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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을 Feb 03. 2021

현생은 지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02.17


2년 전쯤 현생 지옥설을 외치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27년 삶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아니 29살 현재 기준으로 봐도 가장 힘들었던 나날이라고 확신한다. 회사생활부터 연애, 건강, 인간관계까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 건너 하루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원망과 자책, 분노 그리고 자기 연민의 감정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나를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쳇바퀴를 빠져나오자 되뇌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몸은 무기력했다. 집에 오면 멍을 때리며 부정적인 생각 회로를 돌리고, 또 그 생각에 지쳐 간신히 씻고는 누워 천장만 보고 있었다. 천장이 쏟아질 듯 내려왔다. 숨이 막혔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생 지옥론’을 전파한 당사자다.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고, 기쁜 일 뒤엔 슬픈 일이 뒤따른다.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 초월적 존재가 1:1 맞춤으로 인간들을 고문하는 게 틀림없다. 이 세상에 동화 속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인생 지옥론’을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 일 없는 척 살아갈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사실’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견해’는 엄연히 별개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끊임없이 원망하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 나는 후자가 되기를 택했다. 어설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밝고 강한 힘을 심어주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가까이하고, 책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힘을 얻었다.


그 이후, 나는 자꾸 나를 무기력으로 밀어 넣는 회사를 그만뒀고 힘들게 만들던 이와 이별했다. 요가 연간 이용권을 등록했고,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친구와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고, 힘을 얻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고, 책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실컷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간 덕분에, 나는 지금 내가 원하던 회사에서 일하고 건강하게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물론 나름의 불행과 행복이 번갈아가며 찾아온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2년 전의 나보다 질적으로 성장했다. 그때의 나는 큰 불행 스테이크에 작은 행복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이는 식사를 주로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불행 전에 맛있는 행복을 끊임없이 먹는다. 일상 속에 작은 행복들을 찾아 느끼면서 무기력함에 대응하는 힘이 생겼다.


물론, 가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이 빠지고 신세 한탄을 늘어놓을 때가 있다. 이 시기가 앞으로도 내 인생에 종종 찾아올 것이란 것을 안다. 쓰러질 때도 있고, 무너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키워 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힘을 내고, 다시 웃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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