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하였다. 이는 사실 오역의 결과다. 원래 뉘앙스를 살리자면 “(올림피아 제전에 나와 헐벗고 운동만 하고 있는 새파랗게 젊은 놈들을 보며)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면 좋으련만 “ 정도? 하지만 오역이 맞았다. 건강하지 못한 자는 건강히 사유하기 어렵다. 사유의 전제는 체력이다.
최근 자율신경실조증인지 미주신경성실신인지 뭔지가 왔다. 말 그대로 뒤질 맛이다. 원래는 만우절 부근 글을 올려야지 싶었는데, 사람 일이 맘처럼 굴러가질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매일같이 거짓말을 일삼으니 1년 365일이 만우절인 셈이다. 만 가지 거짓말이 있는 날.
예전에 나는 만우절의 만(萬)이 만용의 만(蠻)인 줄만 알았다. 사람들은 거짓을 뱉으며 그것이 영원히 들키지 않으리란 만용으로 살아간다. 오직 만우절에만 거짓이 식상해진다. 들키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라니 싱겁기도 하다. 어쩌면 만우절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과 거짓을 어지러이 얽어뒀을지도 모른다. 거짓이 허용된 날에만 고백할 수 있는 겁쟁이 꼬마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다루는 학문에서는 사실의 조각이 모여야지만 진실이 된다. 때로는 사실도 거짓이며 거짓도 사실이 된다.)
그래서 지금 거짓말을 일삼고 있느냐 하면 참 애매하다. 진짜 정말 뒤지게 아팠어서 진시황이 왜 그리 무병장수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고, 초등학생 때 이후 처음으로 아파서 계속 눈물을 찔찔 흘렸다. 지금은 회복세에 들어왔고, 비록 위경련과 경직, 비정상적 맥동과 현기증이 동반하지만 침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지독하게 아파서 서러웠던 감정은 분명 휘발되었다. 문제는 감정의 역치가 대폭 하락했다는 것이다. 지나치는 민들레 군집을 보다가도 울고, 별 거 아닌 말에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항상 무던히 넘기던 것들이 지금은 주몽이 쏜 화살인 양 꽂힌다.
전혀 친밀하지 않은 사람이 “가짜 괜찮은 거 말고, 억텐(억지로 끌어올린 기분)인 거 다 티나요”라는 말을 하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약점을 못 숨기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이 사람이 유독 눈썰미가 좋은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 주변의 모두가 사실 다 느끼고 있는데 굳이 거론하지 않는 건가, 정답은 미궁에 있다. 지금 나는 유머를 수단 삼아 거짓을 일삼는 중일까? 이 정도는 대부분의 성인들이 살기 위해 펼치는 차력쇼란 생각이 든다.
지난 화요일이었나, 지금의 글을 쓰다 말고 저장해 두었다. 오늘 다시 열어보니 지나친 우울함이 묻어 나와 세 문단을 통으로 날렸다. 그때에는 나의 우울함이 주변 공기를 데웠다. 우울함이라는 단어와 감정에는 왠지 서늘한 온도가 어울리지만, 최근 건강상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열이 올랐으므로 이번만큼은 대기 중 온도가 상승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상하다. 이걸 이번만큼이라고 칭할 수 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부터 아팠던 나라, 항상 몸살 기운을 달고 살았으니 어쩌면 우울함은 37.5도를 조금 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분노는 38도
성애는 72도
아가페는 36*무한대
기쁨과 즐거움은 rpm에 가까울 것 같다. 웃음은 소리가 되어 허공에 흩어지니 말이다.
교육 활동 자료를 만들기 위해 sns에 “당신이 생각하는 이유경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올렸더니 사유중독자라는 답변이 날아왔다. 모든 중독이 나쁜 것이라면 뭐든 중독은 끊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의 글을 이만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