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갈길은 아직 멀어 보여도 흐릿해진 시야를 핑계 삼아 잠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작년 오월 나름 소란했던 시작을 떠올려보니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나는듯해 무언가를 털어놓고 싶은 의욕도 생긴다.
지난 삼 년간 유난히 수면을 힘들어하는 아이들로 인해 나 또한 잠에 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들을 보냈다. 수면이 부족해지자 체력저하는 물론 무기력증도 곧 뒤따라왔다. 잠에 들기 위해 술로 마무리했던 밤들은 이어졌고 알코올 의존도 역시 높아져만 갔다. 이삼십 대를 함부로 보낸 몸뚱이는 엄살을 부리듯 주변에서 느낄 정도의 이상신호를 보냈고 자연스레 나에겐 변화가 요구됐다.
밑도 끝도 없지만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었는지 글로써 확인해보고 싶던 느닷없는 욕구가 생겼다고 할까. 이 영문모를 열정에 중언부언 서투르게 말도 참 많았다. 창피한 일이지만 그 부끄러움의 조각들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기에 아직 지우질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있다.
평소 관심이 많던 영화, 책, 만화들을 골라 떠듬떠듬 글을 써보니 괜찮겠다 싶었다. 왜 아마추어들 특유의 날것의 냄새가 있지 않은가. 그 기대 하나로 별 준비 없이 브런치작가 신청을 했는데 덜컥 승인이 떨어졌다. 얼마 만에 느껴본 성취감이던지 친한 몇 명에게는 자랑질도 좀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검증이 필요한 다른 영역에서 나를 받아줬다는 일이 그때는 그리 좋기만 했다.
라이킷을 염두하진 않았다. 댓글을 바랄 수도 없었다. 나의 글이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호기롭던 시작과는 다르게 매회 절절히 느꼈기에 혼잣말하듯 글을 이어나갔다. 봐주면 고맙고 아니어도 그만인 이 시끄러운 방백.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혼자 부산스럽던 이웃에게 조금씩 관심을 준 사람들이 생겼다. 구독자 늘리기를 위함이 아닌 진정으로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 SNS를 안 하던 나는 촌스럽게도 새로운 관계의 확장이 참 반갑고도 신기했다.
이곳에서조차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는 태도를 바꿔 조심스레 그들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갔다. 분명 무명의 작가 또는 지망생이었을 그들의 빼어난 글솜씨에 감탄했던 것도 잠시, 담담하게 기록된 개개인의 슬픔과 번민에는 무관심할 수 없었다. 사실, 조금 아프기까지 했다.
나의 글에 거짓을 담을 수 없었듯, 그들 역시 자신의 글에 솔직했다. 나이, 직업과는 관계없이 그들의 사유는 깊었으며 고통을 직시하는 태도에는 존경하는 마음조차 생겼다. 이곳의 타이틀은 모두가 작가여도 각자의 삶에선 호칭의 무게를 짊어진 평범한 사람들. 엄마, 아빠, 학생, 작가, 교사, 예술가 그리고 작가 지망생.
그중 글벗이라 부르고 싶은 몇 명이 이곳을 떠나갔다. 그 이유가 화려한 비상을 위함이라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겠지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쓸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나의 좁은 세상,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본다. 흥미가 생기질 않거나 진심이 오갈 수 없는 만남에는 놀랄 정도로 무관심했던 나는 그 사실을 애써 숨기려 늘 두꺼운 사회적 페르소나를 쓰고 살았다. 허나 가면을 쓸 수 없던 이곳에선 맨 얼굴의 내가 곳곳에 조각처럼 뿌려져 있었다. 그 스쳐가기 쉬운 조각들을 모아 온전한 하나의 형태로 보아준 사람들.
특히 아픔에 번민하는 작가들과 더 많은 마음을 나눴다고 생각한다. 짧은 기간 동안 내 진심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믿고 싶다. 아직 글을 써야만 하는 나는 백아처럼 거문고 줄을 끊지는 못하지만 아쉬움과 응원의 마음을 담아 글을 남긴다. 바라건대무기력한 일상을 딛고 일어서 소소한 기쁨의 발견으로 가득한 일상이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