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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Apr 30. 2023

봄날의 택배

당신은 누구의 관형어입니까?




꽃이 지천일 때 택배 하나가 왔다.

작은 상자 안에는 두릅이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깐파와 깐마늘이 두릅을 덮듯이 놓여 있었다. 가운데에는 제법 산뜻해 보이는 사과 세 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텃밭에서 거둔 것들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시간날 때마다 까 둔 마늘과 그리고 쪽파, 앞마당의 두릅이 억세질세라 남김없이 따 보낸 것이었다.

사과 농사는 짓질 않으니 보낸 건 분명 누군가 드시라고 가져다 준 것을 고스란히 넣어 보낸 것이다.

시댁이 사과 농사를 지으니 사과가 아쉽지 않고, 설령 사과가 없더라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마트며 시장이 있으니 사과는 귀한 과일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딸기가 한창이다. 그걸 모르실 리 없건만

모성은 늘 이성을 앞지르고 만다.  

택배 상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구순 가까운 노모가 굽은 등, 곱은 손으로 이 곳까지 이고 온 것 같아 억누를 수 없는 무엇이 가슴으로 눈으로 축축하게 새어 나왔다.


                                  


어김없이 올해도 꽃이 피었다.

꽃샘추위에 담금질 하며 환하고 섬세하게 봄을 가꾸어 내고 있다.

엄마의 사랑도 여전히 쉬는 법이 없다.

시간의 어귀마다 꽃으로 잎으로 삶을 다독이며 가꾸어 주고 있다.

꽃이 그렇듯 거칠고 메마른 노목이 되어서도 진실은 요령을 피울 줄 모른다.

훼손될 수 없는 신의 분신, 모성을 실천하며 내일로 내일로 기약없이 걸어갈 뿐이다


                                 


꽃은 봄의 관형어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가장 알맞은 색깔과 향기로 봄을 이끌고 장식해 준다. 자신의 짧은 생을 불태우고 버리며 봄길을 터 준다.

어머니는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관형어이다.  벽을 뚫고 산을 넘으며 앞에서 밑에서 받치고 북돋우는 거름이다.  

자신을 부단히 버리며 당당한 주인으로 밀어주고 길을 터 주려는 존재다.

치열한 삶은 온전히 가족의 봄날을 위한 관형어였다.

빼곡한 기억들이 모두 그것이거늘

관형어 없인 한없이 불완전했던 존재들이

품을 떨치고 나와선 그 품을 잊어버릴  때가 허다하다.

변명을 할수록 서글퍼지는 어리석음이지만

그것이 자식의 한계인지라 어머니는 곧잘 희미한 배경이 되어 버린다. 삶터에서 뒷전이 되고 만다. 검버섯 핀 고향에서 가 닿지 않는 외로움의 북을 어머니는 혼자서 둥둥 울리고 있다.

함께라는 단어를 떠나보낸 지 오래다.

하지만 낙담은 없다. 귀기울이지 않는 자식들을 위해 오늘도 텃밭에 그림자를 누인다.  

외로움에 지쳐도 더 깊은 이해로 매일 매일 일어서신다.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는 듯...

관형어처럼 붙였다 뗐다 하는 자식의 이기심이 밝은 봄날 더욱 부끄럽다.


                                   


한잎 두잎 꽃이 떠나고 있다.

소중한 존재로 살았던 누군가의 꽃도 어디선가 지고 있을 것이다.

눈에 가득했던 모습이 마음으로만 아리게 스며들 것이다.  

모든 생명은 시간과 동행하고 있다.

꽃의 소멸과 무상이 또 한번 일깨워 준다.




휜 몸을 곧추세우며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유모차에 기대 시간을 따라 걸어가는 어머니가 저 앞에 있다.

시간의 권력에 순둥이가 된 노인이 저기 있다.

문득문득 마음이 졸아들고 흩어진다.



                                   

아직도 밥 먹듯이 하는 거짓말을

잘 먹고 잘 지낸다는 당신을

속지 말고 들여다봐야 한다.

어머니가 평생 섰던 관형어 자리에

어설프지만 우리가 설 차례다.

일상의 따뜻함을 헤아릴 차례다.

그것이 어머니의 꽃길이리라.

존엄한 모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리라.




봄날의 택배도

어느 날 봄꽃처럼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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