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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Apr 02. 2024

우린 의미 없이 살 수 없다

일상드로잉

겨우내 지난 글을 탈고했다. 출간 날짜는 출판사 스케줄에 맞춰 순차적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들었다. 책 편집을 마친 담당자가 보내준 최종 메일엔 출판일도 적혀있었다. 출판일은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로부터 쪼그만 게 왜 그리 꼬박꼬박 말대꾸하냐는 꾸중을 많이 들었다. 혼이 나도 그 이유가 타당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을 땐 입으로 저항했다. 물론 그 끝은 좋지 않았다. 대부분 꾸중과 체벌로 끝이 났지만, 나는 입을 닫지 않았다. 그땐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많았고 어른들은 그런 내가 되바라져 보였다.


멈출 줄 모르던 내 저항도 중학생 시절로 끝이 났다. 그 시절은 대화와 설득의 시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듣는 사람이 아니었고 교사들은 대체로 폭력적이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슬프게도 난 모두에게 사랑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예전엔 학교에서 혼이 나면 집에서 2차로 혼이 났다. 감히라는 말로 모든 것은 설명됐다. 혼이 나면 웅크렸고 돌아서선 그런 내 모습엔 화가 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알아주셨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늘 뾰족했던 나의 사고는 어머니 덕분에 간신히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선 주변에서 너는 말을 참 잘한다는 얘길 종종 들었다.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말도 들었다. 여전히 옳은 말도 부드럽게 할 줄 몰랐던 나는 자주 부딪히고 깨졌다. 가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는 논리보다는 감정 다루는 법을 알려주셨고, 그럼에도 못난 자식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셨다. 우리 아들은 늘 쳐다만 봐도 아깝다고 하셨고, 너는 자유로운 아이라서 결혼은 안 해도 좋으니 곁에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나는 답답한 집을 벗어나고 싶었고 어머니는 늘 걱정하셨다. 종종 지나가다 들렸다며 내 작업실에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셨고, 잔소릴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금방 떠나셨다.


어머니는 어느 봄날 내 곁을 떠나가셨다. 내 아내도, 내 아이들도 그리고 막내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실 그 무엇도 아직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내 곁을 떠나가셨다. 그날 날씨는 화창했다.






수업을 변경해 반일 연가를 쓰고 어머니가 계신 가족공원을 찾았다. 계절과 어울리는 작고 예쁜 꽃을 사서 유리에 붙였다. 유골함 앞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을 오래 쳐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이도 쌓였는데, 할 수 없음이 서러웠다. 차가운 유리에 잠시 이마를 댔다. 입 밖으로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고 싶었다. 주변엔 나 말곤 방문객이 안 보여 혼잣말로 근황을 전했다.


둘째가 또래보다 말이 빨라서 너무 기특하고 예쁘며, 엊그제 첫째의 다섯 번째 생일잔치를 커다란 한정식집에서 했다고 말했다. 형과 나는 잘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던 말인 오늘이 내 책 출판일이라며 자랑했다.




혹시 엄마가 날짜를 택한 거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냥 말해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목소릴 듣고 싶었다. 늘 죄송한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길 바랐다. 결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어머니의 기일에 책이 나오는 것도. 보고 계셨다면 칭찬하셨을까. 이런 날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개를 들어 사진을 보니 어머니가 웃고 계셨다.         









첫째가 벌써 이리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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