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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싶어 2

러닝을 시작한 이유

by 한슨생

“오빠. 오빠는 어깨가 너무 좁아. 살도 점점 찌는 것 같아. 앞으로 나를 더 만나고 싶으면 헬스장 가서 운동이나 시작해.”




나보다 7살 어린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하고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사랑받을 만한 외모를 가지고 싶었다. 헬스장은 중학교 시절 한 달 정도 잠깐 가봤던 것이 전부라서 처음엔 꿔다 놓은 보릿 자루 같은 모양새로 운동했지만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내 뻘쭘함을 누르는 동력이 되었다. 2012년의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헬스장에서 어깨를 넓히기 위해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성실히 바벨을 들고 내렸고 살을 빼기 위한 유산소 운동으로서 트레드 밀 달리기도 꾸준히 하였다.

하지만 근력 운동은 내 취미가 아니었다. 벤치 프레스를 밀었다 당겼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너무 지루했다. 그런데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것은 꽤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장에서 본 운동을 하기 전에 워밍업 하는 목적으로 처음 달릴 때는 시속 9km의 속도로 3분을 채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와 몸은 쓰면 쓸수록 는다는 말처럼 트레드밀 달리기 시간이 누적될수록 폐활량이 늘어나며 쉬지 않고 꽤 오랫동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헬스장 방문이 거듭될수록 근력 운동보다는 달리기를 하며 운동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때다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심폐지구력은 좋아졌지만 어깨너비는 헬스장 다니기 이전과 별 다르게 변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헬스장을 다닌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나를 헬스장으로 향하게 만든 그녀는 내 곁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달리기 뿐만 아니라 근력 운동도 좀 더 열심히 해서 그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건만. 기다려 주지 않았던 그녀를 ‘나쁜 여자’라 욕하며 며칠간은 못난 인간처럼 굴었다. 그래도 헬스장만큼은 쉬지 않고 계속 다녔고, 트레드밀 벨트 위에서 꾸준히 땀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복기해 보았다. 그녀에게 사랑받기 위해 헬스장에 갔던 나는 비록 어깨는 넓히지 못했지만 살을 좀 빼면 그녀가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 기대감으로 열심히 달렸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달리기를 반복하며 비로소 내 착각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오빠. 헬스장이나 좀 다녀.”라고 말한 그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내가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외모를 멋지게 만드는 것보다 내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훨씬 중요함도 나중 에서야 알게 되었다. 헬스장에서 흘렸던 땀과 함께 그녀에 대한 미련도 흩어 버렸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다. 자기 객관화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달리기의 재미도 알게 한 2012년의 그녀는 진정한 내 은인이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옅어질 때쯤 계절도 좋아져 밖에서 달리는 날도 자주 생겼다. 달리기가 본격적인 취미로 자리 잡았던 그 시기에 나는 소개팅도 꾸준히 하였다.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들의 취미는 각양각색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땀 흘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상대의 취향이야 어떻든지 간에 달리는 일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소개팅 시간도 달리기를 하는 시간을 피해서 잡았다. 어쩌다 마음에 든 여성을 만나고 있는 시기에는 그녀를 떠올리며 머릿속에서 분비되던 도파민을 달리기에 대한 기폭제로 삼아 더 열심히 달렸다.

‘이렇게 달리고 나면 몸무게가 빠지겠지. 그리하여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더 괜찮은 외모를 보일 수 있을지도 몰라.’

때로는 맘에 들었던 여자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의 ‘1’ 표시가 지워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혼자 김칫국 마셨음을 깨달아 쓰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새로운 만남과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최소한 두 가지는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에 의한 두근거림 ⇄ 사랑받을 기대에 의한 두근거림.

달리기를 하며 위와 같은 생물학적 반응과 감정적 동요 사이의 균형 반응식에서 평형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몇 년을 계속 달리니 오른쪽으로 가는 정반응과 왼쪽으로 가는 역반응 사이 그 어디쯤에서 두근거림의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딱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보니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순간이 왔고 달리기 자체를 위해 달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계속 달리다 보면 사랑받거나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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