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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Jan 18. 2023

담임교사란 무엇인가

2022. 7. 10

그리운 A,

잘 지내고 있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여름이 오기 전에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젠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 핀란드로서는 이 전쟁이 또 다른 전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아. 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겨울전쟁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강대국에 맞서 저항한 덕분에 독립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소련에 패배하고 전쟁을 끝내는 대가로 동핀란드의 까렐리아 지역을 소련에게 내주어야 했지. 전쟁의 패배가 남긴 쓰라림 속에서도 냉전 시대에는 소련과 사우나 외교까지 하며 오랜 시간을 서방국가와 러시아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기도 했고. 그런 핀란드도 이제 나토(NATO)에 가입하겠다고 하는구나.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잠갔고, 뉴스는 에너지와 식량 대란을 얘기하고 있네. 지구에 사는 생명종 중에 호모 사피엔스만큼 같은 종을 처절하게 짓밟고 극한의 상태로 내모는 존재가 또 있을까. 


우리 반 열 살 4학년들도 걱정을 하긴 해. 여기도 전쟁의 여파로 물가가 많이 올랐거든.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빵, 자장면 같이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 값이 엄청 올랐다고 얘기를 해주니 한숨을 푹 쉬네. 빡빡한 학원 일정 사이에 작은 휴식이 되어주는 음식일 텐데 말이야. 나는 올해 4학년 담임을 맡고 있어.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7월이구나. 너에게 편지가 늦었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종종 퇴근 시간을 넘긴 저녁까지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하루살이가 되어 일을 쳐낸단다. 이렇게 압축적인 강도로 일을 하다가 퇴근하면 주중에는 곰곰이 생각하거나 글을 쓴다는 건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기운이 빠져. 


내가 하는 일은 크게 수업, 흔히 생활지도라고 부르는 아이들 돌봄과 상담, 그리고 행정 업무야. 수업은 하루에 많으면 다섯 시간, 적으면 네 시간 정도 해.* 교과전담 선생님들이 가르치시는 영어와 체육을 제외한 나머지 교과목을 담임인 내가 가르쳐. 그리고 생활지도는 한국 초등학교의 담임교사가 수업보다 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인데, 수업 이외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이 포함돼. 우선, 아이들이 등교한 다음 30분 정도 되는 아침 활동 시간, 수업 사이에 있는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돌보지. 어떤 아이가 수업을 방해한다거나 다른 아이와 다툼이 생기면 아이들을 불러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상담도 하고. 특히 노동 강도가 높은 시간이 쉬는 시간인데, 이 시간에 아이들은 교실 바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보드게임을 하거나 몇몇은 춤 연습을 하곤 한단다. 나는 한 눈으로 다음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놀다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살펴보지. 어떨 때는 교내 메신저나 전화로 오는 연락을 받고 처리하기도 해. 멀티태스킹 앞에서 곧잘 버벅거리는 내가 1인 3역을 하려니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지?  그러다가 ‘화장실 가야지’ 하며 재빨리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선생님, ○○이가 ××라고 놀렸어요.” “선생님, ○○이가 팔꿈치로 쳤어요.” 하는 목소리들이 나를 불러 세운단다. 그래서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곤 해. 한번은 한 녀석이 우리 반 교실 옆에 있는 계단의 난간 봉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게 발견돼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어. 


쉬는 시간이면 모든 아이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서 놀다가 들어오는 핀란드 학교의 풍경과는 많이 다르지? 핀란드에선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 얼굴을 다 외울 정도로 학교 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 단층 건물로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나갔다 들어오기가 쉽지. 그리고 선생님들을 포함한 교직원들이 조를 짜서 돌아가며 반이나 학년 구분 없이 한꺼번에 운동장에 있는 학생들을 지켜보니까 나머지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 15분 동안 수업 준비를 하거나 차 한 잔 하면서 한숨 돌릴 수도 있고 말이야. 


내가 지금 일하는 학교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어. 핀란드의 웬만한 초등학교 세 개를 합쳐놓은 규모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도심 지역에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4, 5층짜리 건물이야. 우리 반 교실은 4층에 있거든. 그래서 쉬는 시간 10분 동안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놀다가 들어오기엔 시간이 짧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지켜봐 줄 어른이 없어서 위험하기도 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점심시간엔 밥을 먹고 나가서 놀 수 있게 했어. 그런데 선생님들 중에서는 안전사고가 날까 봐 걱정해서 점심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시는 분들도 있다 보니 늘 눈치가 보이더라고. 점심시간에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는지 봐주는 어른이 없는 건 쉬는 시간과 마찬가지라서 사실 나가서 놀 수 있게 허락을 해주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해. 부랴부랴 급식을 먹고 내가 운동장으로 나가볼 때도 있는데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노는 아이들도 있는 데다가 업무를 처리하거나 연락을 받아야 하기도 해서 교실을 늘 비울 수도 없지. 핀란드 학교에서 보았던 것처럼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모두의 아이들을 모두가 돌아가면서 돌보면 좋을 텐데 말이야. 핀란드 학교에 비하면 한국 학교의 학급은 외부와 뚜렷하게 분리된 외로운 섬 같아. 담임들은 그 학급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기 반 학생들을 거의 홀로 책임져야 하거든. 아이들 역시 다른 반이나 다른 학년 아이들과의 교류 없이 그 울타리 안에서만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돼.  

핀란드 어느 학교의 쉬는 시간. 모든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내보낸 다음 교직원들이 돌아가며 운동장의 아이들을 지켜본다.  ⓒ starry night

핀란드 학교의 교실에서도 물론 담임 선생님이 학급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생활지도를 하시지만 아까 쉬는 시간 이야기에서 보듯이 모든 걸 다 혼자 하시진 않아.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심하게 한다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것처럼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담임교사는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니까 그 아이만 붙들고 있을 수 없잖아. 이런 경우에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교장, 교감과 더불어 학교 심리상담사, 학교 사회복지사, 학교 의사, 학교 간호사, 특수교사와 같은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 학생복지팀을 꾸려서 문제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다 보니 핀란드에서는 교사들이 생활지도보다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좀 더 집중할 수가 있고,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교수(teaching) 전문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고 해. 그렇게 담임교사와 학생들을 지원하는 다른 전문가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핀란드의 담임 선생님들은 세세한 금지 규칙이나 벌점제 같은 걸로 학생들을 촘촘히 옭아매야만 자기 반이 그나마 무사히 굴러간다는 생각을 한국 선생님들만큼 하시지는 않는 것 같아. 그래서 아이들도 좀 더 독립적인 존재로 대우받고 더 자율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한국의 학교에서는 새학년을 준비하는 2월마다 복불복 게임이 펼쳐져. 그게 뭐냐면 교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인사발표를 하고 나서 각 학년의 담임교사로 정해진 선생님들이 앞에 나와서 아이들 명단이 들어있는 봉투를 하나씩 뽑는 거야. 그 봉투를 뽑는 선생님들의 표정은 긴장되어 있고 근심이 가득하지. 무슨 봉투를 뽑느냐에 따라 선생님들의 그 해 삶의 질이 결정되거든.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이나 고소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님이 자신의 반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염원하며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뽑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말로는 ‘교육공동체’라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학생의 문제 행동을 연대와 지원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각자도생의 원리에 따라 처리하는 사회에서 담임교사들끼리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는 격이지. 


그리고 핀란드에 비하면 한국의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돌보거나 훈육하는 강도가 강하고 범위도 다양해. 핀란드와 한국 학교 몇 곳을 관찰하면서 왜 그럴까 생각해 봤어. 일단은 양육 문화가 좀 다른 것 같아. 예를 들어 한국 학교에서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아이들 수업 태도나 자세를 더 많이 지적하셨고, 점심시간에 급식 반찬을 골고루 다 먹으라고 지도하신다거나, 아이들에게 교실 청소를 지도하고 검사하셨지. 물론 교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핀란드 학교의 선생님들은 덜 하거나 하지 않는 일들이지. 미성년자를 더 훈육하고 보살펴줘야 한다는 인식이 한국의 양육 문화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교육이 활성화되면서 학부모들이 사교육 시장에는 ‘학력’을 기대하고,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는 ‘보육’의 역할을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지.  


아 참, 내가 하는 일 중에 행정업무가 남았네. 오후에 수업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이 가고 나면 그때부터 교사들은 맹렬하게 업무를 처리해. 행정업무는 주로 담임교사로서 해야 하는 업무와 학교업무 두 가지야. 담임업무는 예를 들어 아이들의 주소에서부터 정서행동검사결과에 이르는 각종 정보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입력하는 거야.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학부모님께 연락을 드린다거나 코로나와 관련한 여러 내용을 학부모님들께 안내하고 각종 서류를 모으는 것도 담임의 일이지. 그리고 학교업무가 뭐냐면 학교의 자체 업무나 교육청이 지시해서 학교로 내려오는 업무를 교사들이 나누어 맡는 거야. 내가 맡고 있는 학교업무는 학생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예방이나 아동학대예방 같은 여러 교육을 진행하고 우리 학교에서 정서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학생들에 대한 회의를 열어서 회의록을 작성한 다음 교육청에 보고하는 거야. 아까 얘기했던 핀란드 학교의 학생복지팀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돌봐야 할 학생이 스물여섯 명 딸린 담임교사인 내가 우리 학교 학생들의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매달 회의를 준비하고 보고서를 쓰는 행정업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거겠지. 그 바람에 정작 우리 반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해도 심각한 것이 아니면 학교업무를 하느라 시간이 없어 지나갈 때도 종종 있어. 또 아이들한테 미안한 건 이런 행정 업무를 하느라 수업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는 거야. 


핀란드 선생님들에게도 행정업무라는 게 있긴 있는데 학생 평가나 학생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일처럼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문서 작업을 보통 행정업무로 생각하신다고 하더라고. 한국 교사들에게 그런 업무는 그냥 수업의 일부로 여겨질 정도로 다른 행정업무들이 넘치는데 말이야. 핀란드에선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많이 하지 않는 대신 교장, 교감 선생님이 행정 실무를 직접 하신다고 해. 물론 한국 학교의 행정실무원에 해당하는 학교비서가 서류 발급과 같은 다양한 지원을 해주시지만 말이야. 또, 핀란드에는 한국의 교육청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고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국에서 교육행정 업무를 하는데 학교에 뭘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내지 않으니 교사들이 행정업무에 쓰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무엇보다 교사들을 자율성을 지닌 전문가로 대하기 때문에 행정 업무가 많이 줄어든대. 학교의 모든 일을 결정할 때 무슨 무슨 위원회를 조직하고 서류를 만드는 데에 교사가 시간을 소비하는 대신, 교사가 수업과 학생 지도에 대해 결정 내린 걸 신뢰하는 태도가 두 나라 학교의 교사들이 체감하는 행정 업무량의 차이를 만든다고 봐.**** 뭐, 물론 네가 알려준 것처럼 이런 핀란드에서도 사회가 학교교육에 요구하는 바는 점점 많아지고, 핀란드 선생님들도 학교 폭력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점점 더 많이 느끼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는 걸 보면 어느 나라에서건 교육자로 일한다는 게 힘든 일이구나 싶어.*****


2016년이었던가. 우리가 있던 교육학부의 석사과정에 한국인 학생들이 여러 명 입학했지. 한국의 초등, 중등 선생님들이 파견을 오셔서 2년 동안 석사 과정을 밟으셨어. 어느 날, 강연 끝 무렵에 토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들이 한국의 교사들은 사회에서 교수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요구받기보다 돌봄 노동자나 교육행정 서비스 제공자로 여겨진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네가 많이 놀랐었잖아. 어렵게 임용 시험에 합격해서 교사가 되었다가 외국으로 몇 년씩 공부를 하러 올 정도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자괴감을 느낀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네가 말했지. 한국의 교사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기르기보다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내린 보고 공문을 민첩하게 처리하는 법을 익히고,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온갖 회의를 열고 서류를 만드는 데 점점 익숙해져 가. 이런 일들이 교사들의 자존감을 갉아먹지. 아이들과의 수업을 준비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들어가야 할 교사의 시간과 노력이 헛된 곳에 줄줄 새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누구? 교사? 행정직원? 콜센터 상담사? 아, 담임!

ⓒ Pablo Stanley  (출처: https://iconscout.com/free-illustration/employee-with-workload-2042819)


학교라는 곳에서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또 핀란드 유학을 계기로 사회복지와 교육복지에 관심을 지닌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은 두 나라의 교육복지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사회복지가 작동하는 원칙과 많이 닮아 있다는 거야. 교육은 한 사회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그 사회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해.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회복지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단계에서 핀란드는 여성을 어머니나 아내, 그러니까 사회구성원을 사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을 하는 시민으로 바라봤어.****** 주로 보편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는데,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교육복지가 곧 교육일 만큼 학생들 누구라도 어떤 학습상의 문제가 있다면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학생복지팀이 심각한 정서, 행동상의 문제에 개입해서 학급 담임과 학생들을 지원해 오고 있잖니. 


한편, 경제 발전을 열심히 부르짖었던 한국은 가족, 특히 여성에게 사회구성원 돌봄과 같은 사회 복지의 책임을 떠넘겼고, 그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복지에 들어갈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었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담임교사라는 노동자 한 사람에게 생활지도(등교-하교 전까지 학생 돌봄, 상담)와 같은 교육복지를 제공할 책임을 몰아주는 형태로 이어져 왔어. 생활지도와 행정업무를 담임교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에 교육 인력을 채용할 예산을 아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만큼 바빠진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통제 위주의 방식을 빈번하게 써야 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학생들이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잃게 돼. 교사 수를 늘려서 대도시 과밀학급의 학생 수를 줄이고 핀란드처럼 교장, 교감이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학생들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무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라살림을 담당하는 정부 관료들은 경제논리로만 교육을 셈하면서 이 나라의 학급당 학생 수가 OECD 평균에 저절로 맞춰질 그날까지 저출생과 학령인구 감소 타령을 돌림노래로 부를 기세구나. 


그런데 이런 한국으로, 학교로 왜 돌아왔냐고? 밥과 국에 반찬과 과일까지 맛도 영양도 감동스러운 학교 급식을 먹을 때, 아이들 앞에서 내 주특기인 농담을 모국어로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을 때, 그리고 아이들 중 단 몇 명이라도 진지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 ‘이 맛에 학교 가지’라고 생각해. 기후 위기 같은 이야기를 하면 어떤 어른들은 ‘너는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길래?’ 하며 상대를 공격하거나, ‘원래 간빙기 때는 지구 기온이 오르는 거 아니냐?’ 며 인간으로 인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린 인류들은 자기 합리화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 특유의 유연한 자세로 이야기를 듣지.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우리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처럼 시위할래요!”라고. ‘얘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시위 현장에 나가서 구호도 외치고 피켓도 들면서 힘을 빼고 오면 쉬는 시간엔 덜 장난치지 않을까.’ 스물여섯 인류들에게 부대끼는 담임교사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학교로 간다. 오늘은 화장실 좀 마음 놓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끔찍한 침략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고, 어딘가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목숨을 앗아갈 미사일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해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가장 빛나는 계절이 찾아오는 것은 독재자도 어쩌지 못하겠지. 핀란드의 여름은 여전히 여름이겠구나.******** 아니, 그 모든 위기로 지친 마음을 달래줄 만큼 찬란한 여름이어야만 해. 숲에서 직접 딴 블루베리로 파이를 만들고 호수처럼 잔잔한 뚜르꾸 앞바다, 점점이 펼쳐진 섬 바닷가로 달려가 물속에 첨벙 뛰어들렴. 여름 오두막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스마트폰도 잠시 꺼두고 자연 속으로 침잠하렴. Hyvää kesää(여름 잘 보내)!


J가.


* 초등학교에서는 수업 한 시간이 40분이다.

** Vainikainen, M-P., Thuneberg, H., Greiff, S. & Hautamäki, J. 2015. “Multiprofessional collaboration in Finnish schools.” International Journal of Educational Research 72: 137-148.

    문상연. 2018. 핀란드의 교육 거버넌스에 관한 연구: 종합학교 개혁과 정책사례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 Yoon, J. 2019. “Quality of School life of Adolescents in Finland and Korea: A Cross-cultural and Comparative study.”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Turku.

   Kim, Y. 2016. “Homeroom teachers’ perceptions over their tasks of school guidance−A comparative study of Korea and Finland.” Korean Journal of Comparative Education 26 (5): 93–122. 

**** 임미나. 2019. 핀란드의 교원 업무 경감 정책 현황. 한국교육개발원 해외교육동향 기획기사 348호. (2019.3.27.)

***** YLE. 2018. Educators in Finland "overworked and stressed," survey says.  https://yle.fi/a/3-10205525 (2018.5.15)

 ****** 김병찬. 2011. 핀란드 교육복지제도의 특징과 시사점. 교육비평 30: 82-104. 87쪽 참고.

 *******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2018년 8월 학교를 빠지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으로 이어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레타 툰베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조지 오웰. 2010.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 출판사. ‘두꺼비 단상’에 대한 오마주.

********* 커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all4ed/35694444173 (사진: Allison 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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