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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Jun 17. 2024

만약에 말야

미니픽션 그리고 일상 드로잉

"야~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

"그래, 애들은 많이 컸고?"

"......"

"그치, 네 카톡 사진 보니까 진짜 애들은 쑥쑥 자라더라."

"......"

"나야 뭐, 죽지 못해 사는 거지. 그냥 하릴없이 바빠."

"......"

"아냐 아냐. 연애는 무슨. 이젠 다 귀찮다. 혼자가 편해. 그냥 나중에 실버타운이나 가려고."

"......"

"아, 됐고 근처 조용한 참치집이나 가자. 내가 쏠게."

"......"

"애 아빠가 무슨 돈이 있어. 시끄러워. 그냥 따라와."

"......"




"크. 날이 더우니까 소맥 맛이 기가 막히네. 그나저나 어디 사냐? 아직도 거기 사나?"

"......"

"너도 참 그 동네 못 벗어나는구나. 하긴 네가 그 동네 오래 살아서 좋아했지."

"......"

"나? 다시 서울로 기어들어갔지. 일하려니 어쩔 수 없더라고. 젠장. 매달 나가는 돈이 얼만지 아냐? 눈물만 난다."

"......"

"아, 됐고 술이나 받아. 오랜만인데 왜 이리 술을 꺾어?"

"......"

"하긴, 나도 영 예전 같지가 않다. 소주 한 병만 마셔도 이젠 취해. 알쓰 다 됐어. 알코올 쓰레기야 기냥."

"......"

"그래도 간만에 둘이 마시니까 옛날 생각나 좋네. 왜 그때 우리 둘이 다니면 여자들이 막 말 걸고 그랬잖아. 이젠 늙어서 쳐다도 안 본다. 젠장."

 "......"

"야, 뭘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지. 그땐 내가 좀 난리였냐? 사실 아직도 주변에서 날 가만히 냅두질 않는데 귀찮아서 안 만나는 거야."

"......"

"뭘 자꾸 물어봐. 진짜라니까. 그나저나 이 집 참치 괜찮네. 사장님이 해동을 잘해. 녹기 전에 좀 먹어~"

"......"

"에헤이. 술맛 떨어지게. 뭐... 그 후에도 좀 만나봤지. 근데 안 되겠더라. 난 결혼할 팔자가 아닌가 봐. 누굴 책임질 자신이 없어. 네가 그냥 대단한 거야. 난 포기했어."

"......"

"지는 결혼 했다고 쉽게 말하네. 야, 결혼이 그리 쉽더냐. 다들 따지는 거 엄청 많어.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나 같은 프리랜서가 무슨 미래가 있어. 그냥 사는 거지. 누구 고생시킬 일 있냐. 혼자가 편해."

"......"

"그때? 오랜만인데 또 그 얘기냐. 그때야 지금보다는 어렸고, 걔라면 없이 살아도 서로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 걔가 날 좀 좋아했냐..."

"......"

"그래, 미안하지. 나도 잘 모르겠어... 복에 겨워서 미쳤던 거지 뭐. 이젠 잘 사는 애 얘기 그만해라."

"......"

           



"넌 와이프랑 안 싸우냐? 티브이 보면 다들 난리던데. 이건 뭐 결혼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나 봐, 얼마나 평화로워. 와이프 친정 간다고 하면 다들 좋아 죽던데 그게 뭐 하는 짓이야? 걍 그럴 바엔 혼자 살지."

"......"

"뭐가 외로워? 나 고요하게 사는 거 좋아하잖아. 요즘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빔 프로젝터 켜고 영화 보며 맥주 한잔 하는 게 낙이다. 안마의자에 앉아서 치킨 한 마리 혼자 다 먹고. 부럽지?"

"......"

"짜식 말은. 부럽긴 뭐가 부러워. 그냥 한 소리지. 나도 요즘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다. 너니까 오늘 시간 내서 만난 거지 이젠 사람도 잘 안 만나. 그냥 남의 헛소리 들어주는 것도 피곤하고. 한 얘기하고 또 하는 것도 지겹고..."

"......"

"새로울 게 없는 게 슬프지. 옷도 이젠 잘 안 사. 옛날엔 옷 사는 데 그리 돈을 많이 썼는데 이젠 꾸미는 것도 귀찮고. 나이 먹어서 그런가. 뭐 배우기도 싫어."

"......"

"동호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거 막상 가보면 남자들만 득실거려서 남자 환영 안 해. 그리고 우리 나이대를 누가 좋아해? 내가 이 나이에 삼십 대 애들하고 경쟁해야겠냐?"

"......"   

"그러니까. 다 끝났어. 망할. 사는 게 재미가 없다..."

"......"


  



"근데 그거 아냐? 가끔 목욕탕에서 아빠랑 어린애가 같이 씻고 노는 거 보면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쓰리다?

"......"

"아냐 아냐. 굳이 따지자면 나도 결혼했다면 저만한 아들이 있었을 텐데 정도. 날 닮은 애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잖아? 무튼 요즘 그런 장면이 쓰리게 느껴지더라고."

"......"

"취하긴 뭘 취해. 그냥 오랜만이니까 아무 말이나 하는 거지. 여성호르몬 과다분비야, 과다분비.

"......"







"근데 있잖아, 만약에 내가 그때 걔랑 헤어지지 않고 결혼했다면 잘 살았을까....?"   

 




*대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구어체 및 비속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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