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냉장고, 화악산에서

•화악산, 군대시절이 소환되다

by 홍삼이

•2023년 10월 21일.

화악산 산행 전, 첫눈이 내리다.


'화악산, 난 그쪽 보고 오줌도 안 눌 거야.'

그 시절, 마음속으로 다짐하던 곳이다.

42년 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젊음을

바쳤던 화악산.


첫 눈이 내리고 난 후 정상석

한국 남자들에게 군대란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막상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지는 그런

기억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1년 2월 2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신병교육을 마쳤고, 이기자 부대(27사단)에 배치되었다. 다행히 보병이 아닌 직할대였다.

자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5월 9일 아침,

영점 사격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화악산 쪽에서 밀려온 구름이

함박눈을 쏟아냈다.


늦은 봄에 눈이라니, 총구너머로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고향에 계신 홀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장면이 아직도 선하다.


선임들은 화악산을 '한국의 냉장고'라 불렀다.


겨울철, 전우들과 함께

보충대 대기 중 의무대로 전입되었고,

전령 '양ㅇ' 병장 뒤를 졸졸 따라 낯선

부대에 발을 디뎠다.

위병소의 위압적인 분위기,

군기가 팽팽한 행정반과 내무반,

그리고 의무대장 '리ㅇ윤' 중령에게

경직된 자세로 전입 신고를 하던 날이

엊그제 같다.


시간이 흐르며 군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던 일병시절, 대학 동기 '김ㅇ성',

'정ㅇ영'이 전입해 왔다.

PX에서 간식을 사주며 짧은 위로를

건네었던 기억,

싸리나무를 베어 빗자루를 만들고,

산더미 같은 배추와 무를 다듬고 절이며

겨울을 준비하던 날들.

하루 종일 눈을 치우고, 커버도 없는

지프차 뒤에 앉아 작전을 수행하던

혹한의 겨울밤.

팀스피리트 훈련중에 찍은 사진

야간사격 부진으로 부대 앞 개천의 얼음을 깨고 얼차려를 받던 날도 잊을 수 없다.


고향 친구이자 입대 동기인 사단통신대

운전병 '곽ㅇ식'이가 편지와 문서를

싣고 왔을 때,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화악산 너머로 고향을 그리던 울컥한

순간도 있었다.


병장시절엔 77 연대 고교 친구

'강ㅇ원'과 외출을 나가 식사를 하던 중,

김웅평 대위의 귀순 소식에 급히 부대로

복귀했던 날도 있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장면들은

또렷하다.

교육계(작전서기병)인 병장시절과 위병소 근무중

물론 아픈 기억도 많았다.

1981년 10월 1일, 77 연대 삼청교육대

난동 사건(?) 당시, 부상자를 이송하려

출동했던 날.

사고로 인해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과,

울부짖던 유족들의 모습은 지금도 가슴을

시리게 한다.


포항 출신 '이ㅇ대', 서울대 수의학과를

다니다 입대한 '문ㅇ윤"은 나의 동기였다.

우리는 경리, 전령, 교육계 업무를 맡아

때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시절은 분명 고되고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립기만 하다.

군대동기와 팀스피리트 훈련중 만난 동네 꼬마와 함께


그런 27사단 이기자 부대는 2022년 11월 30일,

인구 감소 등으로 해체되었다.

역사의 한 장면으로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과거로의 여행은 화악산 들머리, 화악터널

입구에도착해서야 끝났다.

첫눈이 내려 길은 미끄러웠고, 선임들이

말하던 '한국의 냉장고'가 떠 올랐다.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


우렁찬 군가가 깊은 계곡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내 마음속 그 시절도, 함께 울려 퍼진다.

유격 훈련중에 찍은 사진



●첫눈 내린 화악산에서

최 경 선


첫눈이 내린다

산길에 쌓이는 눈처럼

희고 조용한 그리움이 다가온다


화악산 능선 따라

그 시절 군가가 쩌렁쩌렁 울린다

스물한 살,

나를 다시 만났다


어머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시절 전우들 이름이

바람 따라 흘러든다

그 시절이 또 온다 해도

나는 달려갈 것이다

'한국의 냉장고' 화악산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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