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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Jul 12. 2024

나를 지워가는 일

일상 드로잉

"광현쌤,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 돼요?"


"죄송합니다. 미리 말해주시지, 애들 때문에요."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들이기에 다양한 이유로 자리를 만든다. 불참이 잦은 내게도 강한 권유가 들어올 때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을 땐 미리 처가에 도움을 청하고 참여하기도 한다. 이번엔 전체 회식도 아닌 타 부서 회식이라 어렵지 않게 거절했다. 소고기를 배 터지게 제공하겠다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뒤돌아선 침만 조금 흘렸을 뿐, 정중히 사양했다.


점심 식사 후 대여섯 명이 모여 커피를 마셨다. 연초를 태우던 선배 한 분이 새삼스레 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광현 씨 가정적인 거 보면 참 대단해."


멍하니 포만감을 즐기다 영문 모를 칭찬에 어리둥절한 사이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젊은 시절엔 일한다는 핑계로,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늦은 귀가가 잦았다며 웃었다. 물론 늘 술 취해 들어갔으니 아내와 참 많이도 싸웠다고 했다. 가끔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그의 표정은 웃음보다는 담배연기와 어울렸다. 다른 사람들도 공감능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는지 자신의 과거를 하나둘 털어놓았다.


아내와는 즐겁게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자신만 오면 입을 다문다던지, 이젠 자식들과 사는 이야길 나누고 싶어도 길게 끌고 나갈 수 없다는 말 모두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다만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슬픔을 자아낸 것은 그들 이야기 기저에서 느껴진 후회 때문이었다. 그나마 집에 가면 자신을 반기는 반려동물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분의 말엔 모두가 웃었다. 집단 고백의 현장에서 이물감을 주는 존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커피 얼음만 입 안의 체온으로 녹였다.                 




사람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떠들썩한 자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고독했다. 사람들에게 내 속에 머물던 것들을 한참이나 쏟아내고 나면, 텅 비어버린 내면은 금세 초라하게 느껴졌다. 좋은 사람, 도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숱한 시간을 엎지른 소주처럼 술자리로 흘려버렸다. 에고라는 녀석은 술 취한 코끼리처럼 나를 휘둘러댔고 부끄러운 난 늘 어디론가 도망갈 궁리만 했다.                   


인간은 누구나 두 가지 상반된 욕망을 갖고 살아간다. 살고자 하는 리비도적 욕망도 강하지만, 무로 돌아가고 싶은 타나토스적 욕망도 그림자처럼 우릴 따라다닌다. 나는 에고를 지우지 못해 괴로웠고, 갈지자 걸음은 늘 위태로웠다. 그러던 내가 결혼 후 자녀가 생기며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방식의 나를 지워가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아이들 위주가 된 삶을 살고 있어도 그 또한 기쁨이었다. 관계에 더는 시달리지 않고 작업에 목말라하지 않으며, 그저 현생을 사는 일이 좋았다. 나와 아내를 닮은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주는 일이야 말로 내가 원하던 일이었다. 내 위치와 역할을 이토록 분명하게 깨달은 적이 없었다. 내겐 아버지란 이름의 그림자이자 결핍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미해결 과제를 풀어나가는 나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진실로 나를 원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밖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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