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6장
다섯 번째로 셔터를 열었을 때, 통로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2분도 걸리지 않아 승강장에 도달했다. 박정수의 말대로라면 놓아준 것의 무게만큼 짧아지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놓아주고 있는 걸까. 내려놓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손을 펴는 동작까지는 같고, 그 다음이 다르다. 하지만 이 통로 안에서는 그 다음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승강장의 하늘은 여전했다. 분홍색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입자들이 떠다니고, 공기는 따뜻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시각표가 두 줄이 되어 있었다.
「2:47」
「7:47」
열차가 더 자주 오고 있었다. 내가 올수록 더 자주. 편의점이 24시간 영업하는 이유는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이 언제든 올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이 시각표에서 느껴졌지만, 나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7시 47분에 열차가 왔다. 차체의 수증기가 이전보다 짙었고, 구름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름 자체가 열차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면서 분홍빛 입자들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나도 함께 탔다.
· · ·
승객칸을 지나 운전실로 갔다. 아버지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전방을 보았다. 나는 접이식 보조석을 처음으로 펴고 앉았다. 앉으니까 시야가 달라졌다. 아버지와 같은 높이에서 같은 방향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오래된 트럭의 조수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차 조수석에 앉았던 기억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지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은 좀 멀리 가자."
열차가 출발했다. 아버지가 핸들을 돌리는 동작은 느리고 정확했다. 오래 반복한 사람의 동작이었다. 창밖이 어둠에서 풍경으로 바뀌었다. 분홍색 구름 사이로 서울의 거리가 보였는데 이전보다 훨씬 오래전의 것이었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길이 보이는 곳도 있었고, 전봇대의 형태와 간판의 서체가 교과서에서 보던 것들이었다. 열차가 곡선 구간에 들어서자 풍경이 기울었다. 선로가 보이지 않았다. 열차 아래에 레일이 없었고 대신 구름이 있었다. 분홍색 구름 위를 열차가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강 위를 건너는 배와 비슷한 감각이었는데, 배보다 부드럽고 배보다 조용했다.
"아버지."
"응."
"여기서 뭘 보세요? 운전하면서."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전방을 본 채로 핸들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구름이 두꺼운 구간을 지나는 것 같았다. 창밖이 잠시 분홍색으로 가득 찼다가 다시 맑아졌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 엄마."
지하 31미터의 승강장에서 구름 위를 달리는 열차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곳에 도착한 것 같았다.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면의 이름 목록에서 어머니의 성을 본 순간부터, 열차 맨 뒤 좌석에서 어머니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하지만 짐작은 포장지 같은 것이어서, 아버지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순간 포장지가 벗겨지고 안의 것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안의 것은 짐작보다 무거웠다.
"엄마가 여기 있는 거예요?"
"뒤에 앉아 있지."
"알아요. 봤어요."
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닮았디?"
"모르겠어요. 처음 봤으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다시 전방을 보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열차가 구름 사이를 달렸고, 창밖에 서울이 아닌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기와지붕 사이로 빨래가 널려 있고, 좁은 길을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었을 때의 장소들인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
· · ·
"네가 세 살 때였다." 아버지가 전방을 본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죽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너를 돌봐야 하는데 방법을 몰랐어. 엄마가 다 했으니까. 나는 옆에 서 있기만 하는 사람이었거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긴 말을 하는 것은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살아 있을 때도, 치매 이전에도, 한 번에 세 문장 이상을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구청에서 일할 때 도면을 정리하다가 이걸 발견했어. 4번 승강장. 너처럼. 셔터도 찾았고, 통로도 걸었고, 열차도 탔어.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타 보니까 창밖에 옛날이 보이더라. 그리고 엄마가 있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았다. 사실을 나열하는 목소리. 보일러 수리 기사에게 고장 상황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목소리에 싣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평생 그랬다.
"몇 번 탔다. 탈 때마다 엄마를 볼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한 손으로 무릎을 한 번 쓸었다. 무의미한 동작. 하지만 아버지가 긴장하거나 무언가를 견디고 있을 때 하는 동작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요양원에서도 가끔 그랬다.
"그런데 탈 때마다 집에서 엄마 것들이 사라졌어. 사진이 없어졌다. 네가 초등학교 때 가족사진 왜 없냐고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못 했어. 치운 게 아니라 사라진 거라고 어떻게 말해."
창밖에 병원이 보였다. 이전에 본 것과 같은 병원이었지만 장면이 달랐다. 겨울이었고 젊은 아버지가 혼자 병원 앞에 서 있었다.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들어가지 않고 서 있었다.
"사진이 다 없어지고, 엄마 옷도 없어지고, 너한테서도 엄마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보여서 — 그만 타야 했어. 그만 타면 더 이상 안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그만 탔어요?"
아버지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만 못 탔다."
· · ·
아버지가 계속 말했다. 운전석에 앉은 채로, 전방을 본 채로. 나는 보조석에 앉아 듣고 있었다. 우리가 나란히 앉아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열차 안이 아니면 불가능한 종류의 대화였다.
"열 번쯤 타고 나니까 집에서 엄마의 흔적이 거의 다 사라졌더라. 사진도 없고, 물건도 없고, 너도 엄마를 거의 기억 못 하게 되었고. 그런데 열차 안에는 엄마가 있었어. 맨 뒤 좌석에. 내가 탈 때마다 거기 있었어."
"그런데 왜 운전석에 앉게 된 거예요?"
아버지가 핸들 위의 자기 손을 보았다. 오래된 사람의 손이었다. 주름과 검버섯과 굳은살. 이 핸들을 30년간 잡고 있었던 손.
"탈 때마다 바깥에서 엄마가 사라지잖아. 그러면 안의 엄마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버지가 핸들에서 한 손을 떼어 무릎을 다시 한 번 쓸었다.
"나밖에 없으니까,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그런데 내 기억도 탈 때마다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어. 엄마 이름을 부르려는데 한 박자 늦게 떠오르는 거야.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때 한 남자를 만났어. 귀에 연필 꽂은 사람."
박정수였다.
"그 사람이 말해줬어. 운전석이 있다고. 운전석에 앉으면 열차가 멈추지 않는다고. 열차가 멈추지 않으면 안의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대신 운전하는 사람의 기억이 연료가 된다고."
"그래서 앉은 거예요?"
"바로는 아니었어. 일주일쯤 생각했지. 운전석에 앉으면 내 기억이 닳는다는 뜻이잖아. 너 기억도. 내 이름도. 다 잃을 수 있다는 거지."
아버지가 잠깐 멈추었다. 전방을 보는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앉았어. 엄마를 사라지게 할 수 없었으니까. 한 번 잃었는데 두 번은 못 잃어."
열차가 곡선 구간을 지나면서 창밖이 기울었다. 분홍색 구름 사이로 바닷가 마을이 보였다. 기와지붕과 돌담. 아주 젊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열여덟이나 스무 살쯤. 아버지와 어머니의 처음이었을 것이다.
"운전석에 앉고 나서는 엄마를 직접 만나지 못해. 운전실에서 나갈 수가 없거든. 나가면 열차가 멈춰. 그래서 30년 동안 창밖으로만 봤어. 엄마가 뒤에 앉아 있는 건 아는데, 가서 옆에 앉을 수가 없어."
30년. 아버지는 30년 동안 이 운전석에 앉아서 어머니를 지켜왔다. 만나지 못하면서. 옆에 앉지 못하면서. 다만 열차가 멈추지 않도록, 어머니가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의 기억을 태우면서.
아버지의 치매가 병이 아니라 연료의 소모였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나를 못 알아보는 눈,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던 두 글자 이름, 간호사에게 묻던 "아들이 있었나?" — 전부 기억이 닳아서였다. 처음에는 좋아하던 노래 제목, 자주 가던 식당 이름 같은 것부터 잃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직장 동료의 얼굴, 자신의 과거.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것이 아들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중얼거리던 두 글자는 내 이름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기억.
"아버지."
"응."
"엄마 이름이 뭐예요?"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시간이 걸렸다. 기억의 바닥을 긁어올리는 것 같았다.
"은주."
김은주. 도면에서 뭉개져 있던 두 번째 이름. 성이 '김'인 것 같았던 그 이름.
"은주." 아버지가 한 번 더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확인하듯이. 이 이름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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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전실에서 나와 승객칸을 걸어 맨 뒤로 갔다. 어머니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같은 옷. 창밖을 보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 흘러가고 있었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거기 앉았다. 어머니의 옆에 앉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억에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처음. 세 살 이후로는.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고개를 기울이지 않았다. 정면으로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이 사람의 얼굴을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진으로 본 적도 없고, 기억에도 없고,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 안의 어딘가가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세 살 이전의, 언어가 되기 전의, 기억이라고 부를 수 없는 어떤 층위에서 등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좌표보다 깊은 곳에, 좌표 없이 존재하는 것.
어머니가 손을 뻗었다. 내 손 위에 어머니의 손이 놓였다. 따뜻했다. 36.5도. 승강장의 벤치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온도였다. 이 승강장 전체에 퍼져 있던 체온이 어머니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처음으로.
"많이 컸네."
세 마디였다. 그것뿐이었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서른 년이 들어 있었다. 세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어머니가 보지 못한 모든 시간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 내 손 위에 있었고 창밖에 풍경이 흘러갔다. 바닷가 마을이 지나가고, 논이 지나가고, 서울의 오래된 거리가 지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걸었을 길들이 지나갔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면서 이 열차가 왜 행선지가 없는지를 이해했다. 도착할 곳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 열차의 행선지는 과거 그 자체였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달리는 것이 이 열차의 목적이었다.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것 자체가.
행선지 — 해당 없음. 그런 뜻이었다.
열차가 느려졌다. 창밖의 풍경이 사라지고 어둠이 왔다가, 다시 분홍색 빛이 나타났다. 승강장이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아래의 승강장.
어머니의 손이 내 손 위에서 떨어졌다. 어머니가 다시 창밖을 보았다.
문이 열렸다. 나는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었다. 운전실 방향을 한 번 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핸들을 잡고 앉아 있었다. 똑바른 자세로. 30년간 앉아 있던 자세로.
내렸다.
열차에서 내린 뒤 종로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면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전부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행선지가 있는 사람들. 나도 그중 하나였어야 하는데, 행선지가 없는 열차에서 막 내린 사람은 그 흐름에 쉽게 섞이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노트를 폈다.
5회차 탑승 후 소실 목록.
서재: 아버지 서랍 안에 제도 도구가 있었던 흔적 없음.
사진첩: 아버지가 등장하는 사진 전량 소실. 앨범에 사진이 끼워져 있었던 자국 자체가 없음.
휴대폰: 아버지 전화번호 저장 항목 소실.
펜을 놓고 휴대폰을 열었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ㅇ'까지 내렸다. 아버지. 없었다. 이전까지는 번호는 남아 있고 통화 기록만 사라졌었는데, 이번에는 번호 자체가 없어졌다. 요양원에 전화하려면 번호를 새로 검색해서 걸어야 했다. 그 사실이 묘하게 나를 흔들었다. 사진이 사라진 것보다, 관리비 명의가 바뀐 것보다, 전화번호 하나가 사라진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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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데 회사 동료인 민준이가 옆에 와서 말했다.
"야, 너 주말에 어디 갔다 왔어? 얼굴이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데."
"모르겠어. 그냥 달라."
동료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보는 방식이 이전과 미세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거울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문제였을 것이다.
오후에 도면을 정리하다가 멈추었다. 현행 종로역 지하 도면을 펼쳐놓고 있었는데, 도면 좌측 하단에 아주 연한 점선이 보였다. 처음에는 도면의 오염이나 인쇄 불량인 줄 알았다. 돋보기를 가져다 댔다. 점선이었다. 구조물의 윤곽이었다. 1971년 도면에 그려져 있던 4번 승강장의 점선과 같은 위치, 같은 형태.
현행 도면에 4번 승강장이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지우개를 가져와서 그 선 위를 문질렀다. 지워졌다. 연필 선이 아니라 인쇄된 선인데 지우개로 지워졌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어쨌든 지워졌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같은 도면을 폈다. 점선이 다시 있었다. 전날보다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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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요양원에 갔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들고 5층 동쪽 병실에 들어섰다. 아버지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산책을 나가신 건지, 검사가 있는 건지. 간호사가 차트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지금 방에 계신데요."
아버지는 침대에 있었다. 내가 들어올 때 못 본 것이 아니었다. 있었다. 다만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어서, 처음에는 빈 침대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건 처음 봤다. 요양원에서도, 집에서도, 아버지는 이불을 가슴 아래까지만 덮는 사람이었다. 무의식중의 습관이 바뀌어 있었다.
이불을 살짝 내렸다. 아버지가 눈을 뜨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는데, 보고 있다기보다는 눈이 열려 있을 뿐인 상태에 가까웠다. 내가 이불을 만져도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 저예요."
아버지의 눈이 천천히 움직여서 내 쪽을 향했다. 초점이 없었다. 열차 안에서 보던 그 선명한 눈이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보던 흐린 눈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멀어진 눈이었다. 시선이 나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나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빛의 세기가 약해져서 물체에 닿기 전에 흩어지는 것처럼.
간호사를 불러 물어봤다. "이번 주에 급격하게 안 좋아지셨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식사도 거의 못 하시고, 보행도 어려워지셨고요. 담당 의사 선생님이 면담을 원하세요."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이 차가웠다. 열차 안에서 핸들을 잡던 손과 같은 손인데 온도가 달랐다. 열차 안의 아버지는 따뜻했다. 여기의 아버지는 차가웠다. 같은 사람의 다른 온도. 한쪽에서 태우고 있으니까 다른 쪽이 식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30분간 앉아 있다가 나왔다. 요양원 로비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셨다. 맛이 없었다. 아버지의 드리퍼로 내린 커피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이미 드리퍼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드리퍼로 내린 커피의 맛을 비교 대상으로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준점이 사라진 것이다.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열차를 탈 때마다 아버지가 나빠지고 있다. 내가 타면 열차가 움직이고, 열차가 움직이면 연료가 필요하고, 연료는 운전사의 기억이다. 내가 아버지를 만나러 탈 때마다 아버지가 더 빨리 소모되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를 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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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을 멈추었다. 2주간 셔터에 가지 않았다. 열쇠는 주머니에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새벽에 진동이 와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장에 분홍색 빛이 지나갔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요양원에는 갔다. 일요일마다. 아버지의 상태는 더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나아지지도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는 일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뜬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말했다. "안정되셨어요. 급격하게 나빠지시던 게 멈추었어요."
멈추었다. 내가 타지 않으니까 연료 소모가 줄어든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 정도에서 안정되는 병의 경과인가. 확인할 방법은 여전히 없었다.
2주 동안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출근하고, 도면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고, 퇴근하고, 맥주를 마시고, 라디오를 틀고, 잤다. 정상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셔터를 열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면 나는 정상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도면이 변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확인했다. 현행 종로역 도면의 4번 승강장 점선. 지울 때마다 다음 날 더 진하게 돌아왔다. 2주 뒤에는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점선이 아니라 실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타지 않아도 승강장은 현실 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혹은, 내가 다섯 번 왕복한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두 세계 사이의 다리가 된 것이다.
다른 동료가 그 도면을 볼 가능성이 있었다. 도면 관리는 내 업무이지만, 다른 직원이 참고할 때도 있다. 누군가가 4번 승강장의 선을 보면 어떻게 되는가. 물어볼 것이다. 이게 뭐냐고. 나는 뭐라고 대답하는가.
도면을 서랍 깊숙이 넣었다. 다른 도면 밑에 깔아서 쉽게 꺼낼 수 없게 해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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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 되는 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새벽 방송의 조용한 음악. 진행자가 다음 곡을 소개하는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 소파에 앉아서, 혹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같은 주파수를 틀어놓던 아버지. 아버지가 어떤 자세로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는데, 그것이 내 기억인지 아니면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본 장면인지가 구별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떠올랐다. 맨 뒤 좌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 내 손 위에 놓인 어머니의 손. 36.5도의 온기. "많이 컸네." 그 세 마디. 다시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더.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주머니 속의 열쇠가 갑자기 의식되었다. 차가운 금속의 무게.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열쇠를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부터 주머니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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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탑승이었다.
통로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거의 달리듯이 짧았다. 승강장에 들어서자 시각표가 또 바뀌어 있었다. 세 줄이었다.
「2:47」
「4:47」
「7:17」
벤치에 앉아 기다리지 않았다. 7시 47분이 아닌 시각이었는데 열차가 와 있었다. 이미 승강장에 서 있었다. 기다릴 필요 없이.
탔다. 승객이 줄어 있었다. 빈 유모차를 잡고 있던 여자가 없었다.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유모차도 없었다. 시대가 다른 노인 부부도 없었다. 빈 좌석이 늘어 있었다.
바깥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마지막 한 명이 사라진 것인가.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승객도 소멸한다. 벤치에서 느끼던 체온의 주인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 있었다. 맨 뒤 좌석에.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어머니는 여기 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역시 소실 목록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전실로 갔다.
아버지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자세가 달랐다. 이전까지는 똑바로 앉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왼쪽 어깨가 내려가 있었고,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없어 보였다. 요양원에서 보던 아버지의 자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눈에 초점이 있었다. 아직 있었다. 하지만 전보다 흐려져 있었다. 촛불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초점이 흔들리고 있었다.
"왔냐."
"네."
"탈 거냐."
질문의 뜻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열차를 탈 거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이미 타고 있으니까. 운전석에 앉을 거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아버지, 많이 힘드세요?"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고 전방을 보았다. 한참 뒤에 말했다. "힘든 건 아니야. 그냥 잘 안 떠올라."
"뭐가요."
"여러 가지가." 아버지가 핸들 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네 이름을 부르려는데 한 박자가 걸렸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내 이름이 한 박자 늦게 떠오른다는 것.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름에 대해 했던 말과 같았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거의 다 빠져나간 것이다.
"은주는 기억나세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게. "그건 기억나."
· · ·
운전실에서 나와 승객칸으로 돌아갔다. 귀에 연필을 꽂은 남자를 찾았다. 박정수. 아직 혼자 앉아 있었다. 옆자리가 빈 채로. 나는 그 옆에 앉았다.
박정수는 전방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앉아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내가 먼저 말했다.
"아버지가 운전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셨죠."
박정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았다. 오래된 사람의 눈이었다. 1971년부터 이 열차에 있었으니까 오십 년이 넘은 사람이다. 하지만 얼굴은 60대에서 멈추어 있었다. 탑승한 시점의 나이 그대로.
"당신 아버지가 운전석에 앉겠다고 했을 때 말렸어." 박정수가 말했다. "연료가 뭔지 알면서 앉는 건 바보짓이라고. 그런데 안 듣더라."
"왜 안 들었을까요."
"나한테도 물어봤어, 당신 아버지가. 왜 운전석에 안 앉았냐고. 당신 옆에 있던 사람을 지킬 수 있는데 왜 안 앉았냐고."
박정수가 빈 옆자리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 좌석.
"나는 못 앉았어. 무서웠으니까. 기억을 잃는 게." 박정수가 말했다. "그래서 그냥 탔어. 승객으로. 아내 옆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어. 그런데 탈수록 바깥에서 아내가 지워졌고, 어느 날 열차 안에서도 아내가 사라졌어.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졌으니까."
"지금은 기억나세요? 아내분."
박정수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었다.
"이름이 기억 안 나." 박정수가 말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은 알아. 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 누구였는지를 모르겠어."
박정수가 나를 보았다.
"당신 아버지는 그게 무서웠던 거야. 자기도 나처럼 될까 봐. 그래서 운전석에 앉은 거지. 운전석에 앉으면 기억이 닳아도 열차는 멈추지 않으니까. 열차가 멈추지 않으면 안의 사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자기가 아내 이름을 잊어도 아내는 열차 안에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
"그 대가로 자기 기억을 전부 잃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러면 결국 아버지도 아내분처럼 — 의미를 모르게 되는 거 아닌가요.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본인이 모르면 지키는 게 아니지 않나요."
박정수가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아닌 것 같아." 박정수가 말했다. "기억을 잃어도 앉아 있는 건 앉아 있는 거야. 이유를 몰라도 손이 핸들 위에 있으면 열차는 달려. 당신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엄마 이름을 중얼거리는 것과 같아. 왜 그 이름을 말하는지는 모르는데 말은 해. 기억보다 깊은 데서 오는 거야. 그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았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분홍색 구름.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뭐."
"내가 운전석에 앉으면 아버지는 어떻게 돼요?"
박정수가 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쉴 수 있겠지. 기억을 태우지 않아도 되니까. 바깥의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몰라. 보장은 못 해. 하지만 더 닳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나는."
"당신 기억이 연료가 되는 거지. 당신 아버지가 겪은 걸 당신이 겪는 거야."
열차 안이 조용했다. 줄어든 승객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각자의 사람 옆에. 혹은 이미 비어 버린 옆자리를 지키면서. 열차의 진동이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느려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억이 바닥에 가까워지면 열차가 이렇게 느려지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운전실 쪽으로 걸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기울어진 어깨. 힘이 빠진 손. 30년간 앉아 있던 사람의 피로가 자세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앉아 있었다. 여전히.
운전실 문 앞에서 멈추었다.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은.
열차가 승강장에 멈추었다. 문이 열렸다. 나는 내렸다.
일곱 번째로 셔터를 열었을 때, 통로가 없었다. 셔터 너머에 바로 승강장이 있었다. 87미터의 콘크리트 통로가 사라져 있었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분홍색 하늘이었다.
승강장에 들어섰다. 시각표가 한 줄로 돌아가 있었다.
「7:47」
줄이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열차가 이미 와 있었다. 승강장에 멈추어 서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 · ·
승객칸에 들어서자 좌석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한 남자가 창가에 앉아 아이의 외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이는 없었다. 그 너머에 한 여자가 서류 가방을 한 손으로 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자기 것이 아닌 가방을 지키는 자세였다.
박정수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윤곽이 더 희미해져 있었다. 빛이 몸을 통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멈추어 섰다. 박정수가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걸렸다.
"갈 거야?" 박정수가 물었다. 목소리도 옅었다.
"네."
박정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빈 옆자리를 보았다.
"나도 이제 곧이야.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위로는 닿지 않을 것이고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한 것은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다.
"박정수 씨."
박정수가 나를 보았다. 오래 잊고 있던 것을 갑자기 들었을 때의 표정이었다. 자기 이름을 듣는 것이 오래간만인 사람의 얼굴.
"고마워." 박정수가 말했다. "이름을 불러주니까 좀 선명해지네."
· · ·
어머니가 맨 뒤 좌석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가 아주 작게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는데, 입꼬리가 올라가는 방식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닮았디? 닮았을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옆에 앉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운전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버지가 핸들에 양손을 올리고 있었지만 손에 힘이 없었다. 고개가 앞으로 숙어져 있었다. 깨어 있을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버지."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들어온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저예요."
아버지의 눈이 천천히 움직여서 내 쪽을 향했다. 초점이 잡히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잡혔다 풀렸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나에게 닿았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한 박자가 아니라 세 박자, 네 박자. 이름이 나왔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나왔다.
"교대할게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초점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 말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눈이었다. 도면에 내 이름을 적어놓은 것처럼. 이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눈.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버지가 말했다.
"왜요."
아버지가 핸들에서 손을 떼었다. 처음으로. 30년간 잡고 있던 핸들에서 손을 떼는 순간, 열차가 흔들렸다. 진동의 리듬이 흐트러졌다.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선택해서 앉은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힘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또렷했다. "너한테 물려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버지 기억이 다 닳으면 열차가 멈춰요. 엄마도 사라져요."
"알아."
"그러면 — "
"네가 앉으면 네 기억이 닳아." 아버지가 말했다. "나를 잊어. 엄마를 잊어. 왜 여기 앉아 있는지를 잊어."
열차가 더 느려졌다. 창밖의 분홍색 구름이 거의 멈추어 있었다.
"나는 됐어." 아버지가 말했다. "30년이면 충분해. 은주 옆에 — "
아버지가 멈추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방금 말하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은주요." 내가 말했다.
"은주." 아버지가 반복했다. "은주 옆에 앉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됐어."
"운전은 누가 해요."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빈 핸들을 보았다. 열차가 거의 멈추어 있었다.
· · ·
핸들에 손을 얹은 것은 결정이라기보다 반사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말리기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핸들이 따뜻했다. 30년간 잡고 있던 손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핸들을 잡자 열차가 반응했다. 진동이 돌아왔다. 느리지만 규칙적인 진동.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옅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뭐가 옅어지는 건지 바로 특정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지가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연료가 타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가 운전석에서 일어섰다. 30년 만에. 느린 동작이었다. 일어선 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입이 움직였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마라는 말도 이 상황에 맞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원래 그런 말들이 오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깐. 그리고 손을 떼고 운전실에서 나갔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가 승객칸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느린 걸음이었다. 좌석 사이를 지나, 빈 자리들을 지나, 맨 뒤쪽으로.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 옆에 앉았다. 어깨가 닿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나는 다시 전방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열차가 가는 방향으로 구름이 열렸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열차가 조금 빨라졌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또 옅어졌다. 동료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름은 기억나는데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사무실의 배치가 흐려졌다. 내 자리가 어디였는지.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라져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 사라지면 안 되는 것들을 위해서.
아버지의 이름은 아직 기억났다. 어머니의 이름도. 은주. 그것들이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유를 몰라도 손이 핸들 위에 있으면 열차는 달린다. 기억보다 깊은 곳에서 오는 것이 있다.
나는 핸들을 잡고 있었다.
열차가 구름 위를 달렸다.
그날 아침, 구청 도시계획과 사무실에서 민준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공석인 자리는 부서에 몇 개 있었다. 다만 이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모니터가 꺼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노트가 한 권 있었다. 구청 업무용 노트였다. 펼쳐보았다. 안에 목록이 적혀 있었다. 번호와 날짜와 함께 무언가의 소실 기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구두, 사진, 고지서, 드리퍼. 민준은 몇 줄을 읽다가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덮었다. 노트를 서랍에 다시 넣었다.
오후에 도면을 꺼낼 일이 있었다. 종로역 지하 도면 좌측 하단에 구조물 표기가 있었다. 실선이었다.
「종로역 4번 승강장」. 민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종로역에 4번 승강장은 없다. 도면 오류인 것 같아서 담당자에게 물어보려다가, 담당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도면을 관리하던 사람이 있었을 텐데.
도면을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퇴근 시간에 종로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안내 방송이 울렸다. 민준은 벽에 기대어 서서 시각표를 보고 있었다.
시각표 아래,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벽면에 뭔가가 보였다. 고개를 숙였다. 타일 줄눈 사이에 아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연필로 쓴 것 같았다.
민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열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민준은 타지 않았다. 서 있었다. 글씨를 보면서.
다음 열차가 와도 타지 않았다.
승강장이 한산해졌다. 안내 방송이 종전을 알렸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승강장 서쪽 끝, 비상구 안내판 뒤편에 회색 방화셔터가 있었다. 먼지가 쌓인 벽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종류의 벽.
민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