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지난 글을 탈고했다. 출간 날짜는 출판사 스케줄에 맞춰 순차적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들었다. 책 편집을 마친 담당자가 보내준 최종 메일엔 출판일도 적혀있었다. 출판일은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로부터 쪼그만 게 왜 그리 꼬박꼬박 말대꾸하냐는 꾸중을 많이 들었다. 혼이 나도 그 이유가 타당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을 땐 입으로 저항했다. 물론 그 끝은 좋지 않았다. 대부분 꾸중과 체벌로 끝이 났지만, 나는 입을 닫지 않았다. 그땐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많았고 어른들은 그런 내가 되바라져 보였다.
멈출 줄 모르던 내 저항도 중학생 시절로 끝이 났다. 그 시절은 대화와 설득의 시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듣는 사람이 아니었고 교사들은 대체로 폭력적이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슬프게도 난 모두에게 사랑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예전엔 학교에서 혼이 나면 집에서 2차로 혼이 났다. 감히라는 말로 모든 것은 설명됐다. 혼이 나면 웅크렸고 돌아서선 그런 내 모습엔 화가 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알아주셨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늘 뾰족했던 나의 사고는 어머니 덕분에 간신히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선 주변에서 너는 말을 참 잘한다는 얘길 종종 들었다.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말도 들었다. 여전히 옳은 말도 부드럽게 할 줄 몰랐던 나는 자주 부딪히고 깨졌다. 가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는 논리보다는 감정 다루는 법을 알려주셨고, 그럼에도 못난 자식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셨다. 우리 아들은 늘 쳐다만 봐도 아깝다고 하셨고, 너는 자유로운 아이라서 결혼은 안 해도 좋으니 곁에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나는 답답한 집을 벗어나고 싶었고 어머니는 늘 걱정하셨다. 종종 지나가다 들렸다며 내 작업실에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셨고, 잔소릴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금방 떠나셨다.
어머니는 어느 봄날 내 곁을 떠나가셨다. 내 아내도, 내 아이들도 그리고 막내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실 그 무엇도 아직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내 곁을 떠나가셨다. 그날 날씨는 화창했다.
수업을 변경해 반일 연가를 쓰고 어머니가 계신 가족공원을 찾았다. 계절과 어울리는 작고 예쁜 꽃을 사서 유리에 붙였다. 유골함 앞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을 오래 쳐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이도 쌓였는데, 할 수 없음이 서러웠다. 차가운 유리에 잠시 이마를 댔다. 입 밖으로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고 싶었다. 주변엔 나 말곤 방문객이 안 보여 혼잣말로 근황을 전했다.
둘째가 또래보다 말이 빨라서 너무 기특하고 예쁘며, 엊그제 첫째의 다섯 번째 생일잔치를 커다란 한정식집에서 했다고 말했다. 형과 나는 잘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던 말인 오늘이 내 책 출판일이라며 자랑했다.
혹시 엄마가 날짜를 택한 거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냥 말해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목소릴 듣고 싶었다. 늘 죄송한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길 바랐다. 결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어머니의 기일에 책이 나오는 것도. 보고 계셨다면 칭찬하셨을까. 이런 날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