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스위치, 온

그 순간, 예의는 내 감정보다 느렸다

by 도토리 Dot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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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감정이 나보다 먼저 입을 열고
예의는 그 자리에 남겨지곤 합니다.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
억울함과 답답함이 뭉쳐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나를 낯설게 만들죠.


"나, 방금 너무 심했나?"

마음속에 울리는 그 물음은
이미 늦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눈치 없는 태도,
무심한 대응 하나에
참고 또 참았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툭 - 튕겨 나온 나의 말,
그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올 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는 그냥,
내 입장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후회가 남을까요.


화낼 이유는 분명했지만,

방식은 더 따뜻할 수 있었던 걸요.

감정이 올라올 땐
예의가 가장 먼저 희미해집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조금만 더 천천히,
조금만 더 깊게,

숨을 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스위치 켜는 시간

딱 3초만 멈춰보는 거예요.

예의 스위치, 온!!!!

예의는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상처 주고 후회하지 않기 위한
나를 지키는 스위치니까요.


다음엔 꼭,
그 스위치를 꺼뜨리지 않기를.
나의 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를.




<작가의 서랍>


나는 왜 그럴까요.

커뮤니케이션 강의할 때,

"화가 날 땐, 잠깐 3초만 멈춰보세요"

그렇게 말했던 나인데...


삶이 바빠질수록,

마음속에 화가 하나둘씩 쌓여가고
감정이 앞설 때면 나도 모르게
예의 스위치를 꺼두게 됩니다.


스위치가 켜진 날이면

웃는 얼굴, 상냥한 말투, 예의 바른 모습

내가 참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후회도 적은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감정이 앞선 오늘

나도 모르게 스위치 켜는 것을 잊고 말았습니다.


어제 하수구 배관이 또 막혔나 봅니다.

꾹- 꾸룩,

윗집에서 물을 쓸 때마다 들려오는 그 소리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하루.


하필, 우리 집이 1층이라
혹시 역류라도 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윗집에 정중히 부탁을 드렸어요.

"내일 2시-4시에 배관을 정비하러 온다니,

그때까지 거실화장실 사용을 자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거실 대신 안방화장실을 이용해 달라 했지만,

하루 종일 꾸룩꾸룩!

내일 아니라 생각했는지 윗집들은 계속 사용했고

감정은 점점 올라왔습니다.


속은 이미 바닥에 붙어 있었는데,

아저씨의 한마디에
억눌러온 감정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날 선 말투, 터져 나오는 감정.
옆에 있던 언니가 저를 진정시키는 걸 보며
그제야 깨달았어요.


아. 나, 예의 스위치를 꺼버렸구나.

억울한 감정은 참 진심이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습니다.


다음엔,
감정보다 한 발짝 느리게,
예의와 마음을 함께 데리고 걸어가 보려 합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그저 그렇게, 다시.


오늘도 예의 스위치를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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