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에 취하다

영취산 산행

by 홍삼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산행을 떠난다.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왔다.

새벽 5시, 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꼼꼼히 점검했다.

이상 무!


도둑고양이처럼 발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음을

옮긴다. 가족을 남긴 채,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아파트를 나섰다. 상큼한 봄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낮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아직 어둠이 짙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가사를 흥얼거리며 버스로

두 정거장인 신도림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 운행도 이른 시간이다.

이른 새벽 아파트 위에 걸린 달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 우리다~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벌써 영취산 진달래 꽃 향기에 흠뻑 취한 기분이다. 버스가 기다리는 사당역에서 내렸다.

배낭을 짊어진 형형색색 등산객들에 어수선함과

시끌벅적함이 남대문, 동대문 시장과 견줄만하다.


김밥을 한 줄 사서 배낭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들뜬 마음도 잠시, 예기치 못한 사고가 기분을

망쳐놓았다. 신갈 주차장에서 예약된 등산객을 태웠어야 했는데 산악 대장과 버스 기사에 착오로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기흥을 지나기 직전,

이를 알게 된 산악 대장이 버스 기사에게 알려

신갈로 되돌아가야 하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예정 시간보다 50분 정도 지연되었다.

그사이 출근 차량이 도로로 쏟아져 나와

거북이 운행이 시작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논산을 지날 때쯤에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영취산 중간에 있는 테크 길, 마음이 급했다.

서울을 떠난 버스는 오후 1시경, 여수 영취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얼이 빠진듯한 여자 산악 대장이 5시 30분에

흥국사 대형버스 주차장에서 버스가 출발하겠다며 얼버무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비는 오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산을 덮었지만 간간이 보이는 햇살이 산행하기에는 무난한 날씨였다.

돌고개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산행길은 들머리부터 가파른 비탈길이다. 진달래 꽃이 만개한 능선은 진분홍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예쁜 장소를 골라서 숨을 고르며 쉰다. 남의 손을 빌려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행 한 지 1시간 정도 되었다.

산자락 끝에 정겨운 마을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김밥과 삶은 계란을 입에 털어 넣으며 멀리 보이는 산골마을에 아늑함을 느꼈다.


커다란 유류 저장용 탱크들이 남해의 푸른 바다와 어울려 이색적이다. 여수는 예로부터 어장이 풍부해서 크고 작은 배를 갖고 있는 선주들이 많았다.

'순천에서 얼굴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여수의 일푸분

진달래 향연에 아침에 있었던 해프닝, 비가 와서

걱정했던 마음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든다.

바로 카톡에 배경 사진을 바꿨다.


시간이 부족하여 흥국사를 대충 둘러본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날머리에는 진달래 축제로 사람들이 붐볐다.

임시 천막을 친 한 식당에 들어갔다.

여수 생막걸리와 어묵을 한 사발 시켰다.

무명 가수가 부르는 뽕짝이 계곡을 타고 흐른다.


등산객과 꽃구경 나온 사람들은 신이 났다.

흥이 겨운지 몇몇 어르신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춤사위를 뽐낸다. 사람 사는 냄새가 축제장을 달군다.

막걸리 한잔에 옛 노래를 흥얼대며 나도 신이 났다.


상경하는 차 안에서 산행 후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맴돌고 있다.

휴대폰 배터리가 4% 남았다.

집에 가서 글을 다듬기로 하고 친근한 분들에게

자랑삼아 카톡이나 보내련다.


오늘의 봄빛과 셀렘을 사진과 글로 전한다.

읽고 보는 모두가 나처럼 작은 행복을 느끼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2024년 3월 30일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산행코스: 돌고개 주차장~포장도로~가마봉~

영취산 정상~봉우재~시루봉~흥국사~

중흥 흥국사 주차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6.7km, 4h 30m

영취산 능선에 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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