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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후회되는 일중의 하나

기억나는 사람

by 톰슨가젤

내 인생은 90년대 중반이 절정이었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책이 상실의 시대란 제목으로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98년인가 아마 그쯤이었던 것 같다 난 아버지를 잃고, 서울 @@ 학원에 사무보조로 취직을 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입시학원과 성인들을 상대로 하는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그런 시험을 준비하는 원생을 상대하는 학원이다. 나는 그 시절 친척집에 얹혀살고 있어서 ,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까지 출근을 했었다. 만원 지하철이라고 해야 할 시절이다. 지금은 기억 잘 안 나지만 거의 짐짝처럼 끼여서 출근한 적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 학원에는 마름 같은 부장이 있다. 눈은 커다랗고 항상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금테 안경을 쓰고 있다.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강사님들이 사무실로 오면 (그 강사들은 대체로 공인중개사 강사들) 부장은 허리를 약간 굽히는 시늉을 하면서 " 아이고 교수님 수업하시느라 힘드시죠 "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면 교수라고 불리는 강사들은 부장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쉬는 자리로 가서 앉는다. 나와 직원들은 그럴 때마다

킥킥대곤 했다.


그 부장이 왜 그렇게 경박하냐 하면 그 인간도 먹고살라고 아니 정확히는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 것이다. 물론 내가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쉽나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도 가정이란 게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아직도 28년 전 그 부장의 눈빛은 아주 마음에 안 든다.


공인중개사 수험생 중에 아주 선량하게 생긴 형님이 한분 계셨다. 보자마자 너무 선량해서 세상에 저렇게 악의를 숨기지 않아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형은 항상 사무실로 와서 교수님들 곁에서 해맑은 얼굴로 이런저런 질문들도 하며, 웃음기를 잃지 않고 앉아 있곤 했다. 난 그 시절도 조금은 관찰력이 아니 더듬이가 조금 예민한 인간이었으니, 그 형을 예의 주시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형은 근로 장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에 교수님들이 수업한 칠판을 지우고, 자리를 정리하고 수업료를 면제받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조금 대화를 하다 보니 무언가 조금 일반인보다는 너무 희망에 찬 모습이랄까 무언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너무 착하고 너무 희망적이고, 그 당시 나는 그 형을 그냥 너무 착한 형으로 알고 있었다.


그 형이 혼자 밥 먹는 걸 알고는, 난 식권이 나오니 같이 밥 먹자고 해서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고 하였다. 같이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그 형은 계속 무언가 부끄러워하며 발걸음을 뒷걸음쳤다. 난 그 시절만 해도 그래도 외향성을 조금은 지키고 있던 시절이라 형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이끌었다. 식권을 내고 나는 배식을 받았다 물론 내 식판도 반찬이 형편없다. 그 학원도 그리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거 같다. 형이 보온도시락통에서 반찬을 열어 부끄러워하며 내어 놓는다. 멸치볶음과 무언가 있었는데 형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 도영 씨 내가 아버지랑 둘이 살아서 반찬이 이렇게 밖에 안되네 미안해"

형님은 나를 보며 굉장히 미안해했다.

" 아버지가 지금 지하철 계단에서 면도기를 팔고 계서... 나는 공인중개사 돼서 아버지를 모셔야 할 텐데..."

난 조금은 슬픔을 절제하면서 , 그런 가난은 조금 익숙한 인간이라 최대한 맛있게 먹는 척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의 우정이 싹텄다. 그렇게 같이 식사한 이후로 그 형은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로 와서 나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이 사무실 간이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데 부장이 대뜸 소리를 지른다.

"아 교수님들 쉬셔야 하는데 너는 여기 왜 이렇게 자주와 "

"아 저랑 같이 점심 먹으려고요" 나는 바로 쏘아붙였다.

"아 여기 사무실 공간도 좁고 교수님들도 쉬시잖아 한가할 때 오던가 해 나가"

형은 쭈뼛거리다가 나가고 말았다. 난 너무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에이 씨." 하고는 의료보험증을 부장의 얼굴에 던지고 나갔다. 부끄러운 퇴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러면 그렇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 후 전화로 간략히 퇴사 처리가 된 후 한참 후 술이나 마시면서 인생을 적절히 낭비할 즈음 전화가 왔다.

" 도영 씨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 형님이었다.

나보다 족히 20년은 연상이었을 것이니, 지금은 거의 70이 다 되었을 것이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냐 하면 측은지심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지속적이지 않은 측은지심이 얼마나

한 인간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슬픔을 가져다주는지 말이다. 많이 후회된다. 그 형의 곁을 조금은 지켜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냥 이야기나 들어주고 가끔 밥이나 먹고 술 같은 건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어설픈 동정심을 발휘해 타인의 가슴을 휘잡고 사라진 한 인간에 대해 회고하고 싶었다.

기억이란 건 참 무섭다 멈추니까 그 형은 그 시절 그대로 멈추어 있다. 그 후로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건 논외이지만 요즘은 식자들은 호의를 베풀면 의심을 한다. 너 자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 곳에 헛 된 짓을 한 것이었던 거다. 그런 분별의 눈을 가지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 형님은 참 지금 봐도 그렇게 순수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성공이고 해탈이고

완성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무나 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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