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찾아든 어떤 하루

by 김세은


지난주 금요일, 늘 걷던 산책길에서 뜻밖의 하루를 만났다.

경사진 보도블록 하나가 조금 솟아 있었다. 아주 사소한 높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2센티미터 남짓한 턱이었다.

무심코 걷다 왼쪽 운동화 앞부분이 그 턱에 걸렸다. 넘어졌다고 하기보다, 순간 몸이 접히듯 ‘꼬그라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내리막길 미끄러지며 왼쪽 무릎과 갈비뼈, 얼굴까지 땅에 힘껏 부딪혔다.


‘큰일이 났구나’ 어디 한 군데쯤은 금이 갔을 것 같은 생각이 먼저 스쳤고, 그 다음엔 엉뚱하게도 창피하다는 마음이 따라왔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헐렁한 운동화와 양말까지 벗겨진 채로 말이다.


입안에는 모래가 씹혔고, 입가가 따끔거려 손으로 더듬어 확인해 보았다. 툭툭 털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보니 손바닥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생채기 사이로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그런데도 통증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시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안도하게 했다.


고작 2센티미터 턱에도 하루가 바뀔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천행이었다. 무릎에는 붉은 멍이 들었지만 갈비뼈도 무사한 듯했고, 일주일쯤 지나자 미세하게 남아 있던 불편함도 사라졌다.


이 작은 사고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불러냈다.

몇 해 전, 친정엄마가 싸준 김치통을 양손에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중이었다. 비탈길에서 내려오던 자전거가 옆구리를 세게 치고 지나갔고, 나는 그대로 넘어졌다. 그날은 119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정성껏 담아주신 김치통은 깨져 바닥에 흩어졌고, 붉은 국물이 피처럼 흘러내렸다. 팔꿈치에는 달걀만 한 혹이 부풀어 올랐다. 검사 끝에 다행히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이후로 한동안 통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했다.


오늘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두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말이 기도가 되어 저절로 흘러나왔다.


또 다른 장면도 떠올랐다.

비 오는 출근길, 바로 앞에서 걷던 아주머니가 미끄러지며 차도로 쓰러졌다. 피가 보였고, 나는 겁에 질려 덜덜 떨기만 했다.

119를 부를 생각조차 못 한 채 서성이고 있을 때, 마침 지나던 차량에서 두 사람이 내려 그분을 태워 갔다. 그 아주머니는 비 오는 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마 인도 끝 대리석 판을 밟아 미끄러진 듯했다. 그날 이후 비나 눈이 오는 날엔 대리석 위를 밟지 않게 조심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도처에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TV 방송에서도 예기치 않은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빼앗긴 생명들,

한국인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던 외국인 모녀 차량사고, 마음을 무겁게 했던 여러 교통사고들,

얼마 전 들려온 아내의 뱃속에 쌍둥이를 남기고 떠난 젊은 아버지의 슬픈

이야기까지.


산에서 내려오다 나무뿌리에 걸려 종아리뼈가 부서져 여섯 달을 입원했다는

선배의 이야기,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정강이뼈가 바스러졌다는 치과의사 어머니의 이야기.

요즘 들어 유난히 자주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날도 그래서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땅을 보며 천천히 딛는다.

발 밑을 살피고, 주변을 돌아보고, 스마트폰도 가방에 넣었다.


삶은 늘 평탄한 길만 내어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작은 턱 하나가 하루를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무탈한 오늘에 다시 한 번 조용히 감사를 보낸다.


며칠 동안 마음에 걸리던 하루를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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