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회고록

태권도 사범으로 살아온 10년, 내 인생에 남긴 자국

by 환히


26살부터 36살까지,

나는 태권도장 사범으로 살았다.

돌아보니, 이 10년은 내 35년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기록해 두기로 했다.


태권도 사범이라는 일은 사실 도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취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태권도 관장님의 딸이었으니까.

그래서 또 무서웠다.

‘내가 이 일을 맡으면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용기를 냈다.

태권도 사범이라는 일을 너무 잘할 것 같던 든든한 남편이 곁에 있었고,

또 남편에게 아빠의 지도법과 철학을 알려주고 싶은 책임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나를 훨씬 더 대단한 사람으로 봐주었다.

내가 모르는 내 좋은 점을 늘 바라봐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믿음과 사랑이 정말 나를 많이 키워줬다.

아마 이 10년 동안 나를 크게 한 건, 내 노력도 있었지만 남편의 시선과 지지가 훨씬 더 컸을 거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내게 참 잘 맞았다.

나는 진심이 아니면, 마음속에 의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말도 행동도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대할 때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이 나왔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고, 내가 끌어줘야 하는 존재니까.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이 진심이었다.

아이들은 더 쉽게 웃고, 더 쉽게 슬퍼하고, 더 쉽게 겁내고 기뻐하며, 더 편하게 마음을 준다.

좋아도 아닌 척, 슬퍼도 아닌 척하지 않는다.

그 순수함이 늘 내 마음을 진심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진심은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끼길 바라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태권도 실력이 늘어 자신감이 붙고,

여러 도전을 즐기며 ‘나는 할 수 있다’는 순간을 맛봤으면 했다.

때론 그런 바람 때문에 더 두렵기도 했다.

예를 들어, 요즘 흥미를 잃어 도장을 그만둘 것만 같은 아이가 최선을 다해서 하지 않을 때, 혼내면 더 멀어질까 두려우면서도

모두를 위해,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말해야 했다.

웃을 때, 단호할 때 모두 내 진심이었다.



가끔은 피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나는 사실 게임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긴장감도, 공놀이 같은 것도 무섭다.

그러니 아이들이 열광할 만한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늘 고민이었다.

생각이 말이나 행동으로 나오기까지 느린 편이라, 게임 진행을 하면 아이들이 금방 내 속임수를 다 알아채고 분위기가 느슨해지곤 했다. ㅎㅎ


하지만 이제 남편 없이 내가 해내야 했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못하는 게임은 과감히 하지 않기.

다른 사람이 할 땐 잘 보고, 아이들이 빵 터지는 멘트를 살짝 따라 하기.

아이들을 무조건 흥분하게 만들려 하지 않고,

그저 안전하게, 운동 자체를 즐겁게 느끼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그리고 나 스스로가 제일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시키고, 즐기는 사범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기.

그렇게 극복해 냈다. 별 거 아니더라.



또 한 가지 두려웠던 건 남편 없이 도장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할 때 남편이 없는 것이 꽤 힘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도 남편이 중간에서 웃음과 재미를 줘서 자연스럽게 깔깔 웃게 됐는데,

이제는 내가 단호히 할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만들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참 어려웠다.

그래도 결국 부딪혔고, 이제는 서로 기분 상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가까워졌다.


어떤 노력을 했냐고 묻는다면 잘 정의되진 않는다.

책도 읽고, 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그냥 안 하기도 했고,

작은 일은 내가 더 하면 되지 하고 넘어갔으며,

정말 이건 못 참겠다 싶은 건 담담히 말했다.

상대가 이야기할 땐 들으려 노력했고, 웬만하면 웃으려 했다.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편해졌다.



그리고 나는 꽤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두렵고, 여전히 나를 잘 모르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겼다.

태권도장 이야기를 할 때 내 눈은 늘 반짝인다.


수많은 도장 관장님과 사범님들이 지켜보는데도 내가 수업할 때처럼 태연히 해냈다.

그런 자신감은 태권도가 아닌 일에도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연말행사에서 사회를 맡았을 때,

애드리브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의 눈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당당히 마쳤다.

누군가가 뭔가를 맡기면 늘 도망치기 바빴는데,

일단 OK 하는 담대함도 생겼다.

늘 떨렸지만 눈에도,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다.

그 순간들의 내 색깔은 진한 파란색 같았다.

조용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고, 당당하고 쿨한 느낌.



26부터 36까지 이 10년은 끝까지 잘하려고 애쓴 시간이었다.

그게 내 앞선 25년과 달랐던 점이다.

그전엔 조금만 힘들거나 스트레스받으면 소설과 드라마로 도피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그랬다.


하지만 태권도장에서는 행사진행, 대회 방송, 발표, 참관심사 준비, 중국 제자들과의 훈련까지 —

결과가 눈에 보이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일에 스트레스를 한가득 받으면서도

‘에라이, 대충 하자’ 하고 놓아버린 적 없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특별한 10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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