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광현 May 23. 2024

사랑의 레시피

일상 드로잉

아내와 내 생일은 이틀 차이가 난다. 각각 16일과 18일로 연이어 파티하기엔 간격이 짧다. 감사하게도 올해엔 주말 하루동안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시겠다는 처가의 배려가 있었다. 덕분에 이번 주말은 부부가 그토록 바라던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는 기념일엔 근사한 식당을 예약하고 의미 있는 선물도 나눴다. 나이 차가 좀 있는 우리는 선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는데, 아내는 딱히 원하는 것이 없던 내게 선물 주는 일이 어려웠다. 반대로 나는 선물하는 일이 쉬웠다. 평소 눈에 띄던 예쁜 것들을 기억해 기념일에 건네주면 아내는 기뻐했다. 무난한 취향의 여성에게 미술 하는 남자의 선물은 감각적일 수밖에 없었다. (냉정한 아내의 공식 답변이다.)


결혼 후에도 기념일마다 아내에게 선물을 줬지만, 아이들이 생기고 난 후엔 선물의 의미가 점점 흐려졌다. 필요한 게 없던 나는 선물을 사양했고, 아내는 생일날 꽃 한 다발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올해는 그 돈 아껴서 맛있는 것이나 먹자하니 이것이 부부의 세계인가 싶었다.


애정왕 최수종 흉내라도 내고 싶어 생일마다 아내의 아침 생일상을 직접 차렸다. 이번엔 아침 생일상 만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른 표현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리저리 궁리해 봤지만 여러 제약이 있어 다소 뻔한 선택을 하게 됐다. 정성이 담긴 저녁 식사까지 책임지는 것. 아무리 배달음식이 맛있더라도 남편이 만든 요리의 가치만 못할 것이라며 혼자 의미를 뒀다.


고기를 선호하지 않는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전생에 암사자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육식에 진심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본 육식 동물의 식사 장면처럼 내장을 선호하며 고기는 다음 순위로 친다. 그러나 곱창이나 막창엔 남편의 실력이 담기기 어렵다. 틈틈이 갈고닦은 실력으로 스테이크를 구워주기 위해 재료 구입차 마트로 향했다. 빠르게 준비된 그날의 저녁 식사는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내 수고는 아내의 칭찬으로 보상됐다.




혹시 이 글이 남 얘기처럼 들린다면 잠시 생각해 보자. 꼭 고든 램지와 백종원만 집에서 요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남자들이 집에서 실력을 갈고닦지만, 의외로 요리에 서툰 남자들도 많다. 이 꼭지는 요리를 멀리했던 남자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자취 기간이 길었다. 살기 위해 수많은 스승들을 유튜브에서 만났다. 미슐랭스타까지는 아니어도 미술할랭(?) 스타를 획득한 야매 요리사의 방식을 속는 셈 치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은 곧 근사한 저녁 한 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를 선택하기 전 가니쉬(곁들임 음식)로 새송이 버섯과 양송이버섯 세트를 골라 카트에 넣는다. 요즘 마트에는 구이용 모둠 버섯을 따로 팔기에 낱개로 구입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플레이팅을 할 때 고기만 놓여있으면 아쉬우니 샐러드 코너에서 푸실리와 펜네 샐러드(숏 파스타. 가운데가 비어있는 오감자 같은 녀석과 나사같이 생긴 녀석) 세트를 사서 얹어주는 것도 좋다.


스테이크 고기로는 잘만 요리한다면 호주산이나 미국산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다. 초심자들에겐 두께가 얇은 부챗살이나 등심 스테이크가 추천되곤 하나 사나이라면 겁먹지 말자. 고기는 두께와 식감이다. 망하면 치킨 시켜 먹지라는 각오로 제일 두꺼워 보이는 안심을 과감하게 고른다.


소스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마트에선 다양한 소스를 볼 수 있는데, 시판되는 소스의 맛은 대부분 아는 맛이다. 이미 본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처럼 재미없으니 수제로 만들어보자. 방법은 간단하다. 포도주스를 사서 걸쭉하게 졸이면 끝. 포도 특유의 달고 새콤함이 고기의 풍미를 끌어올린다.    


마트에 들른 김에 레드 와인도 잊으면 안 된다. 와인까지 아는 척하고 싶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므로 알아서들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길 바란다. 6만 원 이하 와인들의 맛 차이를 느낀다면, 그대는 이 단락이 무용한 사람이다. 달고 쓰며, 무알콜 와인, 샹그리아 등 기분에 따라 중저가 와인을 고르면 된다. 매대에는 와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고, 점원들도 추천을 해주곤 하니 선택하기 편할 것이다.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랩을 벗긴 후 그냥 조리하면 평생 고기 못 굽는다는 소릴 면하기 어렵다. 스테이크 굽기가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 밑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핵심은 고기의 온도다. 냉장되어 있던 고기를 바로 불판에 올리면 익힘의 정도를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먹기 최소 30분 전에는 상온에 두고 종이 타월로 핏기를 닦아준 후 밑간을 해둔다. 시즈닝 가루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면 후추와 소금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거 좀 짤 것 같은데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충분히 뿌려주고 올리브 오일을 발라준다. 셰프들은 소금을 아끼지 않는다.

     

요즘 가정에는 가스버너보다 인덕션을 쓰는 집들이 많다. 깨끗하게 관리하긴 편하나 강한 불이 필요한 요리에 인덕션은 아쉬운 도구다. 하지만 온도를 최대치로 올리면 고기 구울 정도는 된다. 스테이크엔 강한 불이 필수다. 인덕션 위에 팬을 올리고 팬이 충분히 달궈진 후 연기가 나면 이때부터는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망해도 우리에겐 배달 치킨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불필요한 힘이 빠진다.


미리 손질해 둔 버섯들(아스파라거스도 좋다)은 곁에 두고 버터를 집어든다. 편하게 가는 길로 국물 요리에는 다시다가 있다면 구이 요리엔 버터가 있다. 버터를 쓰고도 맛없는 요리를 만들었다면 경찰 불러야 한다. 버터를 큼직하게 썰어 팬에 골고루 버터가 퍼지도록 녹여준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므로 고기 덩어리를 집어 팬 위에 올린다. 그리고 버섯들도 곁에 올린다. 예전에는 향을 위해 다양한 허브도 사용했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고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두께가 4cm는 족히 되는 두툼한 안심을 눈으로 대략 3등분을 해본다. 구울 때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기 속 온도를 재는 스테이크 용 온도계가 있다면 편하겠지만, 어쩌다 한번 기분 내는 사람들 집에는 그런 고급 도구는 없으니 눈을 믿어야 한다. 겉면을 바짝 익히며(시어링) 스푼으로 버터를 끼얹어 준다. 이는 익힘을 도와주며 버터의 풍미가 고기에 배어들게 만들어 준다. 측면을 보았을 때 고기의 아랫부분 3분의 1 정도가 구워졌다면 한 번만 뒤집어 준다. 그리고 뒤집은 후 마찬가지로 측면의 갈변이 3분의 1이 넘어가면 굽는 일은 끝이다.


한 가지 더 남았다. 당장 보여주고 싶고 잘라서 익힘의 정도를 보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다. 접시에 가니쉬들을 플레이팅 한 후, 고기를 올리고 포일로 5분간 덮어준다. 그 시간 동안 스테이크에는 육즙이 골고루 퍼지며 온도는 먹기 좋은 상태로 내려간다.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멋들어지게 와인을 건배하고 고기를 잘라보면 된다.

이대로 잘 따라왔다면 마치 돼지바를 칼로 자른 같은 탐스러운 단면이 보일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미간을 찌푸리며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다. 이때 주의하자. 절대 웃으며 거들먹대면 안 된다. 없어 보인다. 태연한 표정으로 기쁜 마음은 꼭꼭 숨기고 한마디만 더하면 된다.









"그대 두 눈에 건배~!"      


  

보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리석은 남자의 근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