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며 생긴 변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학교 업무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가도 평소와 다르게 좀처럼 학생들에게 뭔가를 말할 의욕이 안 생긴다. 한숨을 쉬며 복도를 거닐면서 빨리 퇴근 시간만 오길 기다린다. 퇴근길에 유치원에서 쌍둥이들을 하원시키는데 딸이 유독 짜증을 부린다. 인내심 게이지가 점차 낮아진다. 집에 돌아가서 쌍둥이들에게 밥을 먹이는데 숟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는 여섯 살짜리 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거슬린다. 드디어 인내심 게이지가 바닥까지 다다랐다. 나는 또 고함을 질렀다.
“야. 이제 곧 일곱 살인데 밥도 제 스스로 못 먹으면 어떡하냐! 어이구.”
옆에서 언성을 들으며 내 얼굴 표정을 보던 와이프가 한 마디 한다.
“여보. 오늘 러닝 안 했지?”
빙고.
거의 매일 러닝을 하다가 근래 들어 학교 일이 바빠서 3일을 뛰지 못했더니 스트레스가 많이 축적되어 있었나 보다. 달리기를 하다가 갑작스레 며칠 하지 못하면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낸다. 빨리 또 달려야겠다는 마음에 조바심이 나서 약간의 불안증세를 나타내기도 한다. 일종의 달리기 금단 현상이다. 이전에도 달리기 금단 현상에 의한 판단력 상실로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학생 기숙사가 있는데 그 내부에는 학생들을 위한 운동 시설도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밖에 뛸 용기가 나질 않아 나는 종종 그 기숙사 운동 시설의 트레드밀 위를 달리곤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이었던 시절, 감염병 전파 예방 차원에서 기숙사 외부인 출입이 일절 금지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교장은 기숙사 학생들을 제외하고 그 어떤 학생도 기숙사에 출입하지 말도록 지령을 내렸고 회의 시간에 교사 중에서도 기숙사 출입은 사감 선생 한 명만 가능함을 공언했다. 하지만 매우 추웠던 2021년 어느 날, 며칠째 달리지 못했던 나는 교장의 경고를 무시한 채 행정실에서 기숙사 출입 카드를 몰래 들고 나와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기숙사 학생 모두가 퇴사하여 헬스장을 비롯한 기숙사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지만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기를 시작하자 이내 근거 없는 평정심이 찾아왔다.
‘역시 달리길 잘했어.’
하지만 나는 기숙사 헬스장의 CCTV가 두 눈, 아니 한눈을 시뻘겋게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기숙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사감 선생은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을 보고는 CCTV를 돌려보았다. 불운하게도 그 당시 기숙사 사감 선생은 직업 정신이 매우 투철하였고 교장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다. 그리고 교장은 나를 매우 싫어했다. 사감 선생은 곧바로 교장에게 나의 비위(?) 사실을 보고했고 교장은 나를 호출했다. 10분 넘게 교장의 호통과 설교를 들은 나는 그 뒤로 나는 3년간 기숙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그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실외 달리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달리는 매력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달리기 중독이 더 강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중독된 것이 달리기가 맞나 의심하는 때도 있다. 평소보다 더 힘들게 뛰거나 더 긴 거리를 뛰고 나면 갈증도 유독 심한 어느 여름날이었다. 물을 마시고 싶은 욕구를 조금 더 참고 샤워를 다 한 뒤 타월로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냉장고 속에서 차가운 캔 맥주를 꺼내어 꼭지를 땄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캬~!”
맥주 CF를 찍는 배우처럼, 한쪽 눈이 징그러워지며 가슴속으로부터 찐한 감탄사가 절로 올라온다. 이럴 때면 술을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무리하게 뛰는 것은 술 마실 때의 쾌감을 더 높이기 위함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의 달리기 금단 현상은 알코올 중독에 기인한 거다. 하지만 장염이 걸려 술을 마시지 못할 때에도 달리기를 거르지는 않았고 술을 마신 이후에 달리기를 할 때도 있었다. 내가 달리는 이유가 적어도 술 때문만은 아니라 믿고 싶다. 달리기 때문에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 않는가? 히야시 된 맥주가 이 정도로 맛있다는 것을 안 것도 사실, 달리기를 꾸준히 한 덕분이라며 합리화를 해 본다. 달리기 중독이 알코올 중독보단 그래도 좀 더 고상하니깐.
반복되는 학교 업무 스트레스로 짜증을 감추기 힘들었고 애꿎은 아들에게 화풀이를 했던 그다음 날이었다. 해도 채 뜨지 않는 시간에 일어났다.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아니면 오늘 뛸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운동화 끈을 조였다.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아파트 단지 안을 뛰기 시작하자 내가 제일 먼저 우리 동네의 새벽을 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스트레스가 옅어져 갔다. 뛰지 못하여 생긴 불안감도 풀리기 시작했다. 괜한 짜증을 냈던 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에게 함부로 대한 것을 달리기 금단 현상 때문이라 퉁 치는 것은 내가 아직 모자란 인간임을 방증하는 거다. 달리기를 하며 어떻게 아들을 기쁘게 할까를 고민해 보았다. 고요한 새벽 거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비로소 난 근거가 있는 평정심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 달리기 금단증세는 달리기를 하고서야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