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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라기-나만의 보물창고

by 김세은

책 바라기-나만의 보물창고

책은 나의 애인이며 애착이 남다른 친구다.


“ 띡띡” 핸드폰이 떤다.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되었습니다” 라는 알림 문자다.


설렘보다 살짝 다른 두근거림으로 기다리던 책이 도착 했나 보다.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흐르는 강물처럼”이 왔다.

멀리서 반가운 친구가 온 것처럼 고무장갑 낀 채로 후다닥 뛰어 나간다.


조금 있으려니 “띡띡” 재차 울린다.

아마도 엊그제 주문한 책장이 왔나 보다.

작은 초등학생의 키 만한 100cm 4단짜리를 종이줄자로 이리저리 재보고

스위치가 가리지 않게 크기를 맞추어 신중하게 결정했다.


쇼파 옆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흡사 울퉁불퉁한 해안가 채석강을 연상시킨다.

그뿐인가 식탁 한 모퉁이에 위태롭게 작거나 크거나 읽는 순서대로 아무 성의 없이 쌓아 놓은 책 더미.

요즈음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두서없이 주문해서 읽다가 책갈피를 끼어 넣고

손에 잡히는 데로 펼쳐 든다. 그 방치한 모습 조차도 보기엔 좋았다.

그 속에는 살아 숨쉬는 내가 있다.


책에 대한 애정은 과거 첫 직장 다니던 20대 초반부터 시작 되었다.

그 시절, 매월 월급날이면 광화문에서 남대문 한국은행까지 걸어서 책값의 20% 저렴하게 5-6권정도 구매하곤 했다.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집착에 가까운 남다른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책이라면 무작정 아낌없이 사서 책장에 채우기를 좋아했던, 그냥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지적인 허영과 배움에 대한 갈증? 뭐 그런 것이 아니였을까?


1970년대 내가 원하던 대학만 꿈꾸던 미련한 고집과,

1살 터울의 남동생의 대학입학과 겹치는 바람에 그 당시는 포기해야만 했던 젊은 시절의 캠퍼스의 꿈,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된 인생의 방향,


하지만 책은 네게 잃어 버린 시간을 대신 해 주었다


책을 통해 이문열, 이청준,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과 숨결을 나누고 사유를 함께 할 수 있었다.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배움에 대한 열망을 다시 꿈꾸게 해준 동력이었다.


훌라프 돌리다 책 탑을 건드려 와르르 무너져 버린 어느 날,

드디어 책들이 거주 할 새 책장을 주문하게 되었다.


실물이 어떤지 보고 싶어 무거운 골판지 BOX를 아이들에게 시켜 거실 바닥에 갖다 놓고, 퇴근 후 운동 하고 밥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빨리 조립해 달라고 조른다. 밤 11시다.

마루에 스크레치 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잔소리까지 보탠다.

두 녀석이 하나하나 뺏다 끼웠다 반복하며 완성된 소담한 책장을 만들어 낸다.


거실과 주방 사이 식탁 옆으로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최근에 구입한

책들을 하나씩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에 꽂아 넣는다.

제목과 내용을 다시 들쳐 보면서 차근차근 제자리로 돌려 보낸다.

아무렇게나 방치한 것 같은 죄스러움이 사라지고 마음도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비밀번호 없는 열려 있는 나만의 보물창고를 마련했다.

책과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편안한 유대감을 느낀다.


요즈음 TV도 끊고 사회 모든 현상에 무신경해진 지금, 일상이 책과의 소통과

처음 시작하는 글쓰기로 하루의 틈을 채워간다.


책은 단순히 종이더미가 아니다.

책은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다,

그 창을 통해 어제를 반추하고 오늘을 다독이며 내일의 희망을 꿈꾼다.


이 글은 읽는 당신에게 책은 어떤 친구인가요?



커피를 끓어 큼직한 머그잔에 따라 마시며 책과 마주한 나와의 대화를 듣는다.

지금 이순간도 책 바라기는 여전하다.





20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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