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깨달은 행복의 진리
2020.05.08
지이이잉- 끈질긴 알람이 나를 꿈에서 끄집어낸다.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알람을 끄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는다. 침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다리에 눈을 감고 기도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는다. 자꾸만 잠 속으로 빠져드는 의식을 도리도리로 물리쳐보지만 역부족이다.
살랑살랑 봄바람 불어오는 요즘, 날씨를 제외하고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출근부터 퇴근, 잠들기 전까지의 순간들이 어제, 그저께의 것들이 반복 재생된다. 달라진 건 회사에 입고 간 옷과, 팀원들과 나눈 이야기 소재 정도. 상상 속의 봄날은 항상 역동적인 찰나였는데, 실제로는 너무 길고 조용하다.
길고 조용한 시간들은 칠흑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기회를 준다. 삼십 대를 코앞에 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이맘때쯤의 나는 명예와 사랑, 부 등 내가 원하는 것 모두 쟁취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무수한 욕심의 대상 중에 내가 온전히 소유한 것이 있을까 거울에 비춰본다. 인생 베프라고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고, 회사의 월급은 여전히 내 월소비를 발끝만큼도 따라오지 못한다. 회사 성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신기루와 같다. 그만큼이나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열정도 이와 비례해 점점 작아져만 간다. 어릴 적 상상했던, 그 어떤 축제와도 같았던 이십 대 후반의 모습은 언제쯤 찾아볼 수 있을까.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의 목소리에 번뜩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그새 10분이 지났다. 입을 옷이라도 미리 정해두어서 다행이라고 느끼며 서둘러 씻고 나와 옷을 걸친다. 옷을 입고 거실로 나오니 엄마는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며 밥과 국, 한눈에 봐도 여섯 가지가 넘는 반찬까지 준비해뒀다. 밥과 시계를 번갈아보며 먹는 둥 마는 둥 절반 이상 남기고 칫솔질을 한다.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역까지 태워줄게”라며 겉옷을 걸친다.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아침 풍경이다. 아침잠이 많아 늘 기도 자세로 10분을 허비하는 나는 회사 지각을 모면하기 위해 엄마 혹은 아빠의 차를 자주 얻어 타고 역으로 향했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서 버스 타고 가야지’ 결심하지만, 매일 아침 기도시간은 계속됐다. 이럴 때마다 미안함이라는 베이스에 이름 모를 여럿 감정들이 뒤섞인 느낌을 자주 마주한다. 이 감정에 대한 이유를 콕 집어 말하기 애매하지만, 단순히 늦잠으로 부모님이 고생하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릴 적과 달라진 것 없는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일까.
어버이날인 오늘, 뒤섞인 감정은 더욱 거세게 일어난다. 태어난 순간부터 29년간 사랑과 혜택을 최대치로 받아왔는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난 받는 사람이라니. 아침부터 부모님이 주시는 혜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걸 아직까지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받는 곳에서 주는 곳으로 위치 옮기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니, 그전에 적어도 뭐든지 혼자 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며 집을 나선다.
그렇게 정시에 출근을 해 오전 근무를 무사히 마쳤다. 식당에서 팀원들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점심 식사를 했고, 30분이나 남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앞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잠시 눈을 감고 날씨를 오감으로 즐겼다. 그리고 오후 근무를 하다 자꾸 몰려오는 졸음에 향긋한 커피를 홀짝 마신다. 할 일을 제시간에 끝내고 6시 10분 퇴근을 했다. 발걸음이 가볍다. 오랜만에 역 근처 쇼핑몰에 들러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하나 샀고, 지하철에 앉아 원피스가 어떤 귀걸이와 잘 어울릴까 즐거운 고민을 했다. 다시 엄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준비한 용돈 봉투를 부모님께 드렸다. 샤워를 하고 보송한 상태로 누웠다. 바스락 거리는 이불의 촉감. 아, 행복하다.
음? 뭔가 이상하다.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것들을 그렇게 갈망했는데, 내 하루는 행복하다. 사실 누구보다 가득 찬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진짜 내가 필요한 것 중 가지지 못한 게 있을까? 하루의 행복, 일상의 기쁨을 누리기에 부족한 것이 있나? 다시 나를 거울에 비춰본다.
사랑과 명예, 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회사에서 팀장님의 예쁨과 인정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또 많지 않지만 퇴근 후 쇼핑을 즐기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돈이 다달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난 행복하다. 사실 늘 가득 찬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발전하되, 부족한 점을 나열하며 스스로 작게 만들지 말자. 난 지금도 충분히 가득찬 삶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진짜 10분 일찍 일어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