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형 당뇨 진단 후 가족에게 당밍아웃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혈당이상 없으시지만 자식건강걱정으로 충격받으실까 봐 꺼려졌습니다. 지인들에게도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생활습관병이라는 2형 당뇨이다 보니 “그러길래 진즉 생활습관도 고치고, 몸에 나쁜 건 줄이고, 운동도 좀 하지.”라는 불편한 반응이 많을 것 같아서였죠.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몸관리를 못해서 저렇게 됐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치료에 아무 도움 안 되는 잔소리에 방어기제가 작동했나 봅니다.
태연히 당밍아웃할 사회분위기도 아니라는 판단도 한몫했습니다. 1형이든, 2형이든 유럽이나 일본처럼 당뇨진단받은 걸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분위기였더라면 진즉 저도 여기저기 고백하고 같이 식사할 때 별스럽게 음식을 가린다는 주위의 시선을 받을 필요도 없었겠죠.
옛날부터 아픈 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야 좋다는 속설도 있지않았나요?
대체 왜 내가 아픈데 주위 비난을 두려워해서 털어놓지 못하나 싶었지만 이래저래 당밍아웃은 주저하게 만들더군요. 지금도 극소수의 지인만 알 뿐 여전히 가족과 친구들은 모릅니다. 극소수의 지인이란 저의 건강보험 컨설턴트입니다. 사실 진단 초기엔 당밍아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생활습관 고치고 스트레스 안 받게 마인드컨트롤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요. 그런데 당밍아웃을 더욱 주저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혈당관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간단한 진료차 동네피부과에 들렀습니다. 50대중후반쯤 된 여의사의 진료 후 제가 먼저 복용하고 있는 혈당약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혹시 모를 부작용 예방을 위해 항상 다른 진료를 받으면 복용약에 대해 먼저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피부과 여의사의 반응이 뜻밖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대 왜 벌써?”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저 피부과 처방과 진단이 필요할 뿐 내과적 개인병력에 대해 이런 반응을 들을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왜 의사가 환자의 병력에 대해 판단하는지도 이해불가였습니다. 간단한 피부과 진료받고 간단하지 않은 내과질환 평을 듣고 온 날, 하루 내내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비록 피부과이지만 의료인조차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덕분에 여태 당밍아웃 안 하길 잘했다는 의미없는 합리화마저 얻었습니다. 진정 한심한 인간이 되고말았구나라는 자괴감과 동시에 말이죠.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할까요?
“그러게 평소 건강검진도 잘하고, 몸에 좋은 음식만 먹고, 스트레스도 받지 말았어야지.”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개인사와 상황이 있는지도 모르니 만약을 위해서도 말은 아끼고 아껴야 합니다. 굳이 위로와 격려는 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저런 태도역시 현명한 관점도, 정답도 아니라는 사실을 수년간 저와 주위 당뇨인들을 보면서 절감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 탓하기엔 이 사회에 몸에 안 좋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장 마트에 가봐도 얼마나 유해한 첨가제식품이 많은 지 모릅니다. 빠르게 유행되는 디저트습관 역시 건강에 좋을 거 없죠. ‘참고 먹지 말아야지.’라는 식의 섣부른 충고는 사회적으로 건강한 선택지가 충분할 때 유용합니다.
당밍아웃은 원치 않는 동정이나 오지랖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 받고 덩달아 혈당수치가 악화되지 않기 위해 서라도 필요합니다. 주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면 혈당관리는 조금이라도 더 수월해지겠죠. 개인의 병력을 탓하는 시선은 어디서 오는걸까요.
지금도 그 의사의 한마디는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잊고 지내다가도 이렇게 글을 쓰니 다시 떠올리게 되고 그 순간 당황하던 제 기분도 생생합니다. 평소 피부과에 갈 일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혹시 또 피부과진료가 필요하다면 차 타고 다른 동네로 가야 할까요. 다행인 건 근처에 쾌적하고 친절한 피부과가 새로 생겼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