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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학창시절 이야기

by 김세은

그땐 그랬지

김세은

어제 새벽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꿈 속에서 교복 입은 어린 내 모습을 보았다.

문득 희미하게 떠오르는 아련한 여고시절의 추억들이 조각조각 떠올라 머리 속을 부유한다.

첫 기억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잠은 저 멀리 줄행랑 친다.


특별하지도 모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학창 시절이었다.

독특했던 교복카라에 풀을 매겨 빳빳하게 다림질 해서 입어야 지적 받지 않았다.

규율이 엄격 했고 2박3일 생활관에서 한복입고 예절교육과 요리 실습도 병행하는

현모양처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나의 학교였다.

요리시간에 배운 것은 집에 와서 꼭 복습을 해 동생들이 무척 좋아했다.


옛날 그 시절 간첩 검거 관련 신문기사 오려 “양지”라는 제목 파일에 풀로 붙여 스크랩하는 것이 일반사회 숙제였는데 앞 표지에 붙여있던 이름 때문에 생긴 일이다.

책가방 받아준 한양대학생에게 온 편지 다행히 수위 아저씨가 받아 전해주어 내 손까지 오게 되었다. 편지 말미에 “그물에 갇힌 너로부터 편지 있길” 그 문장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께 보이며 자랑하다 혼나서 무심코 찢어 버렸다.

답장이라도 몰래 해볼걸 많이 아쉽다.


세 살았던 주인집 대학생과 빵집에서 만났는데 누가 볼까 두려워 가슴이 두근거리고 부끄러워 빵 한쪽도 먹지 못했다. 요즈음 남녀학생들이 모여 앉아 자유롭게 재잘거리는 모습은 참 신선하고 부럽다.


앞줄에 앉은 반 친구 영희가 자가 필요했던 국어 선생님에게 갖다 드리지 않고 30cm자를 무심코 교단으로 던졌다. 순간 당황한 선생님께 따귀를 맞아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당시는 엄격한 훈육과 체벌 문화가 흔했던 때였다.

지금 같으면 학부모에게 고소 당할 일이 아닌가!


수업시간에 남산에 나무젓가락과 깡통 준비해서 송충이 잡으러 갔는데 징그럽고

무서워서 망설이다가 혼나던 일. 공해가 없던 그 시절 그땐 그랬다.


나의 중1시절 흑 역사다.

양손에 잔뜩 묻은 잉크 때문에 앞에 나가 손을 들고 벌을 서던 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특별활동시간 소질도 없는 무용 부로 옮겼는데 학교예술제에서 무용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순서 틀리는 실수를 해 무용선생님에 호되게 야단맞으며 “너 때문에 망쳤어” 하던 말씀이 아직도 아물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혼자 하교 길에 걸어가다 보면 교복 입은 아담한 작은 키 때문에 키 큰 초등학생들에게 꼬맹이라고 놀림을 받아 창피했던 일.


낯선 아저씨가 다가와 너 또래 아이들이 많이 있는 재미있는 곳에 가자고 했다. 그때는 아마 순진무구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저는 문방구 하는 엄마 도와야 해서 못 가는 데요” 천진하게 말했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소름 끼치는 일이었는데! 60년대 중학 시절에도 이런 황당하고 끔찍한 일이 있었네!


어느 여름날 하교 길에 종이승차권을 잃어버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전농동 굴다리 밑을 걸어서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한참 만에 집에 갔던 일,

벼락 공부한다고 약 먹고 밤샘 공부하다가 기절해 아빠 등에 업혀 병원 실려 가고,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먼 남산 도서관 이른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리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다닥다닥 붙어있던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가며 참고서적 싸게 사고 남은 돈으로 군것질도 해보고. 조금은 드라마틱하다.


문방구 안쪽으로 들어가 고추 가루 뿌린 간장에 찍어 먹던 군 만두. 지금 어디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다.

하교 길에 친구들과 학교 근처 노점상에서 옷핀으로 초장에 찍어 먹던 해삼, 쪼그려 앉아 동그란 원(룰넷 돌림판)을 돌리거나 달고나 뽑기 바늘에 침 발라가며 뽑던 일. 지금은 ‘오징어게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아닌가?

모바일 게임에 푹 빠져있는 지금의 학생들과 많이 대비가 된다.


보리밥이 창피해 다 열지 못한 도시락 뚜껑 그 당시는 왜 그리 창피한 일이었는지, 점심 시간되기 전에 도시락 까먹고, 겨울에는 난로 위에 양은도시락 쌓아 누룽지의 고소한 향과 김치 익는 냄새가 풍기던 교실 안 풍경.

학교 급식문화로 탈바꿈한 지금은 볼 수 없는 추억 속 장면이다.

남해로 수학여행가서‘국제여관’에 묵을 때 먹다 남은 음식 양동이에 모두 쏟아 부어 재 사용 못하도록 방마다 다니며 신나게 담았던 일.

치기 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


꿈에서 시작되어 뜬금없이 되돌아 본 빛 바랜 학창시절의 추억들.

대전 연수교육 중에 일어난 대 참사!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후배들의 안타까운 슬픈 사고를 듣고 충격이 컸었는데. 그 사건도 벌써 30년이 흘렀다.


모교에 대한 사랑과 6년을 함께한 그리운 선생님, 여고 동창생들을 그려 봅니다.

몇몇 동창생들의 다양한 소식을 단톡방에 올리며 공유하고 있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너무 변해버린 주름진 얼굴에서 그 순수하고 해 맑았던 학창시절의 모습을 눈 빠지게 찾아보며 50여년간에 격세지감을 홀로 느껴보네요!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야 하는 글쓰기! 참 모질고 잔인하다.

지난 과거도 다 털렸다”.

202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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