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혈당이 많이 높네요. 그리고...”
피검사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는 의사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결과는 ‘당뇨진단’이라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습니다. 내가 당뇨라니...
아니, 당뇨는 완전 어르신들의 만성질환 아니었던가요? 비록 20대는 아니지만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인데 당뇨환자라니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당뇨(2형 당뇨)의 진단기준이 되는 당화혈색소(HbA1C)는 비당뇨인 정상수치가 5.6까지, 당뇨 전단계(당뇨예비군)는 6.5까지인대 제 수치는 이미 8.4였습니다. 2020년 3월 05일이었습니다.
그 해 봄은 컨디션이 최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건치상을 받을 정도로 튼튼했던 치아가 흔들리고 자도 자도 가시지 않는 피곤함, 종일 누워있어도 축 처지는 기분... 암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덜컥 겁이 났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서 하루이틀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뚜렷하게 다치거나 피가 나는 것도 아니어서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어리석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과인지 내과인지 신경과인지 어떤 병원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혼자 걱정만 하던 매일이었습니다. 스트레스는 많고, 해치워야 할 일은 쌓여있고 그것만으로도 허덕였던 터라 조만간 병원에 가봐야지 정도로 넘기던 바보같은 저였습니다. 혹시나 진짜 암이면 어쩌지라는 선무당 사람 잡는 식의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질질 끌고서라도 하루빨리 아무 병원이나 데려갔을 겁니다. 그러지 않았던 건 그전까지 심각하게 병원신세를 진 적이 없었기에 그저 이 모든 알 수 없는 신체의 아우성은 스트레스와 인간관계, 불규칙한 생활습관등으로 인한 결과라고 넘긴 저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더 보듬고 알뜰히 귀 기울여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얼마뒤 우연히 건강검진 하러 간 병원에서 피검사 제안을 받았고 위에서 밝힌 대로 결과는 명백한 당뇨진단이었습니다. 하늘이 샛노랗다는 표현이 어떤 건지 실감이 날만큼 놀랐고, 받아들이기 힘든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타고난 기질이 약한 멘탈은 아니었던지라 빨리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 속에서도 딱 하나 또렷한 건 ‘이제 남은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겠구나.’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당뇨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오래전 고3 모의고사에서였습니다. 영어시험 중 당뇨(Diabetes)에 관한 지문이었습니다. 인생에서 당뇨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옛일이어서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강 당뇨의 위험성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소위 노인세대에 해당하는 분들이 겪는 골치 아프고 무서운 병이라는 인식정도였습니다. 미성년자인 저로선 얼마나 지독한 병이면 이렇게 대입 모의고사 지문으로까지 등장할까 싶었습니다. 어이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참 힘드시겠구나 정도였죠. 수십 년 후 그게 자신의 일이 될 줄은 모른 채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아찔하고 답답하고 아득합니다. 딱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까마득한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남은 인생을 합병증 투성이의 끔찍한 시간들로 고통스럽게 살다가고싶진 않았던걸요. 누구나 같은 심정이시겠죠. 그러니 최대한 부지런을 떨어서 빨리 안전한 곳으로 와야죠.
길게 살진 못해도 사는 동안 최대한 아프지 않게 살다가고싶으니 20년 3월 05일부터 인생 리셋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이 길이 어느 정도 진흙탕범벅일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노력하면 좋아지겠지, 꼭 좋아져야지라는 각오만 품을 뿐이었습니다. 그 외에 달리 선택지도 없었구요. 당시 제가 얼마나 당뇨라는 만성질환에 대해 무지했냐 하면 약 꾸준히 먹고 식이와 운동을 잘하면 단약도 어렵지 않고 누구나 회복하는 줄 알았습니다. 합병증이 무서울 뿐 완치도 되는 질환인 줄 알았습니다.
살면서 그다지 잘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만족보다 아쉬움이 더 많은 인생을 살아왔는데 인생 리셋을 결심한 그날, 자포자기보다 운동화끈을 묶을 결심을 한 제 자신은 토닥토닥해주고 싶습니다.
“잘 생각했어.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