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여섯 살때 이 집으로 이사왔다.
키우던 강아지가 사고로 죽으면서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던 나는 그 집에서 더이상 남아있을 수 없어 서둘러 떠나길 원했고
1층 집을 알아보았다. 더는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기에 좋은 집이기를 바라면서..
물론 나는 아직까지도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
집을 둘러보기 위해 이 집을 찾은 건 9월 말경이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즈음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기울어진 태양 덕분에 깊숙이 들어오던 따뜻한 햇살이 있는 그 집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앞에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어 텃밭을 만들 수도 있었고, 그 너머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터도 있어 나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줄 것 같았다.
집을 다 보고 나와서 집 앞 나무아래 섰을 때의 공기와 바람을 기억한다.
황홀한 기분마저 들게 했던 따뜻한 반김이었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계약을 했다.
우리의 첫 집이 그렇게 이 곳이 되었다.
스물다섯 평 남짓한 곳에서 서른 네평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는 너무 집이 크게 느껴져 청소하기도 힘들고 방에서 방으로, 부엌에서 식탁으로 오는 것도 다리가 아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그땐 그랬다. 집 구조도 좋았고 수납공간도 넉넉해서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11월 어느 날이었다. 주문한 식탁이 아직 오지 않아 거실 바닥에 앉아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때였다.
현관문에서부터 복도를 타고 바람이 불었다. 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불길하고 서늘한 바람을...
'어떻게 집안에서 이렇게 바람이 불 수가 있는거지? 문을 다 닫아두었는데?'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바람을 막기 위한 나의 사투가...
다른 세대와 떨어져 있어 홀로 우뚝 서 있는 집, 밑에는 지하의 찬 기운이 바로 올라오는, 거기에 층고까지 높은 1층 집이 우리집이었다. 그 말은 즉, 겁나게 추워블 예정이라는 거였다.
첫 내 집 마련이었으니 뭘 얼마나 알았겠는가. 꼼꼼한 성격도 아니고 서둘러 집을 구하느라, 1층집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무언가에 홀려 덜컥 보자마자 결정을 했던 나였다.
우리 집은 겨울이 오기도 전인 11월부터 봄이라 일컬어지는 3월도 아니고 남들이 좀 덥다 싶어하는 4월 중순 쯤부터 겨우 추위가 가시는, 한 6개월은 춥다가 한 3개월 좋다가, 한 3개월은 디지게 더운 그런 집이었다.
우선 현관 문과 창문에서 솔솔 불어오는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하여 중문을 설치하고 창문에 뽁뽁이부터 시작해서 틈새막이와 바람막이 비닐덮개를 거쳐 암막커튼을 치고 나서야 좀 살만 했다.
통로가 있는 곳엔 두꺼운 커튼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폴딩도어를 달았다. 안방 벽에 머리를 대고 자면 머리가 얼얼할 정도였고
집안에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건조한 실내 공기는 난방을 하는 순간 습도가 바닥을 길 정도가 되어 버리므로 아이들 감기때문에 마음껏 난방을 할 수도 없었다. 아프기도 좀 아팠나. 추우니까 아프고 건조해서 아프고.. 습해서 또 아프고..
난 속았더랬다. 집을 산 날 내가 본 햇살은 가을 한정, 그것도 우리가 집을 본 그 시간대만 허락되던 햇살이었더랬다.
그렇다고 이집이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춥거나 덥지 않는 짧은 3개월은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원수들이 우리집이 마치 카페인 것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층간소음문제로 아이들 뛰는 것을 나무라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좋았으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주변 환경이 좋아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학교며, 도서관, 편의시설들이 가까이 있어 아이들을 키우며 살기엔 참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집을 애증했다.
추운 겨울과 습한 여름엔 미워했고 그러면서도 눈오는 날과 가을 날의 단풍이 든 나무가 있는 거실 풍경은 사랑했다. 하나씩 무언가가 고장나고 부품이 떨어져 나가면 미워했고 아무때나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릴 때는 사랑했다.
그 집을 이제 떠난다.
기분이 묘하다.
집을 팔기 위해 몇번을 집을 치웠나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팔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그냥 살아야 하나보다. 이 집이 우릴 놓아줄 생각이 없나보다 하고 포기하려던 찰나에 어쩌다 갑자기 집이 진짜로 팔린 것이다. 비록 팔리는 순간 화장실 방수층이 터져 지하로 물이 떨어지는 일이 생겨 돈이 좀 많이 나가버려 속이 좀 쓰리긴 했다만 그래도 팔렸다.
얼떨떨하다.
아이들이 유년을 보낸 이곳, 나의 젊음이 있던 이곳을 떠난다.
낡고 허름해지고, 여기저기 고장나지 않은 곳이 없는 이곳을, 아이들이 아쉬워하며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곳을 며칠 뒤면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 집을 떠나는 것도 아쉽지만 이 집에서 썼던 물건들도 아쉽다.
산지 얼마 안된 것들은 가져가는게 당연하지만 산지 오래됐어도 사용감이 많은 물건들은 가져가기가 고민된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떠나면 그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쓰이지 못하고 버려질 것이니 아직 수명을 다하지 않은, 그러나 낡은 그것들이 눈에 밟힌다..
그래서.. 또 나는 다 싸짊어지고 간다.
새거 사고 싶다며 남편에게 툴툴대다가도 환경을 생각하라는 큰 아이의 가르침에 마음 약해진 나는
'그래! 식탁 너도 가자!
고장도 안나는 고리탱탱 청소기 너도 가고 싶냐? 그래~~!! 너도 가지 뭐~'
나중에 사자 하며 미룬다. 집꼴은.. 장담 못한다.
그래도 아이들의 코묻은 작품들은 많이 버렸다. 눈 감고 생각을 감고 울지 않기 위해..
가져갈 수 없는 이 집의 내 손때묻은 많은 것들은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더 닦아주지 못하고 더럽게 썼던 기구들을 집을 팔기 위해서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닦았던 게 후회된다. 더 많이 닦아주고 아껴줄걸..
그래서 난 며칠 뒤면 폐기될 싱크대와 선반들을 요즘 들어 더 자주 닦아준다.
미안해서.. 고마워서..
그래도 징한 건 징한거다 하면서 눈물을 거둬들였다만..
13년동안이나 정든 이웃과 정든 모든 것을 떠나는 지금.. 울지 않기 위해 생각을 감았지만 나를 홀린 이런 가을 날씨엔 이 집이 생각이 날 것이다.
안녕,
아이들과 남편과, 나 자신과 지지고 볶던 못난 나를, 상처입은 나를 다 받아내준 넓은 품을 가진 오동이네 첫집
고마웠어.
너가 우리를 받아주었던 그날처럼 또다시 마법을 부려 새로 오시는 그 분들도 잘 부탁할게.
그리고 나의 제일 가까운 이웃 4층 아짐도 잘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