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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Jul 19. 2024

 내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요

일상드로잉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면 그들 사이 어떤 것이 유행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주로 쉴 새 없이 재잘대는 녀석들의 대화를 통해 데이터가 쌓이는데, 수집된 정보는 수업 분위기를 재밌게 만들어야 할 때 활용되기도 한다. 아이들 귀를 붙잡아둘 수 있는 이보다 쉬운 방법이 없으니 잘 모르는 것은 공부하듯 찾아본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말을 꺼내면 역풍을 맞는다.         




쉬는 시간 핸드폰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한 아이를 보았다. 무엇에 그리 흐뭇한 표정이 나오나 쳐다봤더니 일본어로 노래하는 여가수를 보고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일본 아이돌이 있었나 의아해하는 사이 녀석은 눈치 빠르게 뉴진스 하니의 일본 공연 모습이라며 설명해 줬다. 아, 뉴진스.


우리나라 대중 예술이 일본에서도 인기 많다는 사실이 당연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 때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문화 강국이었다. 특히 아이돌 문화는 독보적이었는데, 예전 우리나라의 몇몇 기획사에선 일본을 따라잡고자 대놓고 그들을 모방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젠 K컬처가 세계 문화의 중심부에 우뚝 섰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이의 어깨너머로 작은 화면 속 공연을 보았다. 여름 바다가 연상되는 마린룩에 짧은 단발을 한 하니는 애교 섞인 미소로 일본 도쿄돔의 관객들과 내 제자 한 명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하니가 부르던 노래는 일본의 경제성장이 절정에 달할 시기의 대표적 아이돌이었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였다. 자릴 벗어나서도 중독성 있는 도입부를 머릿속에서 끌어내질 못해 유튜브를 켰다.


유행을 반영하듯 인터넷 공간엔 마츠다 세이코의 다양한 공연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단발 펌헤어와 덧니가 매력적인 그녀는 학창 시절 첫사랑 같은 풋풋함이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그녀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으나, 전성기의 모습행복해 보여 애잔함도 느껴졌다. 알고리즘을 따라 하니가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진행자는 일본인들은 한국의 아이돌이 부른 <푸른 산호초>를 통해 자신들의 가장 좋았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분석했다.


설득력 있었다. 예전 mbc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90년대 유명 가수들을 소환해 만든 콘서트에 대중이 열광했던 이유와 다르지 않았다. 공연에선 유독 삼사십 대 관객들의 모습이 주로 잡혔었다. 그 시대의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했던 세대가 그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했던 가수들에게 환호하며 관객들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음악으로 되감고 있었다. 감정은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뇌과학자들은 감정 중추가 기억 중추인 해마와 붙어있어 사람들은 즐거웠을 때를 잘 기억한다고 말한다.




장마라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내린 비보다 내리지 못한 비가 더 다. 어항 속을 걷는 듯한 요즘 날씨엔 음악에 기대고 싶어 진다. 눅눅해진 추억도 음악과 함께라면 뽀송하게 건조되기도 한다. 노래엔 분명 추억을 부르는 힘이 다. 출근길에 옛 음악들을 재생해 센티해지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다.


퇴근길엔 비가 내렸다. 빗방울을 닦아내는 와이퍼가 페이지 넘기듯 빠르게 상념을 넘겼다. 내 시선도로를 향해있어도 귀가 추억하는 눈길은 과거로 가 있었다. 못다 한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차 안에서 퍼지는 모든 노래들이 올여름 가야 할 여행지로 남쪽 섬을 가리켰다.       








아~ 내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릴 거예요.

아~  푸른 바람을 가르고 달려줘요 그 섬으로.


마츠다 세이코 <푸른 산호초> 중



 

그거 엄마 우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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