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3장
그 열차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이발소에서였다. 이발사가 내 뒤통수를 깎으며 뜬금없이 물었다.
"손님, 혹시 종로역 4번 승강장 알아요?" 모른다고 답했다. 종로역에 4번 승강장은 없으니까. "그러니까요," 이발사가 말했다. "없는데 있어요."
나는 거기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발사는 원래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고, 손님의 뒤통수를 보면서 하는 말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가위 소리가 귀 뒤에서 두어 번 울리더니 화제는 날씨로 넘어갔고, 나는 그 말을 잊었다. 정확히는, 잊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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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두 살이고, 구청 도시계획과에서 일한다. 하는 일은 단순한데, 지하 매설물 도면을 관리하는 것이다. 상수도관, 통신케이블, 가스관 —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들의 위치를 기록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일에 적성이 맞았다. 보이지 않는 것에도 좌표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좌표가 있으면 관리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으면 잊어도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내린다. 아버지가 쓰던 드리퍼로. 스테인리스 드리퍼인데 손잡이 부분이 약간 휘어져 있다. 아버지가 어떻게 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부터 그랬다. 새 것을 사도 되는데 사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이게 익숙하니까. 식빵을 굽고, 혼자 먹고, 설거지를 하고, 출근한다. 저녁에 돌아오면 맥주를 마시고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라디오를 틀어놓는 건 아버지의 습관이었다. 텔레비전은 보지 않으면서 라디오는 항상 켜두는 사람이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의식적으로 따라 한 건 아니다. 그냥 조용한 집에 사람 목소리가 하나 있는 편이 나았다.
일주일에 한 번 요양원에 간다. 일요일 오후. 아버지가 거기 있다. 5층 동쪽 병실, 창가 침대. 갈 때마다 컵라면을 하나 사 간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건 아니고, 요양원 근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다. 아버지가 먹는 건 본 적 없다. 간호사가 치우는 것 같다.
최근에는 내 이름을 부르는 날보다 못 알아보는 날이 더 많아졌다. 작년까지는 반반이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면 창밖을 보다가 돌아보고, 내 이름을 부르거나 아무 말 없이 다시 창밖을 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올해 들어서는 거의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봐도 나를 보지 않는다. 시선이 나를 통과해서 뒤쪽 벽에 닿는 느낌이다. 거기 있는 게 사람인지 가구인지 구별하지 않는 눈.
지난주에 갔을 때는 아버지가 창밖을 보면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려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름 같기도 했다. 내 이름은 아니었다. 음절 수가 달랐다. 두 글자. 내 이름은 세 글자니까. 간호사에게 물어봤다. 요즘 자주 그러세요, 혼잣말을 하시는데 저희도 알아듣지 못해요. 간호사는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죽었다. 나에게는 어머니의 기억이 거의 없다. 목소리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집에 어머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거실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우리 집에는 왜 없는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라디오 볼륨이 평소보다 한 칸 높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 뒤로 나는 어머니에 대해 묻지 않았고, 아버지도 어머니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이 없으면 얼굴을 모르고, 얼굴을 모르면 그리워하는 방법도 모른다. 그리움에도 좌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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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뒤, 야근 중이었다. 오래된 도면 파일을 연도별로 정리하다가 잘못 분류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종로 일대 지하 배관도, 1971년 작성. 제도지에 흑색 잉크로 그려져 있었고, 우측 하단에 제도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정수.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도면 자체는 정상이었다. 상수도 본관의 경로, 분기점, 밸브 위치가 현행 도면과 큰 차이 없이 그려져 있었다. 접어서 올바른 폴더에 넣으려다가, 좌측 하단의 구조물 표기 하나가 눈에 걸렸다.
「종로역 4번 승강장」
점선으로 표시된 지하 구조물이었다. 폭 4.2미터, 길이 87미터, 깊이 지하 31미터. 연결 통로 두 개에 환기구 하나. 그런데 현행 도면에는 이 구조물이 없다. 해당 좌표에는 지반 표시만 있을 뿐이다. 그냥 흙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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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점심시간에 종로역에 갔다. 도면에 표시된 연결 통로 입구 좌표는 3번 승강장 서쪽 끝, 비상구 안내판 바로 뒤편이었다. 거기에는 방화셔터로 막힌 벽이 있었다. 회색 강판 위로 먼지가 고르게 쌓여 있는 걸 보니 오래 열리지 않은 문이었다. 수십만 명이 매일 이 앞을 지나가면서 한 번도 보지 않는 종류의 벽.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면을 보지 않았다면.
그런데 셔터 하단, 바닥과의 틈새에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손등을 대면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약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이상한 건 온도였다. 나중에 비접촉 온도계를 가져와서 측정해보니 섭씨 36.5도. 12월이었다. 외기온 영하 3도, 역 구내는 14도 안팎. 셔터 너머에서 나오는 바람은 그 어느 쪽의 온도도 아니었다. 사람의 체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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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베개를 통해 전해지는 아주 미세한 진동 때문이었다.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진동이었는데, 지진과는 달리 방향이 있었다. 머리 쪽에서 발 쪽으로, 무언가가 내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전철의 진동과도 달랐다. 1호선 종전은 자정이고, 애초에 전철의 진동에는 레일 이음매를 넘을 때의 불규칙한 충격이 섞여 있다. 이건 그렇지 않았다. 이음매가 없는 것처럼, 아니 레일 자체가 없는 것처럼 매끄러웠다. 약 30초간 지속되다가, 멈추기 직전에 아주 낮은 음이 한 번 들렸다. 경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고 진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고막이 아니라 두개골이 공명하는 종류의 소리였다.
나는 11층에 산다. 이 건물 아래에는 철로가 없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내가 관리하는 도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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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은 그 뒤로도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왔다. 나는 직업병처럼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3시 2분, 2시 58분, 3시 4분, 3시 1분, 3시 7분. 불규칙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종로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벽에 붙은 시각표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오후 3시 2분, 2시 58분, 3시 4분. 숫자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등이 서늘해졌다. 내가 새벽에 기록한 시각들이었다. 낮에 실제 열차가 종로역을 지나가는 시각과 분 단위까지 똑같았다. 4번 승강장의 열차는 실제 열차의 운행 시각을 그대로 베껴서 새벽에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두 번째 기록이 문제였다. 2시 47분. 이것만 혼자 떨어져 있었고, 나머지와의 격차가 너무 컸다. 시각표에서 오후 2시 47분을 찾아보았다. 해당 시각에 종로역을 지나는 열차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규칙이 여기서 깨져 있었다.
그날의 진동은 강도부터 달랐다. 베개가 아니라 바닥 전체가 떨렸고, 컵에 담긴 물이 흔들렸다. 거의 2분간 지속되었으며, 마지막에 들린 저음은 분명히 경적 소리였다. 창문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의 주택가에 가로등과 편의점 간판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스팔트 위에 안개 같은 것이 얇게 깔려 있었다. 안개라고 하기에는 색이 이상했다. 아주 희미하게 분홍빛이 돌고 있었는데, 5분 뒤에 다시 봤을 때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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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밤 11시에 종로역 방화셔터 앞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바람이 아니라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분홍색이었다. 형광등과는 질감이 달랐고,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오래된 느낌이었다. 백열등에 가까웠지만 그보다 부드러운,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 어딘가 익숙한 종류의 빛이었다. 잠들기 직전 눈꺼풀 너머로 보이는 빛이 이런 색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주기는 약 7초. 무언가가 셔터 너머를 일정한 속도로 통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12분간 같은 주기로 반복되더니 갑자기 멈추었고, 완전한 어둠이 돌아왔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틈새에 귀를 대보았다. 소리는 없었지만 셔터 너머의 공기는 습도가 높았고, 비 온 뒤의 아스팔트 같으면서도 약간 달콤한 냄새가 났다. 습관적으로 온도계를 꺼내 틈새에 대보았다. 섭씨 36.8도. 처음 왔을 때보다 0.3도가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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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도면을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비고란을 찾아보았다. 도면이 접히는 부분에 걸쳐 있어서 처음에는 못 봤던 연필 메모가 있었다. 돋보기를 가져와 읽어보니 제도사 박정수의 필적이었다.
「운행 시각 — 불명. 행선지 — 해당 없음. 비고 — 승객 있음(추정).」
운행 시각 불명이라고 쓴 것은, 시각을 모를 뿐 운행 자체는 전제한다는 뜻이다. 존재하지 않는 열차의 운행 시각을 논할 이유는 없으니까. 행선지 해당 없음이라고 쓴 것은, 행선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행선지라는 개념 자체가 이 열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인가.
가장 오래 나를 붙잡은 건 마지막이었다. 승객 있음, 추정. 승객이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열차 안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 추정이라고 쓸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박정수는 1971년에, 공식 도면의 비고란에 추정이라고 적었다.
나는 도면을 접으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비고란 메모 아래, 도면의 접힌 자국 안쪽에 뭔가 더 있었다. 아까는 접힘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도면을 완전히 펼치고 돋보기를 갖다 대니, 세로로 나열된 글씨가 보였다. 이름이었다. 연필로 쓰여 있었고 절반 이상은 뭉개져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세 개 정도였다. 첫 번째는 판독 불가. 두 번째는 흐릿했지만 성이 '김'인 것 같았다. 어머니의 성이 김이었다. 세 번째는 비교적 선명했다.
내 이름이었다.
나는 도면에서 손을 뗐다. 1971년. 내가 태어나기 20년 전이다. 필적은 비고란의 메모와 같았다. 같은 연필, 같은 필압. 박정수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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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사 박정수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구청 인사기록에는 해당 이름이 없었고, 1971년 당시 도면 작성을 외주 맡긴 업체는 동도측량설계사무소라는 곳이었는데,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반세기가 넘었으니 폐업한 지 오래인 듯했다.
여기서 그만둬야 했다. 나는 도면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도면 속 유령을 쫓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두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전날 밤, 진동이 다시 왔다. 두 번째 2시 47분이었다. 진동이 멈춘 뒤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천장 위로 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분홍색 빛이 천장을 가로질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느리게 이동했다. 무언가가 건물 위를 지나가면서 창문을 통해 빛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나는 11층에 산다. 이 건물은 12층이 없고 그 위는 옥상뿐이다. 11층 창문 위에서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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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처음으로 분명하게 생각했다. 셔터를 열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이 머리를 스쳤다. 이발사가 그 말을 한 건 내가 물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물은 적이 없는 것을 이발사가 먼저 꺼냈다. 이발사는 어떻게 4번 승강장을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왜 하필 나에게 말했는가.
다음 날 이발소에 갔다. 가게가 없었다. 편의점과 부동산 사이, 내 기억 속에서 이발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코인세탁소가 들어서 있었다. 간판이 바랜 것으로 보아 최소 몇 년은 된 가게였다. 양쪽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건물이 지어진 이래로 저 자리는 쭉 세탁소였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카드 명세서를 확인했다. 그 날짜에 만오천 원을 결제한 기록이 있었는데, 가맹점명은 공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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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셔터 열쇠를 구하러 구청 창고에 간 건 그 다음 날 오후였다.
지하 1층 관리 창고 안쪽에 열쇠함이 있다. 시설 관련 범용 열쇠들이 라벨을 달고 걸려 있는 오래된 철제 캐비닛인데, 대부분의 직원들은 존재 자체를 모른다. 방화셔터 범용 열쇠는 세 개가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으려다가, 열쇠함 안쪽 문에 붙어 있는 반출 대장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종이가 바랜 낡은 장부였는데, 대부분의 기록은 연필이 흐려져서 읽기 어려웠다.
한 장을 넘기고, 한 장을 더 넘겼다. 오래된 기록일수록 글씨가 흐려졌지만 양식은 같았다. 반출자, 반출 품목, 반출일, 반납일.
1971년 11월 8일자 기록이 있었다.
반출자: 박정수. 반출 품목: 방화셔터 열쇠(종로역 구내). 반출일: 1971. 11. 8.
반납일은 비어 있었다.
나는 열쇠를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반출 대장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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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책상 위에는 1971년 종로 지하 배관도가 펼쳐져 있다. 박정수가 작성하고, 비고란에 연필로 메모를 남기고, 내 이름을 적어둔 그 도면이다.
밤 11시다. 가방 안에는 손전등과 온도계와 녹음기, 그리고 구청 창고에서 가져온 방화셔터 열쇠가 하나 있다.
나는 가방을 메고 현관문 앞에 서 있다. 현관 선반 위에 아버지의 드리퍼가 보인다. 손잡이가 휘어진 스테인리스 드리퍼. 내일 아침에도 저걸로 커피를 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아까 카드 명세서를 다시 확인했다. 가맹점명이 공란이었던 그 만오천 원 결제 건을 다시 열었을 때, 가맹점명이 채워져 있었다. 분명히 아까는 비어 있었다.
「4번 승강장 이발소」
나는 신발을 신었다.
셔터는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범용 열쇠를 넣고 반 바퀴 돌리자 잠금이 풀리는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는데, 오십 년 넘게 열리지 않은 문치고는 저항이 없었다. 녹이 슬었을 법도 한데 잠금장치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기름을 쳐둔 것처럼, 혹은 이 문이 열릴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셔터를 밀어 올렸지만 60센티미터쯤에서 멈추었다. 사람이 허리를 숙이면 지나갈 수 있을 만큼만 올라가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손전등을 켜고 안을 비추니 도면에 그려져 있던 그 통로가 나타났다. 폭은 사람 둘이 나란히 걸으면 어깨가 닿을 정도였고, 콘크리트 벽과 콘크리트 바닥 위로 천장에 형광등이 일정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지만 전부 꺼져 있었다. 손전등 빛이 닿는 데까지만 보였고 그 너머는 어둠이었다. 다만 통로 끝 어딘가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분홍색이었는데 형광등이나 전구의 빛이 아니라, 새벽 하늘을 한 겹 벗겨낸 것 같은 색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셔터 아래를 지나 몸을 일으키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종로역 구내의 건조하고 먼지 섞인 공기가 아니었다. 습도가 높았고 피부에 닿는 감촉이 달랐다. 이전에 셔터 틈새로 맡았던 것과 같은 냄새가 통로 전체에 차 있었다. 비 온 뒤의 아스팔트 같으면서도 약간 달콤한, 특정할 수 없지만 불쾌하지 않은 냄새. 그리고 종로역 구내의 소음 — 안내 방송, 개찰구 신호음, 사람들의 발소리 — 이 셔터를 경계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고무 밑창이 콘크리트에 닿는 내 발소리가 양쪽 벽에 반사되어 이중으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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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미터. 도면에 기재된 통로 길이다. 보통 걸음으로 1분이면 끝나는 거리.
30초쯤 걸었을 때 손전등 빛이 벽면의 무언가를 비췄다. 콘크리트 위에 연필로 직접 쓴 글씨였다. 나는 멈추어 읽었다.
「1971. 11. 8. 진입. 통로 길이 실측 87m. 도면과 일치. 온도 19도. 습도 74%. 특이사항 없음.」
박정수의 필적이었다. 도면의 비고란에서 본 것과 같은, 작고 단정한 제도사의 글씨체. 그 아래로 날짜별 기록이 이어졌다. 2회차, 3회차. 온도와 습도와 통로 상태가 매번 기록되어 있었고, 11월 10일에는 승강장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2일까지는 정상이었다. 통로 길이 87미터, 도면과 일치. 같은 숫자가 반복되었다. 13일자 기록에서 숫자가 달라졌다.
「11. 13. 6회차. 통로 길이 재실측. 91m. 오차 4m. 줄자 이상 가능성 있으나 3회 측정 동일.」
그 뒤로 숫자는 계속 커졌다. 15일에 97미터, 18일에 115미터. 박정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셔터 방향으로 되돌아가면 거리가 정상이라는 것이었다. 승강장 방향으로만 늘어났다. 편도 증가.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벽을 읽어나갔다. 1분이 지났다. 보통이라면 87미터를 지나 승강장에 도달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통로는 계속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홍색 빛은 여전히 멀리 있었고,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박정수의 기록은 20일자에 측정을 중단했다. 거리가 매일 달라져서 측정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22일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15분 만에 승강장 도달. 어제는 40분. 물리적 거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는 구조.」
그리고 24일자. 글씨체가 처음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11. 24. 통로에서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 반사음이 아님. 벽에서 났음. 측정 불가. 기록에 적기 부적절하나, 사실이므로 기재함.」
나는 멈추어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아내의 목소리. 박정수에게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24일 이후로 기록의 양식이 달라졌다. 온도와 습도가 사라지고 문장이 길어졌다. 측량사의 기록이 아니라 일기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내가 죽은 건 작년이다. 교통사고였다. 나는 현장에 가지 못했다. 일이 있었다. 일이 있었다는 건 변명이다.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박정수의 사정을 알 필요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기록의 마지막 줄이 눈에 들어왔다.
「통로는 놓아주지 못하는 것의 무게에 반응하는 것 같다. 내려놓으면 짧아지고, 붙잡으면 길어진다.」
그 문장을 읽은 직후, 통로가 끝났다. 한 걸음 전까지 끝이 보이지 않던 통로가 느닷없이 환한 열린 공간으로 이어졌다. 마치 그 문장을 읽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분홍색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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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이었다. 지하철역의 구조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천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천장이 없었다. 대신 하늘이 있었다. 분홍색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는, 끝을 알 수 없는 하늘. 지하 31미터에 있을 수 없는 풍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보인다는 사실 쪽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해가 뜨기 직전 구름이 빛을 머금는 그 짧은 순간이 여기서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입자들이 승강장 위를 천천히 떠다녔고, 숨을 쉬면 그것이 폐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온도계를 꺼내 재보니 섭씨 24도. 한겨울 지하 31미터에서 나올 수 있는 온도가 아니었다.
벤치가 선로를 따라 두 개 놓여 있었다. 낡았지만 먼지가 없었고, 누군가가 오래 앉았다 일어난 것처럼 표면이 닳아 있었다. 노선도가 걸려야 할 자리에는 빈 액자가 있었다. 프레임만 남아 있고 안은 비어 있었다. 그 옆에 시각표가 있었는데 철제 프레임에 끼워진 종이 한 장에 한 줄만 적혀 있었다.
「7:47」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4분이었다. 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벤치에 앉았다. 가방을 옆에 놓고 녹음기를 꺼내 켰다. 습관이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측정한다. 빨간 불이 켜지고 승강장은 조용했다. 내 숨소리와 옷이 벤치에 스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벤치가 따뜻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닿는 면에서 온기가 전해졌는데, 주변 기온이 24도라 해도 나무 벤치 표면이 이 정도일 이유가 없었다. 온도계를 벤치에 대보니 36.4도. 체온이었다. 누군가가 방금 전까지 여기 앉아 있었던 것이다. 혹은 지금도 앉아 있는 것이다. 오른쪽을 보아도, 왼쪽을 보아도 아무도 없었지만, 온기는 왼쪽에서 더 강하게 느껴졌다. 왼쪽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오른쪽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보다 확실했다.
승객 있음. 추정. 박정수의 단어가 이런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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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승강장을 걸어다녔다. 타일 벽을 살피니 줄눈 사이에 아주 작게 새겨진 글씨들이 있었다. 박정수의 필적이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서로 다른 글씨체, 서로 다른 시대의 것들이었다. 도면에서 뭉개져 읽을 수 없었던 이름들의 주인들이 여기 왔었던 것이다. 각자의 이유로 셔터를 열고, 통로를 걸고, 이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시계 세 개를 가져왔다. 전부 다르게 간다.」
「밖에서는 2분이 지나 있었다. 여기서는 6시간.」
「여기서 아내의 손을 잡았다. 30년 만에.」
마지막 문장의 주인이 박정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이 어떤 종류의 장소인지는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사람을 만나는 곳. 혹은, 잃어버린 사람이 기다리는 곳.
시계가 7시 40분을 가리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43분, 변화 없음. 45분이 되자 선로 위의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널 방향에서 미세한 바람이 불어왔고,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46분, 바람이 세지면서 진동이 왔다. 아파트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진동이 이번에는 발바닥을 통해 직접 전해졌다. 매끄럽고 연속적인, 이음매 없는 움직임.
47분.
터널 안쪽에서 빛이 나타났다. 분홍색이 아니라 흰색에 가까운, 우유를 통과한 것 같은 빛이었다. 전조등이었다. 빛이 가까워지면서 열차의 윤곽이 드러났다. 분홍색 차체에 1량, 금색 장식이 창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낡았지만 관리된 느낌이었고, 빅토리아 시대의 노면전차를 떠올리게 하는 비율이었는데 어느 시대의 열차인지 특정할 수 없는 형태였다. 행선지 표시판은 비어 있었다.
열차가 승강장에 멈추었다. 소리 없이. 브레이크 소리도 금속이 스치는 소리도 없이, 처음부터 여기 서 있었던 것처럼 멈추어 있었다. 창문 안에 불이 켜져 있었고, 사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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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통로를 걸을 때도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열차가 멈추자 창문 너머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승강장에 서 있기 때문인지 열차가 멈추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이는 것은 확실했다.
한 중년 여자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고, 무릎 앞에 접히지 않은 빈 유모차가 놓여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구름 뿐인 창밖에서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 뒤쪽에는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과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옷이 이상했다. 노인은 지금 시대의 옷이었지만 여자의 스커트 길이와 블라우스의 칼라 형태, 구두의 모양은 1970년대쯤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는데, 자연스러운 자세가 아니었다. 오래 떨어져 있다가 다시 잡은 사람들의 손이었다.
좌석 하나를 건너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60대쯤 되어 보였고, 귀에 제도용 연필을 꽂고 있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다른 승객들은 전부 옆에 누군가가 있는데 이 남자만 혼자였다. 전방을 보고 있었고 표정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았다. 승객석 전체를 창문 하나하나 훑었지만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문이 소리 없이 양쪽으로 열렸다. 나는 열차에 올라탔다.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었다. 좌석은 편측 롱시트에 낡은 가죽이었고, 천장 조명은 승강장과 같은 분홍색이지만 좀 더 어두웠다. 오래된 나무 바닥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는데, 열차는 멈추어 있는데도 바닥이 떨리고 있었다. 엔진이, 혹은 엔진 같은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었다.
승객들 사이를 지나갔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빈 유모차의 여자도, 노인 부부도, 혼자 앉은 남자도 내가 지나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각자의 세계에 잠겨 있었다.
맨 앞칸까지 걸어가니 운전실 문이 있었다. 알루미늄 문에 유리창이 달려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안이 보였다.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 등을 보이고, 전방을 향해, 양손을 핸들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핸들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선박의 타륜 같은 형태였다.
운전실 문이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옆에 접이식 보조석이 하나 있었지만 나는 거기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요양원에서 볼 때와 같은 등이었다. 같은 어깨 너비, 같은 목 뒤의 주름. 하지만 자세가 달랐다. 요양원에서는 등이 굽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똑바로 앉아 있었다.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의 자세.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눈에 초점이 있었다. 요양원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초점이 거기 있었다.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는 눈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보지 못했던, 나를 아는 눈.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뿐이었다. 이름만 불렀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름이 이 승강장 전체보다, 이 통로 전체보다, 이 지하 31미터의 모든 것보다 무거웠다.
나는 물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버지가 대답 대신 전방을 가리켰다. 유리창 너머로 선로가 터널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너머는 어둠뿐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운전해야 해."
열차 문이 닫혔다.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운전실에서 나와 승객칸으로 돌아가 빈 자리에 앉았다. 열차가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동만 있었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이음매가 없는 진동. 창밖으로 터널 벽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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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바늘이 7시 47분에 멈추어 있었다.
창밖의 터널 벽이 사라지고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아니라 풍경이었다. 유리에 비치는 잔상처럼 희미하게 거리가 보였는데, 서울의 거리 같았지만 지금의 서울이 아니었다. 간판의 서체가 달랐고 자동차의 형태가 달랐고 사람들의 옷이 달랐다. 풍경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열차가 시간을 거슬러 달리고 있었다.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밖을 보았다.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젊은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고, 남자의 걸음은 느렸고, 아이는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30대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안고 있는 아이는 — 나였을 것이다.
장면이 지나가고 다른 장면이 왔다. 더 젊은 아버지. 20대. 병원 앞에 서 있었는데 옆에 여자가 있었다. 임산부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고 아버지가 여자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주고 있었다. 여자가 아버지를 보고 웃었다. 아버지도 웃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웃음이었다. 요양원에서도, 집에서도, 내 기억의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웃음.
나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얼굴. 사진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이 시기의 아버지 옆에 있는 임산부는 한 명뿐이니까. 어머니였다. 그리움에도 좌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좌표 없이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장면이 지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뒤쪽으로 걸어갔다. 맨 뒤 좌석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방금 스쳐 지나간 풍경 속 임산부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병원 앞에서 웃고 있던 여자와 같은 옷.
여자가 돌아보았다. 나를 보았다. 웃지 않았다. 다만 보았다. 한참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알아본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나는 세 살이다. 서른두 살의 나를 알아볼 수 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추정만 가능했다.
열차가 멈추었다. 문이 열리니 같은 승강장, 같은 분홍색 빛이었다. 나는 내렸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 분홍색 빛이 터널 속으로 멀어지면서 경적 소리가 한 번 울렸다. 낮고 짧은 소리. 두개골이 공명하는 소리.
승강장에 혼자 남았다. 통로를 되돌아 걸었다. 이번에는 87미터가 정확히 87미터였고 1분도 안 걸려 셔터 앞에 도착했다. 놓아준 것이다.
셔터를 빠져나와 종로역 3번 승강장에 섰다. 역 구내가 조용했다. 종전 후의 고요함이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14분이었다.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밖에서는 14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승강장 벽에 새겨져 있던 낙서가 떠올랐다. 「밖에서는 2분이 지나 있었다. 여기서는 6시간.」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47분. 밤 11시에 나섰으니 밖에서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셈이었다. 안에서는 분명 새벽부터 아침까지의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몸은 피곤하지 않았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운전석에서 돌아보며 내 이름을 부르던 아버지의 눈. 요양원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인 초점이 거기 있었다. 그 얼굴을 떠올리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려고 선반에 손을 뻗었다. 드리퍼가 있었다. 손잡이가 휘어진 스테인리스 드리퍼. 그걸 보고 안도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안도할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리퍼는 거기 있었고 나는 커피를 내려 마셨다.
식빵을 구워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현관 쪽을 보았다. 신발장 아래 칸에 아버지의 구두가 있어야 했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신던 갈색 구두. 나는 그걸 버리지 않고 놔두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치울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1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던 구두가 사라졌다.
신발장 아래 칸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다는 것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구두가 있던 자리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어제오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거기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였다.
나는 한동안 그 빈자리를 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 거실로 가서 책장 위에 놓아둔 사진첩을 꺼냈다. 사진이 많지 않은 얇은 앨범이었다. 펼쳤다.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이 있었다. 교문 앞에서 찍은 것인데, 내가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혼자. 옆에 아무도 없었다. 이 사진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확실했다. 내 옆에 서서 한 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 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사진에서 사라져 있었다. 내가 혼자 서 있는 사진이 되어 있었다.
한 장 더 넘겼다. 중학교 졸업식. 이것도 나 혼자였다. 아버지가 찍어준 사진이었는데, 아버지가 찍었다는 기억은 남아 있는데 사진에는 내가 혼자 서 있었다.
나는 앨범을 덮고, 부엌에서 노트를 한 권 꺼냈다. 구청에서 쓰다 남은 업무용 노트. 펜을 들고 적기 시작했다.
1회차 탑승 후 소실 목록.
현관 신발장: 아버지 구두 (갈색, 260mm) 소실. 해당 위치에 장기간 공백 흔적.
사진첩: 입학식 사진, 졸업식 사진에서 아버지 형상 소실. 사진 자체는 잔존.
휴대폰: 아버지 전화번호 저장되어 있음. 그러나 최근 통화 기록 전부 삭제됨.
적으면서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는 행위가 나를 안정시켰다. 기록할 수 있으면 관리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으면 — 이 경우에는 잊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라지는 것의 좌표라도 남겨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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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요양원에 갔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들고 5층 동쪽 병실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자세였다. 나는 컵라면을 탁자에 놓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나를 보았다. 하지만 요양원에서의 아버지 눈에는 열차 안에서 보았던 그 초점이 없었다. 초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전에 없던 종류의 반응이 나타났다. 경계하는 눈이었다. 지금까지는 나를 못 알아볼 때도 무관심에 가까웠는데, 오늘은 달랐다. 낯선 사람이 자기 병실에 들어온 것을 불쾌해하는 표정이었다.
"저예요. 아들이요."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창밖을 보았다. 나는 30분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간호사의 발소리가 지나갔고, 어딘가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났고, 창밖에서 까치가 울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가면서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최근에 상태가 달라진 것 같다고, 예전에는 못 알아봐도 경계하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좀 다르다고. 간호사는 차트를 보더니 말했다. "최근 한 주 사이에 좀 변하셨어요. 저희한테도 가끔 경계하세요. 원래 이 병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니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신 것 같아요."
새로운 국면. 나는 그 말을 되씹으며 요양원을 나왔다. 열차를 탔기 때문인가, 치매가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인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나쁜 부분이었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으면 대응할 수도 없고, 대응할 수 없으면 지켜보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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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다시 열차를 탔다.
왜 탔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아버지의 상태가 열차 때문에 나빠진 것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탄 이유. 요양원에서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버지와, 열차 운전석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아버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일주일에 한 번 요양원에 가서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과, 셔터를 열고 통로를 걸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밤 11시에 셔터를 열었다. 통로를 걸었다. 이번에는 3분 만에 승강장에 도달했다. 1회차보다 짧았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박정수의 말대로라면 놓아준 것의 무게만큼 짧아진 것이다. 무엇을 놓아주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승강장에서 기다렸다. 벤치의 온기는 여전했다. 7시 47분에 열차가 왔다. 탔다. 아버지는 운전석에 있었다. 내 이름을 불렀다.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나는 먹었다고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살아 있을 때도 이 이상의 대화는 드물었다.
창밖으로 또 풍경이 흘러갔다. 이번에는 1회차와 다른 장면들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40대의 아버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 아버지 — 라면 끓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 없이 둘이 살면서 아버지가 주말마다 끓여주던 라면. 대단한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라면이 최선이었다. 그 라면이 맛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가 내 앞에 그릇을 놓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것은 기억난다. 밥 먹으라는 말도 없이 그냥 놓았다.
어머니는 맨 뒤 좌석에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자리. 같은 옷. 나를 보지 않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렸다. 통로를 되돌아 나왔다. 87미터.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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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노트를 폈다.
2회차 탑승 후 소실 목록.
서재 책장 2단: 아버지 장서 약 15권 소실. 빈 공간에 먼지 균일하게 분포. 장기간 공백.
거실 벽: 아버지와 함께 찍은 액자 사진 1점 소실. 액자가 걸려 있었던 흔적 자체가 없음.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수신인 단독 명의. 이전에 아버지와 공동 명의였으나, 관리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공동 명의 이력 없음.
세 번째 항목에서 펜을 멈추었다. 관리비 고지서 수신인은 분명히 아버지와 내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간 뒤에도 명의를 바꾸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고지서에는 내 이름만 있었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처음부터 단독 명의였다고 했다. 이건 아버지의 물건이 사라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구두가 사라지는 건 물건의 소실이지만, 관리비 명의가 바뀌어 있다는 건 아버지가 이 아파트에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노트에 한 줄을 더 적었다.
— 비고: 아버지의 물건뿐 아니라 아버지의 존재 이력이 소급적으로 소실되는 것으로 추정.
추정. 또 그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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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탔다.
돌아와서 노트를 폈다.
3회차 탑승 후 소실 목록.
서재 책상 서랍: 아버지 도장 소실. 주민등록증 사본 소실.
비고: 타인의 기억에서 아버지 관련 정보가 소실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
목록을 적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패턴이 보였다. 1회차에는 물건이 사라졌다. 2회차에는 기록이 바뀌었다. 3회차에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서가 있었다. 물건, 기록, 기억. 물리적인 것에서 비물리적인 것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이대로 가면 다음에 사라지는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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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요양원에 갔다.
아버지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창밖을 보지 않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정면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경계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알아보는 표정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표정이었다. 어떤 감정인지 읽을 수 없는, 하지만 무관심과는 분명히 다른 얼굴.
아버지가 간호사를 보고 물었다. "아들이 있었나?"
간호사가 나를 보고, 다시 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네, 여기 오셨잖아요."
아버지는 나를 보았다. 한참 동안. 그리고 다시 정면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30분간 앉아 있다가 나왔다. 복도를 걸으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방화셔터 열쇠가 손가락에 닿았다.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요양원에 올 때도. 회사에 갈 때도.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아들이 있었나. 여태까지는 나를 못 알아봐도 아들이 있다는 것 자체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은 몰라도 아들이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아들이 있었는지 자체를 묻고 있었다. 치매의 자연스러운 진행인가. 열차의 대가인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것이 나를 다시 셔터 앞으로 데려가는 논리가 되었다. 확인할 수 없으니까 열차 탓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단정할 수 없으니까 안 탈 이유도 확정할 수 없다. 어차피 아버지는 잊어가고 있고, 적어도 열차 안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아버지가 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가 있다. 밥 먹었냐고 묻는 아버지가 있다.
합리화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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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탔다.
이번에는 열차 안에서 아버지가 말을 좀 더 했다. 운전석에서 전방을 보면서, 내가 보조석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요즘 일은 어떠냐." 직장 생활에 대해 물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열차 안에서도, 치매 이전의 현실에서도.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침묵이 왔고,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종류의 침묵이었다.
창밖에 풍경이 흘러갔다. 이번에는 더 오래전이었다. 흑백에 가까운 거리. 1970년대의 서울이었다. 판잣집과 전봇대 사이를 지나가는 젊은 남자,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아버지가 서류 가방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제도사가 되기 전의 아버지일 것이다. 아니, 아버지는 제도사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구청에서 측량 관련 일을 했다. 하지만 제도 도구를 다룰 줄 알았다. 집에 T자와 삼각자가 있었던 걸 기억한다.
맨 뒤를 보았다. 어머니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걸어가는 1970년대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열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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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노트를 폈다.
4회차 탑승 후 소실 목록.
현관 선반: 아버지 드리퍼 소실.
그 한 줄을 적고 펜을 놓았다. 손잡이가 휘어진 스테인리스 드리퍼가 없었다. 선반에는 내가 쓰는 머그컵과 설탕통만 있었고, 드리퍼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도 없었다. 선반의 그 자리가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나는 아침마다 저 드리퍼로 커피를 내렸다. 매일. 몇 년째. 그게 사라졌다. 아버지의 물건이 사라지는 것은 이미 세 번 경험했지만, 드리퍼는 달랐다. 구두는 신발장에 놓여 있을 뿐이었고, 사진은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지만, 드리퍼는 내가 매일 쓰던 물건이었다. 아버지의 것이지만 내 일상의 일부였던 것. 그것이 사라졌다는 건 아버지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이 내 일상의 안쪽까지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노트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비고: 소실 범위가 아버지의 소유물에서 화자의 일상으로 확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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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로 타기 전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탈 때마다 무언가가 사라진다. 구두, 사진, 기록, 기억, 드리퍼. 순서가 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물건에서 기억으로. 이대로 가면 다음에는 무엇이 사라지는가. 아버지가 나에게 이 직업을 권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도면을 보면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기억이 사라지면,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는 것인가. 아버지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소급적으로 지워지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가.
그 생각을 하면서도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주머니 속의 열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구청 창고의 열쇠함에서 내가 직접 꺼낸 것이니까. 아버지의 것이 아니니까.
아니, 틀렸다. 박정수도 같은 열쇠함에서 열쇠를 꺼냈고, 돌아오지 않았다.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 47분에 깼다. 진동이었다. 세 번째 2시 47분. 진동이 멈춘 뒤 천장에 분홍색 빛이 지나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느리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빛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빛이 나를 확인하고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여기 있는지. 여전히 올 것인지.
라디오를 켰다. 소리가 나왔다. 새벽 방송의 조용한 음악. 아버지가 늘 틀어놓던 것과 같은 주파수. 이 습관마저 사라지면 나는 밤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