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
최 경 선
꽃향기 풀내음 짙게 감돌고
찡그리던 하늘이 웃으니
골바람 잎새를 뒤집으며
흰 파도 몰려온다
솜털 보송 송한 철쭉
아기 웃음처럼 방긋대고
뿌리 드러낸 고목
인고의 시간 속 꿈틀댄다
세상이 소란하여 불심 잡아
산중에 피신했는가
일락(일락산)과 우연한 만남
억겁의 인연이었을까
계곡에 발 담그고
곡차 한잔 기울이면
이보다 더한 해탈이
또 있을까
-2024년 4월 23일 서산 가야산 산행 후-
산행정보
*산행코스:
가야산 주차장 ~남연군묘~가야산 정상 ~
석문봉~일락산~개심사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10.6km, 6시간
* 일락 : 입사동기 이름
흐리던 날씨가 가야산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마음을 움직이듯 쨍하고 해가 뜬다.
코 끝을 스치는 꽃향기와 풀내음이 징하다.
힘찬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앞서 홀로 걷는 산객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해 함께 걸었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자 저수지가 나타났다.
산능선은 연둣빛 잎새가 서로 다투듯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한 폭의 수채화다.
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서해 바람이 잎을 뒤집으며 산 위로 떠밀려온다.
해변가에 흰 파도가 연속적으로 몰려오듯,
마치 거대한 도미노가 쓰러지듯,
자연이 만들어내는 파동이 신비롭다.
급히 휴대폰에 담아 보지만 현실과 다름이 안타깝다.
바위틈에서 고개 내민 솜털 보송 송한 철쭉이
아기 웃음을 짓는다.
길가에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은 산객들에게
차이며 아픔을 참고 묵묵히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름의 버릇이 생겼다.
뿌리를 드러낸 나무를 밟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들도 생명이 있기에 배려하려는 마음이다.
정상에 도착했다.
산에 오른 등산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정상석을 안은 한 아줌마가 아저씨를 닦달하며
빨리 찍으라고 야단이다. 머쓱하고 뻘쭘한 아저씨의 모습이 웃프다.
석문봉 가는 길에 넓적한 바위 위에 섰다.
지나가는 산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일락산 정자(亭子)에서 가지고 온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산명(山名)과 이름이 같은 입사동기 '일락'이가
생각났다. 서울에 가면 오랜만에 일락과 차 한잔 나누고 싶다.
개심사는 인파로 가득했다.
고즈넉한 산사를 기대했건만,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한적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지만
개심사 이름처럼 우리 모두가 마음을 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최고 절정기를 지났지만 왕겹벚꽃 나무에 벚꽃은 아직은 그런대로 볼만하다.
조용한 계곡에 배낭을 풀고 발을 씻었다.
하루의 피곤이 씻겨 나간다.
문득, 바람에 흔들리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상큼한 연둣빛 잎들이 떠오른다.
자연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나도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가야산의 여정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