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북소리와 밥통

by 상아


서울의 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은 집에 머물렀고, 직장을 다니는 아들딸도 재택으로 일한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손주들은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했다.


그럼 내려오라고 했다.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이 바닷가 마을이라면, 몇 달쯤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이 다시 북적였다. 그녀는 그 소란이 싫지 않았다.


유명한 꼬막산지였던 그 갯벌에서, 아이들은 댓돌위의 고무신처럼 주인을 기다리는, 뻘배를 신기하게 들여다보았고, 주워 온 소라 껍질에 뻘흙으로 떡을 빚었다. 그녀는 둘째딸과 아점을 먹고 나서는 휴대폰을 넘기며 손주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이건 뭔 악기냐?”
“해금이에요, 엄마. 초등학교 때 배웠는데, 소리 내는 데만 두 달이 걸렸어요. 외할아버지가 국악하셨다면서요? 텔레비전에 나오던 그 국악인도, 예뻐하시던 후배였다던데. 그때 해금 연주자는 없었어요?”
“아버지는 유명한 북잽이였지. 해금은 본 적이 없네. 북, 장구, 그리고 소리하는 사람들이 늘 우리 집을 드나들었지.”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창밖의 감나무로 시선을 옮겼다. 새순이 돋아나는 감나무는 오래전 마당으로 그녀를 데려다 놓았다.


살림이 늘고 세를 받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 생업을 붙들지 않았다. 대신 풍류와 잔치에 마음을 두었다. 아버지 생신이 되면 온갖 남도 예인들이 모여들었고, 북과 장구 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북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세상 걱정 없는 얼굴로 웃었다.


가세는 서서히 기울었다.


당시 아낙네들은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씀씀이를 줄이거나 텃밭을 일구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계에서 밑천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행상을 나갔다. 어머니는 당시 도시에서 유행하던 전기밥솥이나 전기프라이팬 따위를 머리에 이고 시골 마을을 돌았다.


시골에서 전기밥솥은 엄청난 인기였지만, 비싼 물건을 살 목돈이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머니는 시골 사람들을 모아 계를 조직했다. 첫모임에선 모두 모여 밥솥을 타갈 순번을 정했다. 한 달에 한 번, 밥솥을 이고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고 시골로 향했다. 순번대로 밥솥을 가져가되, 모두 조금씩 할부금을 내어 물건 값을 마련했다. 돈이 없는 아낙네들은 곗돈 대신 곡식이나 물건을 내기도 했다.


150센티미터의 자그마한 키에 평발이었던 어머니는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다. 대금으로 받은 물건이 너무 무거우면 정류장에서 팔아 돈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없는 것들로도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북소리가 하늘로 흩어질 때, 어머니의 등짐은 땅을 눌러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은화씨는 알았을 것이다.

땅을 보며 걷는 사람이 되어야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낼 수 있고, 흩어진 것들을 모아 엮어야 제 몫의 값을 만든다는 것을.


후일 오남매가 모두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 억척스러움 덕분이었다. 집세로는 당장 굶지 않을 수 있었어도, 딸자식들까지 공부시킬 형편은 아니었으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녀는 별다른 목적 없이 서울의 한 여대에 원서를 넣었다. 합격증이 날아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안이 더 기울기 전에 딸을 결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입학금 대신 중매비를 준비했다. 좋은 학벌과 직장을 가진 사위를 원했다.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큰딸이 물었다.

“엄마는 왜 대학 안갔어요? 동생들은 다 보냈잖아. 아쉽지 않았어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니 이모들은 공부 욕심이 대단했어. 책을 손에서 안 놨어.”

“그래도 엄마도 대학 붙었다며.”

“나는… 그냥 그때는 그랬어.”

창밖 감나무 끝에 작은 새가 내려 앉아 있었다. 가지가 가볍게 흔들렸다.


대학을 갔다면 다른 길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았다. 선명한 선택은 품지도, 자라나지도 않았다. 그런 건 늘 어른들의 몫이었으므로.


그녀는 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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