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견기업, 그들은 왜 출자했을까?

by 고병철

라이트하우스인베스트가 운용 중인 오픈 이노베이션 조합에는 중견기업 15개 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조합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런 질문을 모아봤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중견기업들이 조합에 왜 출자했나요?'입니다.

당연히 신사업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이어지는 질문은 '견실한 기업인데, 직접 투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입니다.

실제 참여한 기업들은 재무구조도 좋고, 꾸준히 이익도 내고 있습니다. 확실한 매출처와 시장 점유율도 있습니다. 당연히 스스로 해 봤습니다. 그런데 대개 잘 안되었습니다.


'왜 독자적으로 잘 안되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신사업으로 변신에 성공한 기업이 드뭅니다. 왜 그럴까 저도 궁금했습니다. 중견기업 2세가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중견기업들 중에 상당수는 대기업 협력사입니다. 원청업체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주문받아 납기 맞추는 데, 생산비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합니다. 그래야 했고, 그래도 되었습니다. 연구개발도 거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지금 사업과 많이 다른 사업에 눈 돌린 여력이 없습니다. 돈도 인력도 없어요."


'연구비라면 정부과제로 하면 되지 않나요?'

좋은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과제는 누가 선정하나요? 공공기관에서 선정합니다. 그럼 선정기관 의도에 맞는 쪽이 유리하겠지요. 몇 대 성장동력, 무슨무슨 전략과제가 대표적입니다. 현실과 이상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에서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드뭅니다. 현업에서 필요해서 스스로 세운 계획이 아닙니다. 확신이 부족하고 추진력이 약합니다. 연구성과보다는 연구소 인력 유지 방법이 돼버립니다.

한편으론 독자적인 연구개발을 해본 적이 없는 중견기업들이 뭔가를 해야겠고 그쪽으로 우르르 몰립니다. 일단 해보는 거죠. 그러다 시간만 보냅니다. 심지어 아예 준비가 없다가 불황이 닥쳤을 때 허겁지겁 신사업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체 연구개발도 하지만 중견 기업들이 외부 스타트업에도 투자하고 있지 않나?'

이 말 또한 사실입니다. 예전에 소위 호황기이었을 때, 몇 중견기업들은 크고 작은 투자를 꽤 많이 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다고 그 돈도 지금 아쉽다 합니다. 별다른 결과가 없었다면 대체 왜 그럴까 물어봤습니다.

투자는 몇몇이 주도합니다. 큰 회사던 작은 회사던 마찬가지입니다. 심하게는 오너의 고유권한입니다. 그런 투자를 백업하는 실무진이 한두 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대개 투자 전문가가 아닙니다. 주 업무가 따로 있어 늘 바쁩니다. 오너도 본사업에 신경을 써야죠. 잘게 잘게 투자한 기업은 재미도 없고, 잘되면 좋고.. 이 정도 관심입니다. 자연히 팔로우업도 안됩니다. 오히려 어떤 오너는 직원들이 아는 걸 꺼려합니다. 씨만 뿌리고 가끔 하늘만 처다 보는 투자입니다. 억세게 운이 좋아야 잘 됩니다.


'중견 기업 오너들이 과감하게 투자했던 스토리들이 꽤 있는 데?'

네 맞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오너들은 한 번에 멋진 결과를 기대합니다. 자기가 주도해 단번에 위기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죠. 이건 중견기업이던 대기업이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려면 일단 투자규모부터 정말 사운을 걸 정도, 즉 자산 대비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자합니다. 직관이 들어맞으면 대박입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한데, 마음만 과감하면 결과는 참담합니다.

무모한 투자 두세 번에 정말 사운을 다한 회사들도 있습니다. 바둑에서 묘수 세 번 두면 진다 고 합니다.


'대기업에서도 잘 안 되는 데, 중견기업이라고 별다를 게 있나?'

네 좀 다릅니다. 투자 결정은 오너가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너가 책임진다고 해야 일이 진행됩니다. 대기업은 조직이 큽니다. 최종 결정까지 몇 단계를 거칩니다. 인사철이라도 되면 일단 멈춥니다. 영혼 없는 담당자라도 중간에 끼면 대롱대롱거리다 끝납니다. 조직 내 경쟁구도도 변수입니다. 오너한테 가기 조차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 조합에 출자한 중견기업들은 오너가 직접 참여합니다. 진행할지 말 지 빠르게 결정합니다.


'단독으로 조합에 출자하면 좋지 않나?'

일단 그러려면 백억은 되어야 할 텐데, 견실해도 부담은 됩니다. 15개 기업이 자기 상황에 맞게 십시일반 출자했습니다. 재무적 부담을 줄였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다양성입니다. 15개 출자기업은 각자 사업영역이 있습니다. 관심사도 다르죠. 각기 다른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봅니다. 혼자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업그레이드되고 피보팅도 합니다. 지금은 인연이 아니라 해도, 다른 출자기업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끈이 이어집니다. 좋은 투자 기회를 유지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사역들은 투자가 본업입니다. 전문 인력이 관리하고, 그들이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해 줍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중견기업 투자 클러스터에 참여할 때 얻는 잇점은?

조합에 출자하지만 큰 자본 없이 신사업을 볼 수 있다.

본업과 직접 관계없는 새로운 사업도 볼 수 있다.

사업이 잘 진행된다면 그때 인수해도 된다. 초기 리스크에 노출되는 금액을 줄인다.

전문 인력이 꾸준히 관리하며 업데이트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유럽 출장 12일(20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