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이십 이년 전, 동철이가 태어나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주자 금세 울음을 그치던 아들, 자라면서 항상 엄마를 잘 도와주던 우리 아들, 그게 내 아들 동철이다.
자식을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엄마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동철 아빠가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동철이 아빠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빚을 갚느라 항상 바쁠 수 밖에 없었다. 동철이 학교 숙제도 봐줘야 하고, 준비물도 챙겨줘야 하고, 맛있는 반찬도 해줘야 하는데 돈 번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때로는 핑계가 되어 동철이를 대하고 있는 것이 미안했다.
“동철아, 아침밥 차려 놓았으니 학교 가기 전에 먹고 가렴. 엄마는 먼저 나간다.”
반쯤 눈이 감겨있는 동철이를 보며 말하지만 동철이가 엄마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둘러 나가지 않으면 지각이니 바삐 준비해서 나갈 수 밖에 없다. 동철이를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줘야 하지만 삶에 치여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살고 있다.
“네, 엄마.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도 동철이는 엄마의 출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새벽녘 꽁꽁 싸맨 이불 속에서 눈을 뜬다. 맛있는 반찬은 없지만 동철이는 엄마가 해 준 것이라면 다 잘 먹는다. 고기 반찬을 해 주고 싶지만 월급날이 되려면 며칠 더 남았다. 조금 더 아끼고 버텨야 한다. 변변찮은 반찬 하나 제대로 해 줄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고 동철이에게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동철이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오늘도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귓가 너머 들려오는 동철이의 잘 다녀오라는 목소리가 추운 새벽 바람도 이겨낼 수 있게 따뜻하다.
동철이 아빠가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고 오롯이 모든 것을 떠맡게 되었다. 남아있는 빚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동철이 아빠가 살아있을 때 함께 일을 하며 돈을 벌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살림 잘하고 동철이 잘 키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다른 것 생각할 여유 없이 혼자 벌어서 동철이를 먹여 살려야 한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삼십 중반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럴 땐 대학교라도 나왔으면, 아니 고등학교라도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절로 나온다. 여동생 셋, 오빠 둘, 오빠 중에 한 명은 몸이 불편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다. 그런 집에 맏딸인 내가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사치였고 동생들에게 주는 부담이었다. 그래도 중학교 만큼은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생들 씻기고, 밥 챙겨 먹이고, 밭일 하면서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아빠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텐데라는 생각을 백만번은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도 우리 곁을 떠난 아빠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기에 화만 내고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동생들 키우고 오빠 뒷바라지하다보니 결국 나는 중학교만 졸업한 그런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나 혼자라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동철이가 있기에 집을 떠날 수도 없다.
그동안 동철이 아빠가 해 오던 것을 오늘부터 모두 내가 해야 한다. 거실 전등 교체하기, 막힌 변기 뚫기, 쌀가마니 옮기기, 그나마 이것들은 괜찮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오빠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이 아니었다. 부딪혀보고 물어보고 해결하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운전만큼은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
“먼저 운전을 배워야 해! 그래야 장사라도 하지”
“맞아, 물건을 떼 다 팔더라도 운전은 할 수 있어야지.”
“운전이요?”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 운전을 배워야 한다고 주위 언니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운전을 해 본 적도 없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없었다. 운전은 동철이 아빠의 일이었고 나는 동철이 아빠가 운전하는 자동차 옆자리에 앉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에 운전을 배울 수 밖에 없다. 출퇴근하는 용도로 자가용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종 보통 운전 면허가 아니라 일종 보통 면허가 필요하다. 오토가 아닌 스틱이라니. 참으로 마음이 답답하다. 복잡한 도로, 많은 자동차, 시끄러운 경적소리, 모든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장사라도 할라치면 운전은 필수였기에 답답함을 계속 가지고 살 수만은 없었다.
혼자의 삶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동철이도 아빠 없는 삶이 적응되는 것 같아 보였다. 아빠에 대해서 내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았으며 도리어 밤이 깊어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엄마를 더 밝은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그렇게 동철이도 희미해지는 아빠와의 추억과 함께 한 뼘씩 자라가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그날도 밤이 깊어 집에 도착했다. 평상시와 같이 동철이는 냉장고에는 밑반찬을 꺼내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도 깨끗하게 해 놓고 자고 있었다. 동철이는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가 피곤할까봐 이불도 깔아 놓고 빨래도 개켜놓았다. 동철이가 일기를 쓰다가 잠들었는지 머리맡에 일기 공책이 덮어지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꾸 눈이 동철이가 쓴 일기로 향했다.
“반장 선거를 했다. 친구들이 나를 추천했지만 나는 반장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반장을 하고 싶었지만 반장을 하면 엄마가 학교도 와야 하고, 친구들에게 맛있는 간식도 사 줘야 하기에 안 한다고 했다. 그래도 학교 졸업하기 전에 반장은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동철이가 써 놓은 일기를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무너졌다. 어미로서 자식에게 해 준 것이 없다는 죄책감,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억장이 무너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들의 이런 마음을 알고도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고 있는 동철이를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것, 그 것 뿐이었다.
‘엄마가 해 줄 있는게 이것 밖에 없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