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 근처에서 잠만 잤지만 알찬 후기
대부분의 남미 여행자는 캐나다 혹은 미국을 거쳐 남미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반시계 방향 루트), 나의 경우엔 시계 방향 루트여서 카타르 도하에서 환승 후 브라질을 거쳐 남미로 들어오는 2번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했다. 카타르는 공항에서는 잠시 환승을 위해 머물렀고, 장시간 비행의 2/3를 지나 공항 밖을 나온 건 브라질 상파울루 과룰류스라는 곳이었다.
상파울루는 브라질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최대 도시이고 세계적인 도시이지만, 그중 과룰류스 라는 지역은 번화한 도시가 아닌 작은 동네였다. 특히 내가 예약했던 항공편은 과률루스에서 13시간 30분을 머물고 마지막 종착지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일정이었기에 도시를 탐방해 볼 여유는 없었다.(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호기롭게 잠깐 택시 타고 도시 구경이라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그런데도 동네 마트 쇼핑도 하고,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산책할 수 있는 곳들 위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딱 이곳에 왔을 땐 이 동네가 어떻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보다는, ‘드디어 공항 밖을 나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걸어 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다!‘라는 감상이 컸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마음이 조금 놓이고 나니, ‘내가 정말 지구 정반대 편에 위치한 나라에 왔구나. 이게 얼마만의 해외 여행인가’라는 생각에 잠겼었다.
나를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는 여행을 참 좋아해서, 연에 1~ 2회 정도는 가보지 못한 곳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게 낙이었는데 코로나로 그간 비행기 탈 일이 참 없었는데 말이다. 낯선 곳,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의 환경 속에서 나 홀로 이방인이라는 기분이 참 오랜만이었는데 싫지만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지나가다 누군가 중국어든 일본어로든 인사하면 또 인종 차별이라며 질색했을 텐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해외여행 중 좋아하는 부분이 각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경우엔 그 많은 재미 요소 중에서도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현지식 재래시장이 있다면 더더욱 좋아함) 그 나라만의 식문화와 생활 방식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트를 다니다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 장바구니 물가가 높기는 하구나’라는 것도 깨닫고, 한국이라는 작고 태생적으로 가진 것 없는 나라가 선진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여러모로 참 대단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직접 느낀 부분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세히 기록해 보자면 현지 시각으로 거의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공항에 도착했고, 수속을 마치고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6시였다. (23년 1월 21일 23시 50분 인천에서 출발하고 22일 16:50 상파울루 과룰류스에 도착하여, 예정된 스케줄이 아주 딱 맞았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바로 샤워하며 장시간 비행으로 지친 피로를 씻어내렸고, 재정비를 마친 후 마트로 향한 시간이 7시쯤이었다.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큰 마트가 하나 있었고 원래는 너무 피곤해서 간단히 사 먹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간에 연 식당이 없었다. 생각보다 더 할게 없는 동네라 선택지가 없었지만, 원래도 마트 쇼핑을 좋아해서 ‘오히려 좋아!’ 였다. X표시의 큰 간판이 걸려있는 마트였고 (다시 찾아보니 마트 이름이 아주 정직하게 X supermercado 였다) 규모가 꽤 커서 천천히 둘러보고 결제를 마치고 나오니 딱 1시간이 소요됐었다.
역시나 남미답게 고기와 와인이 정말 저렴했으며(상품의 질도 매우 좋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과일과 주류 또한 다양하게 있었다. 한국 토박이 인생 3n 년차기에 역시나 모든 것이 다 재밌고 새로웠다. 해외에 나올 때마다 매번 마트에 가도 그때마다 즐거운 이유는 그곳의 그 마트에서만 보고 느끼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와인, 술, 치즈, 유제품, 과일 등 여러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아서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창 장을 보고 돌아오니 정말 간단한 요리조차 해 먹을 기운이 없었으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어 챙겨온 햇반을 간신히 데우고 마트에서 사 온 베이컨도 구워 먹었다. 호스텔에서 간단한 조리가 가능했는데, 익히 들어왔던 것처럼 위생 관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다 보니 괜찮았다. 베이컨은 굉장히 짜서 몇 조각 못 먹었고(먹어본 중 역대급), 따로 챙겨왔던 고추장과 김자반을 곁들여서 겨우 한 끼를 챙겨 먹었다. 한식을 안 챙겨왔더라면 대장정의 여행 시작부터 조금 서글펐을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2층 침대가 맞이하는 나의 방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심혈을 다해 고른 맥주 2병과 과자 2개 그리고 살라미와 치즈로 성대한 2차를 시작했다. 이미 배가 많이 부른 상태이고 몹시 피곤했지만, 꼬박 3년 만의 첫 해외 여행을 나름대로 기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맥주는 뭐 무난한 맥주의 맛이었고, 살라미와 치즈는 맛있었다. (먹기 좋은 두께로 썰려있는 한 팩 세트였고, 치즈가 짜지 않아서 좋았다) 과자 1개는 무난한 치토스였고 남은 1개는 모험심에 사본 과자였다.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았고 역시나 돼지기름 튀긴 것으로 아주 대실패였지만 이런 맛도 있다는 걸 알아서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의 남미 한 달 여행 대망의 첫날 밤이 저물어 갔고, 약 4시간 정도의 짧은 취침 후 새벽 2시쯤 일어나 다음 날의 이른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비행을 준비했다. 그 와중에 여유를 갖겠다고 꼭두새벽부터 마트에서 사 온 요거트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택시가 오는 동안 호스텔의 고양이 ‘브래드 피트'와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눈을 항상 반쯤 감고 있었던 브래드 피트는 이름을 부르면 아주 느린 속도로 소리 나는 곳을 무심하게 쳐다봤는데, 그 부분이 아주 매력 있었던 고양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정말이지 인생의 다시 없을 길고도 긴 비행 여정이었고, 다음에는 비용을 더 쓰더라도 이런 고생은 사서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 모든 계획과 결정은 나 스스로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힘든 여정을 통해 오게 된 걸까 잠시 나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해 보기도 했고, 앞으로는 얼마나 더 다이나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고 상상했다. 23년 1월 23일 월요일 아침,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과룰류스 공항에서의 유난히도 붉고 아름다웠던 일출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치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 지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기대해’라고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