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도달한 수많은 자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책장을 덮자마자 나를 이렇게 깊은 물 속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은 처음 겪었다. 수많은 배역 속에서 허무함에 허덕였던 기옥, 그런 그녀의 곁에서 본인만의 작은 괴물을 키우고 있었던 윤주, 거울 속 자신을 마주 볼 수 없었던 태인, 그리고 태인의 곁에서 죽을 때까지 죄책감에 휩싸일 상호까지 이번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리얼리즘 연극’을 목도했다.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삼은 점도 독특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무대 세팅 속에 네 명의 인물이 둘러싸 독자를 향해 날카로운 대사를 내리쬐는 경험을 했기에, 배경이었던 연극 무대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파트별로 나뉘어져 있는 해당 소설은 각각 기옥, 윤주, 태인, 상호의 시점으로 흐른다. 신기한 것은 극단의 방향에 놓여있는 인물들임에도, 이야기 전개의 흐름이 비슷하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무대 -> 나도 모르는 뒷편의 모습 -> 문제 -> 진짜 내 모습과 현실에 대한 내적 갈등’
이러한 커다란 줄기가 네 명의 인물들을 이끌어갔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의 파도가 옴니버스의 형태를 넘어서 연극 그 자체 같다는 감상을 느꼈다. 희곡 안에 희곡을 감상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 나아가 나의 인상은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에 대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일상 속 약물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기옥의 불안정함, 그런 기옥의 곁에서 자신의 상처와 욕망을 숨기는 윤주. 두 인물 다 무대 위에서는 각자의 가면을 가지고 삶을 인내로 이겨내지만, 살짝 가면을 들추자마자 드러나는 어두운 입꼬리들은 나 혹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모습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이미지가 좋았던 태인이 결국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상호 역시 ‘진짜 한 사람의 모습’으로서 한 발자국 나아가기 어려워했다. 네 인물이 가지고 있는 긴장, 불완전, 이중성. 이 모든 요소를 합치면 지금 우리가 몸담은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정의가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앞서 나는 이 소설이 ‘리얼리즘 연극’ 같다고 언급했었다. 연극 무대와 현실 삶의 교차적인 편집, 그리고 그 사이의 커다란 괴리가 독자들에게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들의 허무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줄 만틈 텅 빈 마음을 잘 담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많은 가면을 가지고, 더 깊은 괴리를 가지고 있진 않을까. 단순히 앞뒤가 다른 사람이 아닌, 삶을 살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가면이 나를 어두움 속에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어두움 속에 있다면, 그 안에서 가면을 버리고 진짜 나를 꺼내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오래 걸리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삶을 살아내는 동기가 될 것이며, 우리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고통과 욕망이 삶의 동기를 제고시키는 것처럼 끝이 나지 않는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삶’을 우울에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Fin없는 삶을 살아낸다. 오늘 하루만 더 그리고 내일 하루만 더, 그렇게 앞으로 가다 보면 나다움이 기다리고 있길…
@ 원문 링크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693
@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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