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은 처음이야
올해 나도 몽골이 처음이고 선생님도 처음이다. 처음이 주는 두려움과 짜릿함은 우리를 조금 더 가깝게 해준다. 사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설렘보다는 긴장과 도전에 가깝다. 항상 웃고 있는 선생님을 볼 때면 같은 처음인데 나만 유별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가 본 장소, 처음 해 본 일도 두렵지 않는가보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조금은 두려워해도 되고 긴장해도 되고 실수해도 된다. 그래도 될 나이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잠자기 전 내가 가진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가다 보니 원인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몽골이라는 장소였다. 일주일 전만해도 내가 태어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거리를 걷고 대한민국의 말을 하며, 대한민국의 친구들도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다른 세계에 와 있다. 내일 눈을 뜨게 되면 몽골의 거리를 걸을 것이고 몽골 말을 할 것이며, 몽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몽골 거리를 걷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입은 꾹 다물고 있겠지. 아마도 굳게 다문 입이 벌어지는 그 순간이 몽골에서의 시간이 열리는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사를 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라를 뛰어 넘는다는 것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희귀한 일이다. 이런 중대한 결정에 아이들의 생각과 결정이 반영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모두 어른들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결정이 되고 아이들은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 순리이다. 나 역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 순리에 따라 지금 내 고향 대한민국에서 2,000km가 떨어져 있는 이 곳에 와 있다. 어쩔 때는 순리라는 그것을 따르고 싶지 않다. 거부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이 세상에 초등학생 아이가 뛰쳐나가서 지낼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갈 곳을 찾는 것보다 순리속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이가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낫다.
큰 결정만 하는 어른들은 나처럼 이런 소소한 고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순리라는 틀 안에서 뽀작대며 순응하는 나를 발견하는 비참함과도 만나게 되지 않겠지. 그래서 더욱 처음을 함께 시작한 선생님이 부럽다.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판단한 것에 따라 움직이는 삶, 생각만해도 부럽고 멋지다.
그 안에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있을 것이며 삶에 대한 계획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결정은 즉흥적이지 않고 주위의 의견에 귀가 팔랑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몽골에서 처음을 시작하는 선생님이 더욱 부럽다. 이곳에 오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으며 준비했을까. 그리고 이곳에서 어떻게 지낼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하루하루를 계획했겠지. 이곳에서 생활을 마치고 내 고향 대한민국에 돌아가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일별로, 주별로, 월별로 촘촘하게 생각의 얼개를 만들었겠지. 어른이니까, 선생님이니까 그러해겠지.
웃음이 가득한 선생님의 얼굴에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여유와 편안함, 긍정적인 생각이 몸 밖으로 묻어져 나온다. 나도 언제쯤 그런 마음의 연륜이 쌓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선생님처럼 그런 어른이 될 것이라 믿어본다.
사람은 나이가 먹음에 따라 삶의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나온다고 한다. 고생을 많이 하고 고민이 많았던 사람은 얼굴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간직하며 지내온 사람은 얼굴에 그 잔상이 박혀 있어서 누가보더라도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얼마전 미술시간에 배운 탁본과 유사하다. 종이 위에 먹칠을 한 솜뭉치를 톡톡톡 두드리면 보이지 않던 글자나 그림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한번 선생님의 살아온 삶을 먹칠한 솜뭉치로 두드려 볼까.
톡톡톡. 탁본으로 떠 본 선생님의 지나온 삶음 표정과 말투, 행동에 그대로 베어나온다.
‘괜찮네. 큰 아픔 없이 살아왔네.’
내가 관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생년월일을 듣고 사주팔자를 풀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의 탁본을 떠 볼 수는 있다. 선생님의 겉에서 보여지는 것들을 종합해보면 나쁘지는 않고 괜찮다. 살아온 삶도 괜찮았고 큰 고민 없이 이곳에 왔으며 내 고향 대한민국에 돌아가서도 어려움 없이 잘 지낼 것이다. 나는 새벽까지 잠도 못 이루면서 이런 공상에 빠져 있는데 마음 편하고 삶이 편한 선생님은 잘 자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니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나도 어른이 되면 선생님처럼 좋아지려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으며 판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단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에 얻게 되는 빛나는 훈장일 것이다.
나도 선생님처럼 무탈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을 잘 그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글은 잘 쓰나 생각해 봤더니 그것도 평범한 수준이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다. 이러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군대 갈 나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왕 군대 갈거면 해병대나 가야겠다!”
누워서 피식 웃었더니 두려움은 온데갖데 없어지고 잠이 쏟아진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았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