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9
선생님,
한국은 이미 완연한 봄이겠지요? 이곳은 아직 봄이라 하기엔 쌀쌀한 날씨지만 성큼성큼 낮이 길어지고 있어요. 이른 아침부터 제 방 창문 너머로 새들이 활기차게 지저귀는 소리가 잠결에 들려오는가 하면 햇살이 커튼을 뚫고 들어와서 아침잠을 설칠 때도 많아요. 핀란드 사람들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높아져 갑니다. 저 역시 감정의 변화를 통해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어요. 겨울에는 피아노 연습실 창밖으로 보이는 먹색 하늘을 보면서 베토벤의 달빛소나타를 쳤는데, 요즘엔 인상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피아노곡에 손이 가네요.
요즘 저는 한국과 핀란드 학생들의 학교생활의 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은 핀란드 사회의 향후 4년을 좌우하게 될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에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나 투표를 하게 될 시민들이나 좀 더 만족스럽고 나은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겠지요. 지금까지 학생의 경우 성적이, 성인의 경우에는 소득이, 그리고 국가의 경우에는 GDP가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져 왔지만 저는 이런 것들 못지않게, 어쩌면 이런 것들보다도 구성원 사이의 민주적인 관계나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도 언젠가 저한테 말씀하셨죠. 학교생활의 질을 연구할 때 그 공동체 안에서 관계가 이루어지는 방식과 문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요.
논문 쓰는데 참고하려고 핀란드 교실에서 현장연구를 진행한 교육인류학자들의 글을 읽었어요. 그중에서 인상적인 건 교사의 지시에 도전하는 중 2 남학생에 대해 깨알같이 묘사해 놓은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수업시간, 쉬는 시간과 같은 하루 일과에서 본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대목도 눈에 띄었어요. 예전에 제가 석사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방문했던 서울의 어느 중학교 2학년 학생들도 비슷한 내용을 설문지에 썼지요. 이를테면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해결하는 협동학습이나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활동 위주의 수업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런 걸 보면 이 세상의 중 2 혹은 열네 살이라고 불리는 인류들의 피에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게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핀란드 선생님들 역시 7,8학년을 가르치기 힘들어하신대요. 핀란드가 한국에 비해 어른과 청소년 사이의 권력 격차가 작은 좀 더 수평적인 사회라고 하지만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위계가 존재할 것이고, 이 사춘기 청소년들에겐 그런 수직적 관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겠지요.
핀란드 문화에서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 사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북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다소 권위적인 문화 역시 존재하고 있는데요.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핀란드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경계 국가이고, 또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동양적인 요소가 문화에 가미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리고 핀란드 교사들은 대체로 친구 같은 선생님이기보다는 교육 전문가로서 학생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르치는 것을 선호하고 다른 북유럽 국가 교사들에 비해 교사 중심의 수업 방식을 좀 더 많이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 핀란드 종합학교를 방문했을 때 선생님들께서 권위 있는 눈빛과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시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심지어 교생실습을 하러 나온 교육학과 대학생들 중에서도 엄한 표정으로 수업 실습을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어린 초등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것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어떨 땐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약간 얼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물론 선생님들마다 아이들마다 수업 분위기가 다 다르겠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이런 배경이 있었네요.
작년 11월, 헬싱키에 있는 어느 종합학교를 찾아갔어요. 그때 7학년 학생들의 핀란드어 수업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담당 선생님께 허락을 받은 다음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교실 뒤쪽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한 모둠씩 교실 앞에 나와서 토의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덩치가 저보다 더 큰 몇몇 아이들이 다른 모둠이 발표하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더군요. 그 아이들의 얼굴엔 마치 ‘I’m so cool.’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듯했어요. 선생님은 별다른 주의를 주시지 않은 채 수업을 진행하셨어요. 그러다가도 선생님들이 그 아이들을 향해 수업에 관한 질문을 하시면 대답을 곧잘 하는 것도 신기했어요. 그렇게 수업이 끝나가나 싶더니 갑자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냐고 제게 물으셨어요. 딴짓을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저에게 주목을 하는 바람에 좀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섰지요.
학교생활 중에서 어떤 시간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체육, 쉬는 시간, 음악, 미술, 목공과 재봉 시간이라는 대답이 많았어요. 그리고 앞으로 학교생활을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뭐냐고 물었더니 저스틴 비버 느낌으로 머리를 아주 맵시 있게 다듬은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어요. 그리고는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는 권위적인 태도가 싫으니 그걸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학생 하나는 가만히 앉아서 듣는 수업보다는 직접 만들고 몸을 움직이는 수업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교육 인류학 논문, 그리고 서울에서 제가 찾아갔던 중학교의 학생들이 설문지에 적은 내용과 비슷한 의견이었어요.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학생회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었어요. 실은 제가 짓궂은 질문을 드렸어요. 학생회라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이나 수업 내용 선정과 같이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른바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자꾸 경험하다 보면 학생들의 실망감이 쌓이게 된다는 연구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요. 그 선생님께서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만, 학교 급식, 학교 행사, 수업 방법 같이 제한된 분야에서라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1층 로비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는데 그것도 학생회에 올라온 안건 중 하나였다고 하셨어요.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교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결정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애쓰시는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제가 예전에 학생들을 대했던 모습도 생각해 보게 되었죠. 저도 한 때 가르치고 배울 내용은 학생이 아닌 교사가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네요. 교사가 열심히 고민해서 수업 준비를 하고 미리 생각해 온 학습 목표로 학생들을 이끄는 매끈한 수업, 교사가 야근을 불사하고 손맛을 발휘해 반짝반짝 빛나도록 꾸민 교실 환경이 교사의 전문성인 줄로 착각하던 제 모습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교실에서 앉을 자리도 아이들과 함께 의논을 해서 정하기보다는 교사인 제가 치밀하게 생각해서 만든 자리배치표를 ‘짜잔’하고 내미는 경우가 많았지요. 막연하게 민주적인 학교를 꿈꾸어왔던 저조차도 민주적인 문화를 경험해 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수업도, 교실환경도, 자리 배치도 교사가 열심히 준비해서 내미는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민주주의가 불러올 여러 소음과 갈등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이들의 의사결정능력을 믿지 못하는 저의 나약한 마음이 있었던 거지요.
오늘 총선 투표에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사뭇 긴장됩니다. 제 주위의 핀란드 친구들은 각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선거 자판기(Vaalikone)’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에 제일 마침맞은 후보가 누구인지 미리 골라놓는 모습이었어요.** 데이팅 앱에서 상대를 골라주는 것 마냥 ‘이 후보는 당신과 유사도 80%다’ 하는 식으로 후보들을 보여주는데 제 절친 A는 세 종류의 선거 자판기에서 나온 결과를 다시 비교해서 고르더라고요. 결혼이라도 하는 줄 알았어요. 저는 비록 국회의원 투표권은 없지만 핀란드에 오래 머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전국 일간지인 헬싱긴 사노맛(Helsingin Sanomat)에 짧은 글을 기고했어요.
(…) 학교 선택권이라는 단어는 학부모와 학생이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로 대접받는 사회에서 매혹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선택권은 구별 짓기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선택권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부유한 부모들에게는 자녀에게 자신의 사회 계층을 물려주기 위한 배타적인 통로를 제공할 것이다.
핀란드는 복지 국가와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가치를 지킴으로써 ‘핀란드 방식’을 공고히 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 시장화 정책을 빠르게 도입할 것인가? ‘선택의 자유’는 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나는 이번 총선이 핀란드 교육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에선 항상 일요일에 대선과 총선을 치러요. 페이스북에서는 오늘 투표를 마친 친구들이 인증글과 사진을 올리고 있네요. 그리고 유튜브에선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열린 주말 집회에서 시민들이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고 있는 장면이 극사실인 듯 초현실처럼 흘러나오고 있어요. 민주주의의 상징인 광장에서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음이 분명한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고 있는 한국 시민들의 상황도, 세계 경제 위기와 극우 세력의 득세 속에서 보편복지가 추구하는 공공재로서의 가치가 손상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핀란드 시민들의 상황도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민주적인 사회는 선거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삶의 양식이 집과 학교, 사회에 서서히 스며들면서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거겠지요. 오늘도 열네 살 인류들을 중2병 괴물로 취급하지 않고 민주적인 관계를 위해 아주 비효율적으로 애쓰고 계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지는 하루입니다. 그리고 밀대걸레가 자빠져 가로누워 있는 교실에서 기계적인 역할 분담이나 상벌점제 대신 민주적 시민성을 고민하셨던 선생님의 이야기도 부쩍 그리워지는 하루입니다. 한국에서 직접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눌 날을 기다립니다.
뚜르꾸에서,
J 드림
* Simola, H., Kauko, J., Varjo, J., Kalalahti, M., & Sahlström, F. 2017. Dynamics in education politics and the Finnish PISA miracle. Oxford Research Encyclopedia of Education. Retrieved from http://education.oxfordre.com/view/10.1093/acrefore/9780190264093.001.0001/acrefore-9780190264093-e-16?rskey=eD0yeA&result=1 23-26쪽 참고.
** 핀란드에서는 전국을 13개 광역 선거구로 나누고, 해당 선거구의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원 의석수를 비례 배분하는 전면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유권자가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 개인을 동시에 선택하는 방식으로 투표가 진행된다. 대략 열 개 정도 되는 정당마다 후보들의 사진과 기호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포스터를 내건다. 각 정당별로 수십 명에 이르는 후보자들이 출마하기 때문에 주요 신문사나 방송사에서는 선거철에 유권자들이 후보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일명 ‘선거 자판기(Vaalikon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선호도에 따라 응답을 하면 자신의 생각과 가장 유사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후보들을 찾아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핀란드의 선거제도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서현수의 북유럽 정치학 – 비례대표제는 죄가 없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526.html 를 참고할 것.
*** Mihin suuntaan koulutus on menossa? (핀란드 교육,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Helsingin Sanomat. 201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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