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비밀
5월 중순임에도 제법 덥다.
대학 동기인 영춘이 딸내미가 시집가는 날이다.
사위는 퇴역 장군의 아들이다.
결혼 장소는 한강에 있는 세빛섬이다.
동기 회장인 수영이가 '어디야!' 라며 전화가 왔다.
우연히 병구를 셔틀버스에서 만났다.
식장 입구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영춘이와 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결혼 시간이 어중간하고 교통편이 좋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많다.
영춘이 사돈이 하얀 장군 정복을 입고 부인과
입장하는 모습에 '자식보다 아비가 튀는 것 같다'며 누군가 툭 던진다.
영춘이가 내빈께 인사할 때, 탈모로 인해 훤히 드러난 정수리가 영상에 잡혔다.
왠지 서글프다. '녀석, 가발이라도 하지'라며 누군가 탄식 섞인 소리에 세월이 야속하다.
하지만 당당한 영춘이의 모습이 나름 씩씩해서 좋았다.
공식적인 예식이 끝나고 음식이 세팅되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며 음식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영춘이 귀가 간질간질하겠다.
대학교 동기는 나를 포함해 16명이 참석했다.
경조사 모임 중 최대 인원이었다.
협박성 섭외가 진가를 발휘했던 것 같다.
몸이 성치 않은 병건이도 제천에서 아내와 함께
참석했을 정도니, 섭외력이 대단했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평생 원망하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참석했다는 누군가의 얘기가 압권이다.
영춘이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나와 영춘이가 대구, 경산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가끔 만나 식사를 했다.
만날 때마다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징징댄다.
와이프가 허우대 멀쩡하고 인성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며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절친의 동생을 소개해 주었다. 소개팅 후 연락이 없다.
어느 날 와이프 절친 집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영춘이가 턱 하니 소파에 앉아 있다. 억지웃음으로 악수를 청했다. 씩 웃던 그놈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벌써 동서가 된 것처럼 처신하는 영춘이가 고마웠다.
'그려! 잘 되거라~그래야 양복이라도 얻어 입을 수 있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다.
어느 날 서울로 발령이 났다며 전화가 왔다.
와이프가 "영춘 씨! 그럴 수 있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발령을 받고 둘은 대전까지 열차를 타고 갔단다. 여자가 넥타이를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했다나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이놈이 당신과의 인연은 여기 까지라며 대전서 빠이 빠이 하고 헤어졌다고 태연하게 얘기한다. 주먹으로 한방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그 일로 와이프는 절친과 한동안 서먹서먹했고
나 또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 영춘이 부부가 테이블을 다니며 참석해 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영춘이가 내 귀에 대고 씨부렁 댄다.
"경선아 고마워! 와이프한테 옛날 얘기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런 '육시럴 놈! 확 까발릴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새빛섬 앞에서 결혼식에 참석한 동기들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병건이는 건강이 좋지 않아 먼저 갔다. 예식장에서 지팡이를 의지한 채 옆에 앉아 웃음 짓던 병건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손을 꼭 잡으며 '건강하시게'라는 말이 전부였다.
늦은 밤까지 뒤풀이가 있었다.
불참한 몇몇 친구들과 통화도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떠들고 웃었던 하루였다.
세월이 흘러도 우정만은 변치 않기를 바라며,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한다.
-2024년 5월 18일 영춘이 딸내미 결혼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