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 순간 찰나 별안간
봄이되면 서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이 한반도의 대관령을 넘으면서 푄현상이 발생, 강풍으로 자주 변하곤 한다.
강릉을 중심으로 한 강원 영동지방에 산불이 자주 나면서, 이 강풍 때문에 이 일대는 자주, 삽시간에 초토화되고 만다.
양강지풍( 양양과 강릉사이에 부는 강한 바람)도 영동지방 산불 발생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마을이 삽시간에 잿더미에 휩싸여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는 것은 물론, 경포대 등 주변 유적지들 마저 화마에 휩싸이거나 휩싸이기 일보직전까지 거기가 일쑤다.
“인간이 자연 앞에 서면 얼마나 미약하고 ,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케이스가 바로 봄철 영동지방 산불이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삽시간’은 의외로 한자어다.
여태까지 순수 우리말로 알았건만, 삽시간•순식간•순간•찰나와 같이 모두 한자어로 ‘눈 깜짝할 사이’를 의미한다.
삽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우비’를 등장시키는 게 좋다.
'여우비'란 맑은 날 오후에 난데없이 잠깐 내리는 비를 뜻한다.
민간 설화에서는 “여우를 사랑한 구름이 여우가 호랑이에게 시집을 가자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린 것에 빗대어 '여우비'라고 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삽시간(霎時間)’은 짧은 동안을 이르는 말이다.
‘삽(霎 : 雨 밑에 妾)은 ‘지나가는 비’를 뜻하는 글자다.
이때 지나가는 비로는 여우비가 제격이다.
잠시, 잠깐이라는 의미다.
삽시간은 ‘지나가는 비가 잠깐 내리는 동안’이라는 말이 제대로 된 뜻풀이 일 것 같다.
눈 한번 깜박하고 숨 한번 쉬는 동안이라는 뜻의 순식간(瞬息間), 눈 깜짝할 사이인 순간(瞬間), 약 75분의 1초라는 찰나(刹那) 등이 삽시간과 견줄 수 있는 ‘찐 일순간’ 의미의 단어들이다.
글자대로 풀면 삽시간이 순식간보다 좀 긴 동안을 이르는 말인데 별 차이는 없다.
그런데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다’ ‘삽시간에 악화된 여론’ ‘명예를 잃는 건 한순간이다 ‘• ’ 배가 고팠는지, 녀석은 순식간에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처럼 시간의 길이를 고려해 보면 각각 어감의 차이는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재미있는 단어하나를 짚어 본다.
본처 말고 데리고 사는 여자를 첩(妾)이라 한다.
이 첩(妾) 자가 삽(霎 : 雨 밑에 妾) 자에 붙어 지나가는 비, 그러니까 잠깐이라는 뜻의 글자에서 파생된 것이다.
세상에서 진짜보다 가짜가 좋은 것을 대보라고 했더니 어떤 인간이 “골프에서 ‘가라 스윙’ (티 박스에서, 드라이버 치기 전에 연습 삼아 한번 드라이버를 공 없이 휘둘러 보는 연습행위)과 ‘첩’이라고 스스럼없이 답했던 기억도 난다.
어이가 없지만 웃음은 절로 나오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다시 삽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별안간이란 말도 있다.
별안간(瞥眼間)에서 별(瞥)은 언뜻 스쳐 지나듯 보는 것이다.
별 안(瞥眼)은 한번 눈길을 돌려 쫄깃 바라보는 것이고, 별안간(瞥眼間)은 눈 한번 돌릴 사이의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갑자기' 또는 '난데없이'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별안간’ 불이 나더니 ‘삽시간’에 산 전체를 태우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한번도에서 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이것 만큼은 삽시간에 이루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