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에 담긴 서슬 퍼런 탄식, 그리고 삶의 추임새

에이 젠장! 되는 일이 없네… 브런치에 글이나 올려야겠다.

by DKNY JD

살다 보면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에이, 젠장!”이다. 이 짧은 두 글자에는 짜증과 허탈함, 그리고 무언가 꼬여버린 상황에 대한 원망이 비빔밥처럼 섞여 있다.


나 역시도 최근 음식값 등 터무니없이 오른 물가를 피부로 느끼며 나도 모르게 ‘젠장’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이 흔하디 흔한 ‘젠장’이 사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던 무시무시한 형벌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든다.


‘젠장’의 원래 모습은 ‘젠장맞을’이라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기, 난장(亂杖)을 맞을’이라는 긴 문장이 숨어 있다. 여기서 ‘난장’이란 조선 시대에 정해진 법적 절차도 없이 죄인의 몸을 닥치는 대로 마구 때리던 가혹한 형벌이었다. 오죽하면 ‘난장 맞아 죽을 놈’이라는 말이 가장 지독한 저주였을까.


즉, ‘젠장’은 “매를 맞아 죽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라는 서슬 퍼런 분노가 압축되고 깎여서 만들어진 말인 셈이다.


처음 이 어원을 접했을 때, 나는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처음 제대로 알았을 때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저 가벼운 투덜거림인 줄 알았더니, 우리 조상들은 정말 화가 치밀 때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지독한 역설을 내뱉었던 것이다.


“난장을 맞을!”이라고 외치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던 그 고통스러운 역사가 오늘날 나의 일상적인 불평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니, 언어의 생명력이란 참으로 기묘하다.


하지만 세월은 이 무서운 말의 날카로운 칼날을 부드럽고 무디게 만들었다.


이제는 누구를 저주하기보다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혹은 아깝게 빗나간 퍼팅 한 끝에 던지는 ‘인생의 추임새’가 되었다.


영어의 ‘Damn it’보다 훨씬 찰지고, ‘빌어먹을’보다 더 절실하게 내 감정을 대변해 주는 이 말이 때로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청량음료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젠장’이라 외치는 순간은, 다시 한번 기운을 내어 상황을 바로잡고 싶다는 반어적인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지각을 하고 준비 안된 시험지 앞에서 당황하며 “젠장!”을 외쳤던 그 간절함이, 결국은 나를 시험장 안으로 발걸음 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최근 쓴 글 ‘쑥대밭’에서 조상들의 비유력을 배우고, ‘사바사바’에서 세상사 요령을 엿보았다면, 이 ‘젠장’을 통해서는 삶의 굴곡을 견뎌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배운다.


비록 시작은 비극적인 형벌이었으나, 지금은 우리네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작지만 강렬한 위로가 되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예상치 못한 난관 앞에서 “젠장!”하고 시원하게 한 번 내뱉어본다.


그리고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난다. 이토록 깊고 풍성한 언어를 가진 민족의 후예답게, 그 어떤 고난도 우리말 한마디로 녹여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우리말은 알면 알수록 참으로 오묘하고도 든든한 내 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줏단지 모시듯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