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텍스트보다 이미지 하나가 더 많은 것을 설명할 때가 있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이야기다. 그는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어미 원숭이가 이미 죽어 말라비틀어진 새끼 원숭이의 손을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곤 커다란 진실을 획득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내 업이 미술에 있다 보니 이미지 하나에도 여러 의미를 부여하거나 읽는 것이 익숙하다. 예술작품은 그 안에 작가의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어야 한다. 나 역시 그런 작업을 추구하고 타인의 작업을 감상할 때도 그런 부분을 유심히 살펴본다. 내 산문에도 글과 어우러질 수 있는 드로잉을 글 말미에 넣어두곤 한다. 때로는 그림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설명이 되곤 한다.
가끔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일 더하기 일이 꼭 이 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한 명을 돌볼 때의 수고로움이 두 명이 되고 나니 때로는 곱절에 가까운 고단함이 된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거실에서 부엌까지, 때로는 방과 방 사이를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며 서로의 신체능력을 뽐낸다. 또한 집에서도 자주 유아용 자동차와 킥보드를 타고 트랙을 돌듯 질주하는데, 그 끝은 대부분 다툼으로 마무리된다.(이미 본인들이 끌어올린 흥은 아빠의 경고로는 가라앉질 않는다.)
경쟁심이 강한 둘째는 어떻게든 오빠를 이기려 한다. 첫째는 어린 여동생에게 양보만 하는 것이 싫다. 장난감 하나에도 경쟁이 붙어 서로 뺐고 빼앗기가 일상이며, 가끔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통은 실랑이만 요란하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로를 때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폭력을 쓰면 엄마 아빠가 엄하게 혼내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어제는 장난이 심해져 첫째가 둘째를 밀쳐 넘어뜨렸다.
말리려는 찰나 아이는 넘어졌고, 다행히도 온 집안 바닥엔 쿠션이 깔려있어 큰일이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스쳐가는 둘째의 표정을 나는 아주 느리고도 천천히 보게 되었다. 아이는 당황한 얼굴이지만 눈물을 꾹 참고 있었고, 입은 일자로 악 물며 몸을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설명하긴 어려우나 나는 그 순간 무언가 중요한 것을 엿본 듯했다. 이상한 일이다. 그 장면 하나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매주 벌어지는 학교폭력과 선도사안으로 심력소모가 큰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범한 아이들의 분별없는 잔혹성을 볼 때는 생각이 많아진다. 사과와 해명은 부모의 몫이며, 이와 대비되는 가해 학생들의 해맑음이 최근 교육현장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과연 나는 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지낼 환경을 걱정하게 된다. 아직 연약한 존재들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며 성장할 수 있을지 염려한다. 경쟁심 강한 내 딸이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근심한다. 유약한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호신술을 가르쳐보는 것은 어떨지 고민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의 때가 묻어난 조각들이다. 생각의 화탕 속에선 시야는 부옇게 가려지고 희망엔 그을음이 껴 어둡게 보일 때도 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보호자의 본능이 서글픈 요즘이다. 보고 들리는 것들이 두려워 그렇다. 내 아이들이 커가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불의에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늦은 밤, 곤히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불 밖을 삐져나온 작고 통통한 발들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듯 선명하게 보였다. 평온한 시간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저 발들도 커질 것이며, 자신의 힘으로 걷는 만큼 굳은살이 생길 것이라는 평범한 깨달음이 불안을 걷어냈다. 피곤한 시기를 겪다 보니 예민했다. 방파제는 단단하게 서 있는 그 자체로 파도를 막아줘야지 흔들거려서야 제 역할을 못한다.
『열자列子』 천서 편天瑞篇에 한 유명한 고사가 있다. 중국 기나라에 하늘이 무너지면 몸 둘 곳이 사라진다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는 남자가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한 사람이 그에게 하늘은 공기가 쌓여있을 뿐 무너질 일이 없고, 땅도 천지에 흙이 두텁게 쌓여 꺼질 일이 없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이에 남자는 크게 기뻐하며 더는 근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