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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Oct 28. 2024

이길 때보다 질 때 배우는 게 많아

일상 드로잉

불현듯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보드 게임을 만들었다. 아직 숫자 읽는 것에 서툰 아이들이 숫자와 친해지도록 즉흥적으로 만들었는데 제법 괜찮아 보였다. 아빠가 큰 몸을 수그리고 무언갈 그리고 있으니 가만히 지켜볼 녀석들이 아니다. 내 몸에 매달리며 아빠가 뭘 하는지 계속 물어봤지만 일부러 대답을 피했다. 이 작은 악당들 애간장 태우는 일은 요즘 내 은밀한 기쁨이다.





작은 장난감 두 개를 말로 삼아 놀이판 위에 올려놓으며 같이 놀 준비를 끝냈다. 아이들에게 주사위를 굴리며 놀이판에 적힌 숫자대로 말을 움직이는 놀이 방법을 알려줬다. 놀이를 이해한 아들은 소릴 지르며 좋아했고, 딸은 영문도 모르고 같이 좋아했다. 아빠 대 아이들로 팀을 나누고 게임을 시작했다. 아들은 주사위를 잘 굴려 두 판을 내리 이겼다. 숫자를 읽으며 활동하는 보드 게임에 제법 교육적인 효과까지 보여 흐뭇했다.


이기는 데 재미를 느낀 아들은 놀이를 더하자며 졸랐다. 기왕 만들었으니 충분히 즐기고자 이어서 한 세 번째 게임에서 문제가 생겼다. 본의 아니게 내 주사위 운이 좋아 아들을 이겨버린 것이다. 아들은 급 소심해지고 보드 게임이 싫다며 토라졌다. 아, 이런. 녀석은 자신 뜻대로 되질 않거나, 무언가에 지는 느낌을 받으면 종종 이런다.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지으며 울먹이는 아들 귀에 아빠 설명은 들어가질 못했다. 아내는 아들을 달래주고 놀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아이에게 놀이는 지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놀이는 이기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고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아들은 아직 어렸다. 녀석은 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그 성향은 자신의 아빠를 닮은 것 같아 쓴웃음이 나왔다.




어린 시절 나는 자존심만 강했다. 차라리 자존감이 높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사소한 일에도 지는 것이 싫던 피곤한 승부욕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왜 그랬을까. 내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하셨다. 그리고 질책엔 부지런하셨다. 모든 일의 원인을 부모에서 찾는 것도 우습지만, 그 시절 나는 분명 인정에 목말랐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든 배우는 것이 빨랐기에 집 밖에서 칭찬받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칭찬엔 중독성이 있었다. 우월함을 뽐내야만 인정받는다 여겨 나보다 서툰 친구를 얕잡아 보는 일도 있었다. 그 하찮은 우월감은 독이 됐다. 남들보다 못한다고 여기는 일이나 실패를 점점 두려워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실패를 딛고 성장할 때 누구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초반에만 빨랐던 성장은 여러 곳에서 정체되었다.


벌거벗은 임금처럼 남들은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었다. 뒤늦게 벌거벗은 자신을 보게 된 후, 이미 지나온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을 통해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그 또한 분명 의미가 있었다 믿을 뿐이다. 그간 깨닫게 된 것들이 현재 내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 특성일까, 타고난 천성일까. 아들은 기분 전환이 빠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내게 다가와 새로운 놀이를 제안했다. 그저 서로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장난감 놀이였다. 그 놀이에서 나는 늘 악당 쿠앙이고 자신은 영웅 카봇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하는 아들 덕에 나 또한 덩달아 역할에 몰입했다. 정의를 외치며 자신의 로봇으로 내 공룡을 때려대는 것을 보니 남은 앙금이 아주 없진 않은가 보다. 카봇 필살기에 내가 쓰러지며 비명을 지르니 좋아했다. 


아이는 앞머리가 땀에 젖을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해 보여 놀이를 마쳤다. 색색대는 아이를 내 무릎 위에 앉혀놓고 머릴 쓰다듬어 줬다. 많은 감정이 담긴 손길인데, 문득 녀석은 이 촉감을 커서도 기억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난 이미 아이에게 충분히 많은 말을 한 기분이었다. 


내 앞에서 마음껏 까부는 아들이 몹시도 예뻤다. 다시 생각해 보니 녀석은 나와는 달랐다.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갈 것이고, 그 안에서 배워가는 것이 많을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아들과 딸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생각에 빠져 앞날을 그려보는데 아이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퉜다. 아들은 장난감 양보를 안 하고, 딸은 그걸 뺐겠다고 달려들었다. 아, 이 녀석들을 진짜....                    






누가 널 이기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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