼 액수가 크지만 국립대학교인 교육대학교는 과외 3개만 꾸준히 하면 한 학기 납부금을 낼 수 있었다. 여기에 장학금까지 받으면 생활비가 어느정도 채워진다. 물론 과모임, 동아리활동 등 대학교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지지만 지금 당장 납부금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상황에 대학교 낭만은 내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다고 납부금만 버느라 대학교의 낭만과는 담을 쌓고 산 것은 아니다. 어려운 가정에 있는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했으며 지역공부방에서 주기적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도왔다. 그때부터 이미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이분은 올해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우리 해봄초등학교에 발령받은 김은정 선생님입니다. 선배 선생님들께서 잘 도와주시고 올바른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소개와 함께 처음으로 많은 선생님들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선생님들에게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했다. 어찌나 떨리던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앞뒤가 안맞기도 하고 목소리는 개미처럼 점점 작아지기까지 했다.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도 이렇게 떨린데, 내가 가르칠 아이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벌써부터 쿵쾅쿵쾅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6학년 7반은 내가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으로 맡게 되는 반이다. 대학교 다닐 때 몇 주 다녀오던 실습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과 1년을 함께할 담임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가 가르칠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있을 것이고 일제히 모두 나를 쳐다볼 것이다. 아이들이 또랑또랑하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하니 입이 마르고 손끝이 떨려온다.


어떤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을까? 나를 보면 무표정으로 있을까? 아니면 웃을까? 아이들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어떤 말을 할까?


이미 여러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긴장되는 것은 여전하다. 얼굴에는 살짝 미소를 띄우며 교탁은 두 손으로 살짝 잡고 중간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기준으로 시선을 두고, 말을 할 때는 좌에서 우로, 앞에서 뒤로 움직이며 모든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손을 두어 번 접었다 폈다하니 한결 긴장이 풀린다. 긴장되면 항상 이렇게 했다. 대학교 시험을 볼 때도 그랬고 선생님이 되는 임용고사를 볼 때도 그랬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 빠르게 움직이던 심장이 점차 원래의 속도로 돌아보고 머릿속에는 신선한 공기가 주입되는 것 같이 상쾌해졌다. 누구는 크게 호흡을 들이쉬기도 하고 또 누구는 눈을 감았다 10초 후에 뜨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손톱을 깨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중얼중얼 말을 하면서 긴장을 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렇듯 각자의 방법대로 긴장을 푸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이를 활용해 여러 가지 어려움도 해결해 나간다.


“드르륵”


역시나 문 밖에서 예상한 것처럼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도 내게로 옮겨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아이들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줄다리기 하기 전에 양 침 선수들은 팽팽하게 날선 줄을 잡고 있다. 그들은 심판의 ’시작‘이라는 외침 소리에 순간적으로 줄을 빠르게 잡아당기기 위해 온 몸에 힘을 응축시키고 있다. 온 몸의 힘을 폭발시키기 위해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지 집중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한 번은 내 눈, 또 한 번은 내 입으로 시선을 계속 옮겨갔다.


아이들과 첫 만남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긴장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런 긴장감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은 익숙함이 되었다. 익숙함은 평안과 마음의 안정을 주어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교실에서 터져 나왔다. 누가 누가를 때리고, 또 여러명이 한 명을 괴롭히고 어느날은 아이들의 물건이 하나씩 사라지는 등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 이외의 일들이 일어났다.


교사의 삶이란 대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대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싸우면 어떻게 화해시킬지, 떠들면 어떻게 조용히 시킬지, 학부모 상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실에 있는 물건이 사라졌을 때 교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공문 처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매일 매일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 연속이고 실패의 반복이었다.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었고 하면 안 되는 일들도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기도 하고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찾기도 한다. 내 교실에서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만큼은 행복하다.


교실에서 처음으로 만난 용현이는 다른 친구들과 조금은 달랐다. 작년 용현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용현이에 대해서 들었기에 조금은 용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용현이를 쉽게 우리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용현이를 잘 도와주고 어울렸다. 그 중에서 내 눈에 띄는 남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동철아, 선생님이 너에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어?”

“선생님 부탁이 뭔데요? 선생님이 하는 부탁은 다 들어드려야죠!”


동철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모르게 ’씩‘하고 웃는다.


“동철아, 네가 용현이 무궁화반으로 가고 올 때 옆에서 도와줄래? 그리고 용현이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면 화장실까지 데려다 주는거야. 이게 선생님 부탁인데, 들어줄 수 있겠어?”

“에이, 저는 이번 수학 시험 100점을 맞아야 한다, 수업 시간에 친구들 웃기지 말고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그런 어려운 부탁을 하는줄 알았잖아요. 용현이 도와주는 것은 쉬운 일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쾌활하고 웃음이 넘치며 친구 관계도 좋은 동철이가 용현이를 도와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임감도 있는 아이이기에 용현이를 안전하게 무궁화반에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동철이가 용현이를 도와준다면 친구들도 용현이를 잘 도와주지 않을까하는 믿음도 있었다.


처음 맡은 해봄초등학교 6학년 7반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학여행을 다녀올 시기가 되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있지 않으면 졸업이기에 너무 아쉽다. 첫 제자들과 더 많은 추억도 만들고 이야기도 나누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많다. 그래도 수학여행이 남아있으니 그때를 이용해 아이들과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학여행 참석 X]


“어! 이게 뭐지!”


수학여행은 모든 6학년 아이들이 기대하는 날이다. 아직 6학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도 본인이 6학년이 된다면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그런 날이다. 당연히 수학여행은 우리반 모든 아이들이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제출한 수학여행 참석여부 설문지 중에 X가 적힌 종이를 한 장 발견했다. 몸이 많이 아프거나 갑자기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돌아가시거나 하는 큰 일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학여행을 빠지는 경우는 없다고 알고 있다.


‘몸이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고, 또 수학여행을 갈 날이 아직 남아있는데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돌아가실 것을 미리 예상할 수도 없는데......이상하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수학여행에 함께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동철이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O를 해야 하는 것을 착각하여 X로 표시한 것일 수도 있고, 아이가 엄마에게 수학여행 참석 설문지를 보여주지 않고 장난으로 X를 표시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그게.......사실은.......”

......


동철이 어머니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정적이 흐르고 전화 너머 동철이 어머니 목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한참 동안 동철이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었다면 적절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맞지만 도무지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동철이 어머니께 할 수 이야기는 그저 ‘네’, ‘알겠습니다.’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다고 우등상도 받고 교육대학교에 가서도 줄곧 장학금까지 받았는데 이게 뭐람! 상대방의 말에 적절하게 대답도 하지 못하고, 위로도 못해주는 똥멍충이 같으니라고!’


학교 다닐 때 친구들보다 항상 낫다고 생각했다. 공부 잘하는 것이 나보다 점수가 낮은 친구들 위에서 군림할 수 있다는 무기가 되었다.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척, 어려움에 공감하는 척 했지만 마음속에는 ‘내가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이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동철이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해서 내 본모습을 보게 되었다. 난 가난한 농사꾼의 첫째 딸이며 돈 없는 집안에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사람이다. 변변찮은 책가방도 가지지 못했고 남들 다 가봤다는 놀이공원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언제부터 내가 친구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 공부 조금 잘 한다는 것이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조건이 되는 것인가!’


전화 통화는 치사하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릴 적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 계시고 건강하셨기에 많은 돈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수입은 있었다. 당연히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수학여행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다른 이유도 아니고 수학여행비를 낼 돈이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 싫은 아찔하고 아주 슬픈 기억으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망각하는 존재하고 한다.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아픔들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보다 더 참혹한 지옥은 없을 것이다. 또렷했던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정확했던 사건이 그물댄다. 겹겹이 쌓인 시간들은 아픔들을 치료해주고 상처들을 싸매준다. 하지만 상처 뒤에는 딱지가 앉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기억은 흐려지지만 당시 느꼈던 더러운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더러운 일이 지금 내 반 아이에게 일어나고 있다. 아이의 형편을 잘 몰랐던 것에 대한 미안함, 항상 웃으며 밝게 지내는 모습 뒤에 감춰진 슬픔을 알지 못했던 자책,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생각들을 정리했다.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서 잘 풀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얽힌 부분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니 답이 보이긴 하다.


얽힌 실타래를 모두 풀어서 예쁜 실뭉치를 만들었다.


우리반 누구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 6학년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친구들이 모두 가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평생 동안 그 슬픈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절대로 그런 일이 내 교실에서 일어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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