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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상아 Apr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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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을 때는 이 시간 즈음 되면 내 등 뒤에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엄마를 애써 무시하고 이렇게 종종 타자를 두들긴 적이 많다. 혹여나 엄마가 깨어 욕지꺼리를 내뱉을 까봐 마음 졸이며 말이다. 그 “이 시간”이란 시간은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엄마는 본인 방이 있는데도 늘 마루에서 잤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장녀니까. 네가 곧 이 집의 책임자이니까. 엄마의 말은 마치 내가 빨리 커서 돈을 벌어서 이 집을 책임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주 듣기 싫은 부담스런 말이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마는 잠자리를 놔두고 마루에서 마치 이방인처럼 늘 마루에서 잤다. 본인의 공간을 포기하고. 그 차고 시려운 마루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여하튼 그렇게 마루에서 자는 엄마와 마루에 놓인 컴퓨터 본체소리의 끊임없는 눈치싸움을 벌이면서 나는 그 새벽에 무엇을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일까.


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마 음악을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용량이 부족한 엠피쓰리에 넣기엔 부족한 내 컴퓨터에 들어있던 음악들. 그 음악들을 들으며 조용히 시간을 세던 어릴 적 내가 문득 생각난다. 그 때의 공기는 적당히 선선했다. 맨발로 나간 뒷 베란다에서 조용히 담배를 태우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인터넷을 했었다. 나와 살고 있는 세대가 다르다고 말하는 여익이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세대는 음악이 소중하지 않은 세대라고.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다운로드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가진 엠피쓰리는 당시 너무 고물이라 30곡도 채 들어가지 않아서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면 컴퓨터를 켰어야 했다. 듣고 싶은 노래를 일단 죄다 재생 목록에 긁어 넣고 30곡을 어떤 노래로 넣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 노래를 넣지 않았다가 내일 듣고 싶으면 어쩌지. 하면서. 나의 세대는 음악을 갖기엔 쉬운 세대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음악은 욕심이였다. 모두 휴대할 수 없으니까. 학교 주변에 핀 벚꽃 길을 걸으며 들어야 하는 이 노래를 엠피쓰리에 넣으면 학교 스탠드에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저 노래를 포기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포기 한다는 것은 말이다.


다시 되돌아가서, 밤에 듣고 싶은 노래가 문득 생각나서 엄마 몰래 컴퓨터를 켰다. 노래만 얼른 넣고 컴퓨터를 끄면 되는데 또 그게 되느냔 말이다. 컴퓨터를 키면 인터넷을 켜고 검색을 했다. 더 좋은 노래, 더 좋은 노래, 더 좋은 글, 더 좋은 사진, 사진, 사진, 글, 글, 글, 하면서. 마우스는 계속 딸깍딸깍 거리고 키보드는 계속 오독오독거린다. 엄마가 깰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더해져 어두운 밤 인터넷은 더더욱 재미를 더해간다. 그러다가 정말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그 날은 기냥 끝나는 거다. 날이 새도록 듣고 또 듣는다. 그럼 새벽 두시 즈음에 담배를 몰래 태우고 다시 자리에 앉아 그때, 그때 생각나는 글을 쓴다. 그 글은 꽤나 간지나니까 싸이월드에 올린다. 처음에 공개로 올렸다가 곧 비공개로 바꾼다. 아아- 내가 청소년 시절 그 짓만 안했어도 키는 더 자랐을 수도 있겠다. 그 때 공기가 너무 맛있었다. 그 새벽의 공기. 달큰한 맛의 새벽 여름 공기. 도저히 잠 들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름을 좋아 했다. 여름의 새벽. 낮 내내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식는 그 여름의 새벽. 그 때 우리 집은 반 지하였다. 땅에 파 묻혀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온전한 여름새벽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엄마는 이 땅에 묻혀 죽고 싶은 심정으로 고른 집이였는데 나는 그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계절들의 온전한 땅 냄새를 직접적으로 맡을수 있었으니 말이다. 집이라는 건 그 정도만 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반지하에서 살든 옥탑방에서 살든 종이박스하나 두르고 살든. 내가 좋으면 그 정도로 된 것이다. 반듯한 네모의 튼튼하고 대리석바닥의 정원 딸린 옛 부산에서의 집보다 경기도 외곽의 낡은 반 지하 집이 나는 더 좋았다. 손을 올려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낡은 주택 주변의 낡은 식물들. 그리고 바퀴벌레. 지네. 돈벌레까지. 그 반 지하 집의 매력을 더하는 것 들이였다. 비록 우리엄마는 넌덜머리나도록 싫어했지만.

 

나는 또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나는 또 어떤 형태의 사람으로 살게 될까. 주머니의 오백원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 그립기도 하지만 내가 조금만 뚝딱뚝딱 하면 생기는 오만원으로 내가 좋아하는 여익이랑 같이 밥 먹고 영화한편 보는 지금도 썩 괜찮다.


삼십 곡 한정이던 내 엠피쓰리를 여지껏 간직하지만 더 이상 그 엠피쓰리로 노래를 듣지 않고 아이폰으로 노래를 듣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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