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무시당한 선택의 힘
11. 무시당한 선택의 힘
“아, 정말? 그만둔다고? 난 도서관 같은 곳에서는 절대 일 못하겠다.”
커피숍 한쪽 구석, 창가로 오후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직장 언니는 무심하게 커피를 저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말끝은 가볍게 흘러나왔지만, 내 마음에는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퇴사를 앞두고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작은 응원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건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순간 손끝이 떨렸다. “도서관 같은 곳”이라는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이고 숨통을 틔워줄 공간이었던 도서관이, 다른 이의 눈에는 단지 ‘돈 적게 버는 곳’으로만 비쳤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는 붐볐지만 내 마음은 쓸쓸했다. 혹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이런 반응은 처음이 아니었다. “좋은 회사 다니다 왜 그만두냐”, “지금 나이에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겠어?”, “안정적인 월급은 포기하기 힘들 걸.” 주변에서 들려온 말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누군가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말했고,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웃어 넘겼지만, 속으로는 수없이 흔들렸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직장’의 조건은 분명하다. 높은 연봉, 안정된 조직, 남들에게 설명하기 쉬운 명함. 증권사는 그 모든 걸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안정 속에서 나는 점점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과와 보고서로 채워진 날들이 이어질수록, 내 안은 비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마음이 끌렸다. 증권사에 다니던 시절, 퇴근 후 들른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마다 묘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 공간을 채운 고요. 그 속에서는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단순히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일이었지만, 내겐 숨통을 틔워주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작은 확신이 생겼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방향이라는 것.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선택일지라도, 그 길에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일 수 있다는 것.
도서관에서 실제로 일하게 된 후, 나는 그 믿음을 더욱 굳게 붙잡게 되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단순했다. 반납된 책을 정리하고, 책등을 교열하고, 청구기호 순으로 다시 꽂는 일. 그러나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는 평온을 느꼈다. 매일 쏟아지는 보고서와 수치 속에서 허우적대던 과거와는 달랐다. 눈앞의 한 권, 한 권이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가끔은 민원도 있었다. “도서관 와이파이가 잘 안 돼요.” “프린터가 고장 난 것 같아요.” 작은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 속에서, 나는 내 역할의 가치를 깨달았다. 문제를 해결해주고 돌아가는 학생들의 안도하는 얼굴을 볼 때, 이 자리가 누군가의 배움과 하루를 지탱하는 자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숫자로는 기록되지 않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들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그 선택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작고 하찮아 보였을지 몰라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었다는 것을. 무시당하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간 길 위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났다.
혹시 지금 당신의 선택도 누군가에게는 무시당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오히려 당신을 지켜줄지도 모른다. 때로 무시받는 선택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만들어주는 길이 된다.
“다음 글: 〈돌아간 길이 가장 가까웠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