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고메스의 <그랜드 투어>를 보고
영화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의미의 무비movie, 영화를 찍는 필름에서 기원한 필름film, 영화라는 것(?)을 공간을 포함하는 의미의 시네마cinema. 세 단어 모두 영화를 지칭하는 말이면서 각각 영화의 특성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다. 영화를 구성하기 위해서 어느 한 단어도 빠질 수 없지만, 그 중 시네마cinema는 가장 영화적인 단어이면서 영화라는 예술을 완성시켜주는 단어일 것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영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공간이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없다면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도 없고, 관객도 존재할 수 없다.
영화관은 굉장히 오묘하면서도 특별한 공간인데 이미지와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관객은 시각이라는 감각에만 의존하는 동시에 모든 감각을 통해 영화를 경험한다. 미겔 고메스의 <그랜드 투어>(2024)는 이러한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영화적 경험으로 가득 메우는 작품이다. 리산드로 알론소의 <유레카>(2023), 지아장커의 <풍류일대>(2024)처럼 <그랜드 투어>는 과거와 현재, 이미지와 현실이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며 영화라는 예술이자 상품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미겔 고메스의 <그랜드 투어>는 영화 내내 두 가지 축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한 축은 이야기이자, 나레이션이자, 과거이다. 또 하나의 축은 현실이자, 이미지이자, 현재이다. 두 축은 영화내내 공존하는 동시에 관객을 영화 속으로 몰입시키기도 영화 밖으로 몰아낸다.
한 축은 영화의 시놉시스 그대로이다. 1918년 버마의 랑군에서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겁쟁이처럼 싱가포르로 도망간다. 싱가포르로 도망간 에드워드는 몰리를 피해 필리핀, 일본, 중국, 등 다양한 아시아의 국가들을 여행한다. 다양한 아시아 국가들의 이미지들은 이 둘의 쫓고 쫓기는 여행을 위해 전시되고 도구화된다. 또한 나레이터는 에드워드와 몰리가 방문하는 각각의 국가들의 언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객을 그들의 사랑이야기로 초대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관객을 스크린 밖으로 내쫓는다. 나레이터의 목소리와 동시에 보여지는 아시아의 현대 도시 이미지들은 줄곧 외화면의 현실을 지시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에드워드와 몰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시에 현재의 이미지를 마주하고 이미지의 파편들 속에서 부유한다. 미겔 고메스가 직접 아시아를 방문하여 촬영한 현재의 이미지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에드워드를 따라 자신들만의 그랜드 투어를 경험하게 한다.
영화의 절반이 에드워드의 시점에서 진행된다면, 나머지 절반은 에드워드를 만나기 위해 버마에 도착한 몰리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몰리는 에드워드를 맹신하며 에드워드가 이미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그를 만나기 위해 에드워드의 발자취를 쫓는다. 몰리는 에드워드의 그랜드 투어를 따라왔던 관객들처럼 에드워드의 투어를 따라가며, 다시 한 번 관객을 과거와 현재, 나레이션과 이미지,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전쟁터로 초대한다. 디게시스 속 사운드와 디게시스 밖 사운드가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그녀는 다른 남성에게 청혼을 받기도, 불치병으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를 쫓는다.
굳건한 몰리의 믿음과는 달리 영화는 두 축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다가 특정한 결말 없이 끝난다. 몰리는 에드워드를 만날 수 없었으며, 에드워드의 생사와 행방은 더욱 불확실해진다. 그럼에도 엔딩에서 몰리에게 떨어지는 빛은 카메라를 통해 필름에 기입되듯이 관객에게 강렬한 영화적 경험을 기입하고 선사한다. 이렇듯 <그랜드 투어>는 영화내내 영화관을 영화적 공간으로 만들어내고 관객을 색다른 투어로 이끈다. 모든 여행이 끝나고 몰리가 두 노인의 부추김을 받으며 화면 밖으로 나가듯이 관객들은 투어를 마치고 영화관 밖으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