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신의 삶의 당사자이자 타인의 삶의 관측자이며 인간의 삶에 관한 사색가인 우리가 사실은 인간과 그 삶을 잘 모른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아주 오랫동안 지지된, 사람과 삶에 관한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한 추론의 여정에서 일부 구간마다 정보가 부족했음에도 무리하게 추론을 비약시켜 나갔고 그 결과,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지식 형성 능력이 우리가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와 같은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지만, 동시에 그렇게 명확해진 한계는 우리가 앞으로 제대로 된 지식을 형성하고자 해야 할 일을 알려주기도 한다. 즉 이전의 한계를 보완하며 사람과 삶 그리고 그 지향점에 관한 정보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포착하지 못했던, 사람과 그 마음에 관한 정보를 더욱 많이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 추론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 다시 우리가 해온 일을 되짚어 보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그 정보, 과학지식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삶의 지향점이 있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 어디서부터 정보 부족으로 인한 비약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러한 결론이 나온 맥락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그 맥락의 가장 첫 부분은 특정 행동 혹은 경험이다. 사람(우리)에 관한 지식은 자신과 타인의 행동과 경험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부터 그 원재료를 수급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마땅히 지향할 바가 존재할 것이란 생각 역시 특정 행동과 그 동기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어떤 동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무거운 동기(마음속 요구)에 알맞게 응하고자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서 어떤 대단한 목표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삶에 관한 보다 전반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즉 우리는 끈질긴 동기에 관한 경험과 그에 영향을 받아 긴 고뇌를 이어가는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자신에게 삶의 방향성을 전환할 정도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답(구체적인 방향성)을 찾기 위해서 그 동기를 더 깊이 분석하거나 삶의 방향을 찾고자 그 주체가 되는 인간에 관한 주관적인 해석을 하게 됐다. 이때, 고대 왕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삶과 같은 사회적인 정보를 주로 참고했다. 특히 동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점, 우리가 언젠간 끝을 마주한다는 점 등 해석 중에 마주하는 이와 같은 단서는 이 문제가 단순한 동기로부터 시작된, 그저 적당한 장기 목표를 설정만 하면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추측의 근거가 됐다. 즉 반대로 그러한 단서는 이 문제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는 어떤 필연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는 추측의 근거가 됐다. 이처럼 홀로 마주했던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정보를 참고하면서 우리의 공통 지향점에 관한 통찰(지식)로 발전했다. 결국 인간은 태초부터 지향점을 지녔고, 그 삶은 마땅히 그 지향점을 향해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됐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마치 태초부터 존재했을 것만 같았던 삶의 지향점이라는 개념은 사실 삶에 관한 고민이라는 행동과 그 동기를 사회적인 정보를 참고하며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이 책에서는 경험의 시작부터 결론 도달까지의 이 전체 과정을 삶의 지향점을 고민(추론)하는 과정이라고 부르겠다.)
다시 해당 과정을 살펴보며, 각 과정이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진 어떤 행동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우리가 실수했던 지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지식을 형성하는 과정의 첫 단추는 행동과 경험이다. 우리는 그 원 데이터로부터 사람의 더 깊은 본질을 찾는데, 즉 행동과 경험이라는 우리의 일부 사건이자 표본으로부터 인간(의 본질)이라는 모집단의 특성을 찾기 위해 추론한다. 표면적인 행동과 경험으로부터 인간이 갖는 본질적인 관성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내는 방법 중 하나는, 해당 경험을 자신의 다른 경험이나 타인의 경험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즉 여러 행동과 경험을 나열하고 유사점이나 연관성을 주관적으로 찾으며, 다양한 변수의 영향을 가늠하고 또 덜어낼 수 있고 결국 이 과정을 반복한 끝에 여러 변수(유사점, 연관성) 중에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인간만의 특징(변수)을 특정해 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행동과 경험을 자기 자신이 관측하고 해석한 인간의 모습과 타인이 관측하고 해석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만 분석했고 그 결과로 특정한 인간관이 나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좋은 지식이 나와서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분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삶의 지향점이라는 분야에서 이와 같은 시도는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공통적인 부분, 즉 객관적인 분야를 탐구하고자 하면서 정작 그 행동과 경험을 주관적인 정보(자신과 타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주장)만을 통해서 분석한 것이다. 즉 늘 얘기했듯, 찾고자 하는 지식에 비해, 특히 그 지식의 특성을 고려해 봤을 때 더욱, 행동과 경험을 분석하는데 투입되는 정보가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패를 극복하고자 주관적인 경험과 주장에서 벗어난, 우리에 관한 통제된(객관화시키고자 노력한) 관측 자료나 그에 관한 체계적인 해석을 활용할 수 있다. 또 행동과 경험이 이루어지는 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또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그래서 여러 도구를 사용해만 얻을 수 있는 우리 내부에 관한 정보를 활용해 볼 수도 있다. 즉 삶에 관한 전반적인 고민이 이루어지는 과정(행동과 경험)을 기존의 정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심리 과학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이 고민이 의미하는 바와 이 고민을 해소할 답(지향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앞선 우화에서 똑똑한 개미가 장로 진딧물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스스로 혹은 자매들과의 토론에서는 얻지 못했던 개미라는 존재에 관한 통찰의 실마리를 잡았듯, 우리가 지금껏 타인과 자신의 주관적 해석이나 주장만으로는 얻지 못했던 것을 심리 과학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삶의 지향점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정보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비약을 극복하고자 심리 과학으로 추론에 필요한 정보를 확충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오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삶의 지향점이라는 결론의 원인이 된 행동과 경험을 심리 과학적으로 다시 살펴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인간관과 그 지향점을 새롭게 정의해 볼 것이다. 또 이처럼 우리가 삶의 지향점을 좇는 동안 뇌에서 생기는 일을 파악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첫 번째. 삶의 지향점을 향한 고민이 오답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더 확실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앞서서 우리는 우리 삶이나 우리가 삶의 지향점을 좇는 과정, 그리고 그때 만들어질 수 있는 논리 중 하나를 그려보면서, 우리가 그린 삶의 지향점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엄밀히 따지자면, 근거가 충분치 않은 저자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추론이다. 구체적인 과정을 그리려고 시도한, 그럴듯한 추론일 수는 있지만, 정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류가 존재하는 논리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실제로 삶의 지향점을 고민할 때, 어떤 생각과 결정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의 지향점에 관한 고민의 과정에서 나타나는(관여하는) 뇌 활성화다. 해당 뇌 활성화가 어떤 의미를 갖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게 되면, 간접적으로 그때 이뤄지는 의사결정이나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류가 내포된 의사결정이나 생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뇌 활성화가 관측된다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삶의 지향점에 관한 고민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더 확실히 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한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잘못된 인간관의 뿌리가 되는, 다양한 추상적이고 문화적인(객관적 근거 없이 다수의 지지만을 근거 삼아 암묵적으로 지지되는) 개념을 폐기하고 그 자리에 과학 지식을 근거로 하는 인간관을 세우기 위함이다. 우리가 인간과 그 삶을 사실은 잘 몰랐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인간과 그 삶을 정의해 왔던 다양한 개념들 역시 다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기존의 인간관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스스로를 한계를 넘어 답에 도달하는 존재로 정의하는 일을 멈추고 물리적인 존재로 정의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데, 왜냐하면 여전히 기존의 인간관을 지지하는 여러 개념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우리가 기존에 인간과 그 지향점을 정의하기 위해(고민 과정에서) 사용해 왔던 다양한 개념들(정신, 영혼, 직관, 합리성 등)을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폐기해 결과적으로 기존의 인간관을 완전히 해체해야만 과학 지식을 통해 인간관을 구성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삶의 지향점과 인간관 형성에 관여해 왔던 다양한 추상적인 개념을 과학 지식을 통해 반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인간관을 지지하던 추상적인 개념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이 글에서 추상적인 개념이란 인간을 정의하거나 삶의 지향점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추론해 낸 가상의 개념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관 형성에 관여해 결과적으로 우리의 목표를 방해하는 개념이 존재한다. 해당 개념이 왜 방해가 되는지, 또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 폐기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추상적인 개념은 그 또한 사람을 설명하기 위한 지식이기에 행동과 경험을 분석하는 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런데 앞서 다뤘듯 우리는 우리 행동과 경험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다. 게다가 몇몇 경험은 정보가 부족한 우리 입장에서는 상식적이거나 물리적인 규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우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겹친 결과, 우리는 가끔 그 놀라운 경험을 설명하고자 그 초자연적인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가상의 개념을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정신적인 실체에 해당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마치 신체 안에 그것과 똑같이 생긴, 그러나 물질을 투과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투명한, 영혼이라는 것이 들어가 신체를 조종하고 그 경험의 주체가 된다고 믿었다. 이 초자연적인(신체를 투과하고 투명하기까지 한) 영혼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겪는 그 놀라운 경험을 그대로 반영해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우리는 신체와는 구분될 수 있는 어떤(주로 나라는) 주체가 신체 구석구석을 소유하고, 통제하며, 또 그 경험마저 조절하는 것만 같은 놀라운 경험을 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신체 내부를 보거나 느낄 수 없는데(따라서 신체와 자신(정신)이 같은 존재라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 즉 구분된다.), 분명 그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만 같은 경험(주관적 증거)을 한다. 이러한 경험은 신체 구석구석과 긴밀하게 연결된 정신적인(비물질적인) 실체를 향한 추론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이러한 경험을 일상적으로 겪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두개골 속에 갇힌 신경 세포 뭉치가 우리 신체 전체를 아우르는 정보, 정신 경험을 다룰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처럼 정보가 부족한 우리는 자신이 겪는 놀라운 경험을 설명하고자, 그 특성(가끔은 초자연적인)을 그대로 반영한 추상적인 개념을 만든다. 이러한 측면에서 추상적인 개념은 경험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이기도 하다. 때문에 과학 지식과는 대척점에 있다. 각각이 가설로서, 정신적인 경험의 실체 혹은 그 인과 관계를 누가 더 잘 설명하느냐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시,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예를 들자면, 과학 지식은 관측한 뇌 활성화나 행동을 근거로 두개골 속에 갇혀 있는 신경 뭉치로부터 신체 전반을 향하는 다양한 경험이 모두 만들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이처럼 과학 지식은 초자연적인(객관적 증명이 어려운) 요소를 배제하고 관측한 근거나 그 근거를 크게 비약시키지 않고 만든 가설만으로 놀라운 경험의 실체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영혼, 마음, 사랑, 합리성, 직관과 같은 추상적인(상대적으로 비약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이 설명하고자 했던 주관적인 경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해당 추상적인 개념을 가설로서 폐기하고 대신에 과학적인 가설을 지지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이자 가설을 폐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추상적인 개념이 주관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가설일 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의 가치관(특히 인간관) 형성에 영향을 줘왔던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혼(마음, 정신)과 같은 개념이 그렇다. 영혼은 단순히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하나의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혼, 정신, 마음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경험으로부터 추론한,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정의했다. 즉 그것을 인간을 정의하는 울타리로써 여겨왔다. 실제로 우리는 호의를 베풀 대상, 즉 자신과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대상을 마음(영혼)이 있는 존재로 정의하고 그 반대로 물건 취급과도 같은, 차가운 취급을 할 대상을 자신과 다른 존재 혹은 마음이 없는 존재로 정의하곤 했다. 역사에 남은 전쟁 상황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치켜든 깃발이 다르다는 사소한 이유로 마음의 유무를 판단하고 그 판단을 따라 유전자 상 거의 같은, 동족을 얼마나 큰 차이를 두고 대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추상적 개념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고 그것이 인간을 구성하는 진짜 요소라고 믿기에, 우리는 같은 대상을 대하면서 넘치도록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반대로 끔찍한 잔혹함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관 전환을 위해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폐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목적인, 과학 지식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과 삶의 지향점을 세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기존의 인간관과 삶의 지향점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야 하는데, 인간관이 어긋나기 시작한 그 구체적인 이유이자, 인간관을 구성하는 요소, 즉 그 잔재가 바로 그 추상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은 곧 주관적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로서 태어났기에, 그것을 폐기하는 방법이 바로 해당 주관적 경험을 과학 지식이 더 잘 설명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기존의 삶의 지향점이나 인간관의 잔재이자 그것을 지지하던 단단한 뿌리를 뽑아 완전히 새로운 상태에서 과학 지식을 통한 인간관이나 삶의 지향점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삶의 지향점에 관한 생각이나 인간관이 생겨나는 과정, 그 주관적인 경험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뇌 과학적으로 접근해 그 맥락을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인간에 관한 기존의 기대감을 수정하고 지적 능력에 관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삶에 관한 고민에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를 주장하고자, 자신의 과오를 마주하고 자기 확신을 반박하는 지금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회의적인 결론에 닿을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이토록 비합리적인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참고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해서 더 나은 답을 낼 수가 있을까?”
이처럼 우리가 기존에 내려온 의사결정을 반박하고 다른 의사결정 방식을 찾아나가는 일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관한 믿음, 그 자체를 훼손시키기도 한다. 즉 우리는 이 삶의 지향점을 찾는 과정에서의 실패의 원인을 정보 부족뿐만 아니라 추론(지적) 능력에도 확산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사 결정 능력, 추론 능력 혹은 지적 능력에 관한 전반적인 의문과 불신은 다양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데, 무엇보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인간과 그 지향점을 향한 지식을 구성하기 위한 활동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그래서 앞으로의 과정을 위해 이와 같은 판단을 반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실패의 과정, 즉 삶의 지향점을 그리게 했던 주관적인 경험을 구체적(과학 지식을 통해)으로 파헤치며,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잘못된(확산시킨) 실패 분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패 과정의 인과를 정확히 살펴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것인데, 해당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무엇을 실패로 여길 것이며, 추론 능력을 어떻게 정의할지를 따져볼 것이다. 이 문제를 이처럼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대해야 할 필요성은 실패라는 판단을 했던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실패라는 결론과 추론 능력에 관한 섣부른 결론은 해당 능력에 관한 실망과 불신으로부터 나온다. 이 실망과 불신이라는 것은 기대에서 어긋날 때, 나타날 수 있는 평가이다. 즉 우리는 이미 어떤 기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통해 그 결과와 추론 능력을 평가했기에 회의감이나 실패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결과를 실패라고 단정 짓고 그 원인만을 찾는데 집중하는, 우물에 갇히기 이전에 애초에 기존에 형성했던 기대감이 올바른 기준이 될 수 있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추론 능력에게 어떤 기대감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에, 추론 능력이 어떤 의도나 지향점을 갖고, 어떤 투입물을 수용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야 한다. 즉 결국 삶의 지향점 추론 과정에 관여하는 뇌 기능을 알아봐야 한다.
사실 기대에 벗어나는 결과가 나타내는 단 하나의 명확한 사실은 우리가 아직 그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대를 배신당한 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 중 하나는 기대를 배신한 그 대상을 더 깊게 공부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기대와 벗어난 결과를 바라보며, 애초에 제대로 된 정보(기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우리 능력을 더 자세히 알아갈 필요가 있다. 결국 이는 다시, 우리의 추론(판단, 지적) 체계(능력)가 삶의 지향점에 관한 고민을 하는 특정 장면에서 어떤 지향점을 갖고 어떤 결과를 내는지를 분석하는 일이 된다. 한편 이는 다시, 우리가 무지한 상태에서 내린 섣부른 평가가 자신의 능력에 관한 회의감과 같은, 삶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 무지는 마주하게 된 순간부터 누군가에겐 실질적인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 혹은 그 결과물을 만든 능력에 관한 섣부른 결론이 주는 좋지 않은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결론이 나오게 한 과정을 다시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장에서는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러한 결정(변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구체적으로 지금의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인간과 그 삶의 지향점에 관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꼭 있는지를 검토했다. 자신의 삶을 살고 타인의 삶을 관측하며 삶에 관해 더 깊은 고민을 하는 우리가 만든 그 관점이라면 딱히 잘못된 것이 없어서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니 이 굳건해 보이는 논리가 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인간과 그 삶에 관해서 생각보다 얻지 못하는 정보가 많았고 그래서 잘못된 분석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결과는 한계를 지닌 기존의 관점을 대체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의 관점의 한계는 사람의 본질적인 지향점을 추론하고자 사람으로서 자신의 행동과 경험을 분석하면서 충분하지 않은 정보를 활용한 것을 원인으로 한다. 이러한 부족함은 과학 지식으로서 보충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관점이란, 삶을 고민하는 과정에서의 행동과 경험을 과학 지식을 더해서 분석하고 이를 확장시켜 만들어진 지식이 될 것이다. 새로운 관점을 만들면서 유념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기존의 관점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기에, 뿌리부터 다시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완전히 초기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기존의 인간관을 구성하던 여러 가치관, 추상적인 개념을 심리 과학적으로 검토하며 필요에 따라 폐기해 나가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한편, 이 과정은 자기 자신에게서 기대에 벗어나는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대감을 배신한 결과로 인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자신에 관해 오해하게 되며, 이로 인한 악영향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악영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과정을 과학 지식을 통해 살펴보며 해당 과정과 결과의 나름의 이유와 의도가 있다는 근거를 확보할 것이다.
이처럼 여러 맥락, 필요성에 의해 우리가 할 일은 삶을 고민하는 과정에서의 행동과 경험을 과학 지식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그 세세한 사항을 다루기 전에, 먼저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대 심리 과학이 대략적으로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다뤄보고자 한다. 인간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추론하고자, 그 마음을 관측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다음 장은 이에 관해서 다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