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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Jun 29. 2024

낭만을 잃은 자리

  지하철을 탈 때마다 역 내의 꽃집을 지난다. 꽃을 사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계절 꽃을 유심히 보고, 고르고, 선물도 하고, 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고양이 때문도 아니다. 그냥 내게 꽃 한 다발 선물 할 낭만을 잃었나 보다. 여전히 꽃을 좋아한다. 작약이 나오는 달과 튤립이 나오는 달을 기억한다. 냉이가 얼마나 좋은 장식물인지도 알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보다 많은 꽃 이름을 외우고 있고, 가끔 꽃을 선물 받으면 꽤나 기쁜 마음이 차오른다. 그런데 그냥 내 돈으로 꽃을 사지 않을 뿐이다.


  작약이 한창 만개할 때라, 꽃집에서 떨이로 작약을 팔고 있다. 예전에는 늘 작약 피는 계절을 기다렸다. 마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처럼 나는 찬란한 작약의 날을 기대했다. 그런데도 그냥 잠깐 고민하고 만다. ‘집도 좁은데‘, ’금방 질텐데‘, ’지금 사면 약속 내내 들고 다녀야 하는데‘ 같은 생각이 떠돌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제부턴가 낭만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더 신경 쓴다. 남에게 꽃을 선물할까 할 때도,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타입이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앞선다. 당연히 꽃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이 있다. 다만 그들을 만날 시간이 여의치 않을 뿐.


  그러고 보니 꽃을 많이 샀을 때엔 직업이 없었다. 그냥 대학원생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꽃을 사서 나누어주고 남은 꽃을 집에 장식하던 나날, 공부 때문에 조금 바빴지만 그래도 수업이 끝난 뒤 맥주 한 잔 정도는 했던 나날이다. 그땐 거의 매달, 집에 새로 꽃을 꽂아 두었다. 내게 꽃을 선물하는 사람도 지금보다 많았다. 이제 그들도 전부 취직하여 바쁜 삶을 보내는 중이다. 아마 요즘 작약이 끝물이란 것도, 곧 튤립이 잔뜩 판매될 거란 것도 알아채지 못할 테다.


  여전히 낭만을 꿈꾼다. 얼마 전 날 닮아 사 왔다며 장미 한 송이와 이름 모를 흰 꽃 한 송이를 소담히 건네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마 선물한 그 애는 몰랐을 거다. 김영랑이 말한 그대로, 찬란한 슬픔의 봄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참 이래서 명문은 명문이라 하는 걸까? 슬픔에도 수만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믿는 내게, 이번 슬픔은 참 애틋하고 그리운 감정이자,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었다. 그래, 여전히 나는 낭만을 꿈꾼다. 비록 오늘 값싼 작약을 애써 무시하고 지나쳤을지라도 날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람들과의 약속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꽃보다 비싼, 각자가 선호하는 선물을 고심해 전달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삶이 충만해지길 바란다. 나라는 작은 존재가 세상에 따뜻함과 낭만을, 이상을 심으리라 애써 믿어본다.


  꽃이라는 낭만을 잃은 자리에, 새로운 낭만이 자리했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을 게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여유가 사라진 건 인정해야겠다. 나 스스로를 위해 꽃 한 송이 사지 않을 만큼 조금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다음 주까지 작약이 남아있으면, 아무래도 세 송이 정도 품에 담아 오리라 그런 다짐을 한다. 수면 시간을 매일 골고루 확보하고 건강을 챙기기도 벅찬 지금이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여유가 될 만큼 시간이 모여, 꽃을 사고, 차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고, 실없는 농담이나 따먹고,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하릴없이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우리라 믿는다.


  여유가 없는 세상에서 이상 대신 회의를, 낭만 대신 염세를 더 자주 일삼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본질이 낭만과 이상이라 되뇌어 본다. 비타민 씨 메가도스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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