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s noodle in Hong Kong, 2024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모두 밖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세 끼 모두 외식을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배달음식이나 밖에서 사 먹는 식사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홍콩은 이런 분위기가 일찍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홍콩의 문화는 관광객들도 한번씩 방문해 보는 차찬탱 식당에서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중국 본토나 대만에서도 이렇게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다지만, 홍콩은 특히 엄청난 토지 가격 때문에 왠만한 가정집 내부에 번듯한 조리공간을 갖추기가 어렵다고 한다. 집에서 조리를 할 수 없으니 당연히 밖에서 사 먹게 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밖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맛있는 메뉴라도 매번 같은 것을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고, 가격도 생각해야 한다. 호화로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매번 다른 메뉴를 주문해서 먹는다면 좋겠지만, 그러다가는 지갑이 버텨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집 밥' 같은, 또는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식당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외식' 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단순히 본인의 주거지역 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개념으로서의 외식이라면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고대 한나라 시절의 고서인 '염철론'에 따르면, 주나라 시절에는 시장에서 요리 재료인 말린 고기, 생선, 소금 등을 팔았으나 현대(한나라 시대)에는 조리한 음식을 판매하는 가게나 노점이 많아졌다고 쓰고 있다. 현대 중식당에서 큰 접시에 요리를 내 와 덜어 먹도록 한 것과 다르게 1인용 한 상을 차려주었다고 하며, 메뉴는 구운 돼지고기, 달걀과 부추, 졸인 개고기, 국에 넣어 끓인 말고기 등 다양했다고 한다.
사실 '염철론' 자체가 소금과 철의 생산에 대하여 국가가 통제하고 전매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논한 책이라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소금과 철만 생산해서는 사람이 먹고 살 수가 없고, 이를 교환 또는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되어야만 소금이나 철을 생산하는 사람이 이에 전념할 수 있다. 즉 그만큼 한나라 대에 상공업이 발달했다는 의미인데, 이 시기 상당한 수의 노동자들은 집 앞의 땅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처럼 소금이나 철의 생산지로 출근하여 일하다가 일터 근처에서 점심 또는 저녁을 해결해야 힜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수요가 외식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메뉴가 발달하게 된 이유도 현대와 같지 않을까. 어차피 밖에서 일상 식사를 해야 한다면 매일같이 구운 돼지고기만 먹기 싫은 것은 현대인이나 고대인이나 비슷했을 것이다. 현대 중국의 차찬탱 식당이 정말 무엇이든 한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또 우리나라의 한식 뷔페 같은 곳들도 그렇듯 고대 한나라의 식당들도 다양한 메뉴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간단하고 든든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메뉴 중 하나는 아마 국수, 그 중에서도 홍콩이라면 완탕면일 것이다. 물론 마카오 뿐 아니라 광동성에서 이 완탕면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홍콩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이다.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지만,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되는 식당들이 나올 만큼 맛의 깊이 또한 깊은 음식이다.
완탕면으로 유명한 식당들이 여러 곳 있지만, 그 중 유명 가게인 막스 누들을 늦은 시간에 방문했다. 막스 누들은 본점이 홍콩 섬 센트럴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있다. 이 곳이 가장 유명해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이 곳 이외에도 홍콩에 약 11개, 태국이나 광저우에도 지점을 가지고 있을 만큼 대규모의 체인이다. 완탕면이라는 상대적으로 소박한 음식으로 국제무대에 진출한 셈이다.
사실 한번 정도는 먹어보고 싶다 생각한 음식이기는 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고 있었다가, 침사추이 인근에서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너무 부담스러운 요리보다는 좀 더 간단한 식사가 무엇이 있을까 구글 맵을 뒤져보고 있었는데, 마침 눈에 익은 식당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청킹멘션 근처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소 늦은 시간임에도 야식가게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청킹멘션도 그렇고, 중경삼림이 생각날 수 있지만 야식가게가 너무 밝고 화려해서 그런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막스 누들이 나온다. 다행히 안에는 빈 자리가 제법 있어 기다림 없이 앉을 수 있었다.
대규모 체인을 갖추고 있는 식당답게, 식당 내부도 전반적으로 깔끔한 녹색 톤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고, 종업원들도 모두 유니폼과 위생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만, 홍콩에서도 역사 깊은 노포들의 경우 위생이나 시설의 쾌적함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아주 깔끔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식사하기에 불편하다 정도의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아쉽게도, 시간이 늦어서 그랬는지 (21:40분), 가장 기본 메뉴인 시그니처 완탕면만 주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완탕면 두 그릇과 채소볶음 하나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보면, 완탕은 구름 운자를 쓰고 있는데, 완탕이라는 말이 '구름을 삼키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 국물 속에 둥둥 떠 있는 완탕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같은 모습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완탕의 생김새를 보면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만두'와 대단히 유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만두와 완탕은 제법 차이가 있는 음식이다. 무엇보다, 막스 누들의 메뉴판을 보면 '수교'와 '완탕'을 각각 적어놓고 있다. 즉, 메뉴판에 물만두와 완탕을 각각 구분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물만두를 수교라고 적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길쭉한, 또는 반달 모양의 '만두'는 중국에서는 보통 교자라고 부른다. 물론 중국에서도 '만터우'가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라기보다는 찐빵에 가깝다. 그래서 '교자' 와 '완탕'을 비교하는 것이 완탕을 묘사하기에 더 적합할 것 같다.
아무튼 물만두처럼 생기긴 했지만 이 완탕은 만드는 방법부터 차이가 있다. 보통 완탕은 사다리꼴 형태의 피를 써서 만들지만, 교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둥근 형태의 피를 쓴다. 또, 먹는 방법도 차이가 있는데 물만두는 물에 삶아 간장 찍어 먹지만, 완탕은 이 완탕면처럼 육수를 내어 같이 먹는데, 보통 육수는 어패류를 쓴다.
완탕과 교자가 차이를 가지는 이유를 조금 더 깊이 찾아 보면, '완탕'은 고대 훈족, 우리에게 흉노로 알려진 북방민족의 음식인 '훈툰'이 남하하면서 생겨난 음식이라 교자와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 훈툰을 광동어로 읽은 것이 바로 완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원나라 대의 기록을 살펴 보면, '훈툰'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데 이 기록은 우리가 지금 보는 완탕과 다르다. 오히려 교자를 만드는 방법과 같다.
원대의 기록에는 '훈툰'을 만들 때, 밀가루 한 근에 소금 반 량을 타 반죽을 만든다. 그런 다음 중간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반죽의 가장자리를 둥글고 얇게 민 다음, 소를 채우고 익혀 먹는다고 적고 있다. 이는 현대의 완탕보다는 물만두, 즉 수교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완탕의 경우 소금 대신 간수를 쓰거니와, 사다리꼴 형태의 피를 쓰기 때문이다.
완탕이 훈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순히 '수교', 즉 물만두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 또한 그럴듯하다. 원나라 대에는 물만두, 교자와 훈툰이 특별히 구별되지 않았다가, 더 나중에 완탕이 갈라져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혹은, 애초에 피에 속을 싸 먹는 음식 자체가 그렇게 독창적이지는 않은 만큼, 북방에서도 비슷한 음식이 나오고 다른 지방에서도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참고로, 가장 오래된 교자 화석은 수나라 혹은 당나라 대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훈 족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게다가, 북방 훈툰이 완탕의 원형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완탕은 분명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보통 완탕 안에 새우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애초에 북방에서 새우를 구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어차피 넣어 먹는 재료도 변한 마당이니, 그 유래가 북방의 훈툰이라도 광동 혹은 남방의 스타일로 변화한 음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완탕면은 양이 적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많이 배가 고플 때 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늦은 시간이라 오히려 적당한 양이었다. 네 개의 기본 완탕과 에그 누들 면이 들어 있다. 이 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이 면은 에그 누들이라고 해서 물 대신 달걀을 활용하여 반죽한 면이다. 특히 홍콩에서는 계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오리알을 쓰거나 두 가지를 섞어서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이 면을 반죽하기 위해 사람이 대나무 봉 위에 올라타고 몸무게를 이용해 반죽하는 죽승면이 유명하다고 한다.
막스 누들의 완탕은 먹을 때는 그 진가를 느끼지 못하다가, 이후 다른 곳에서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는 완탕을 먹었을 때 확실히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맛이 조금 떨어지는 완탕은 특히 피가 다소 두꺼워 입 안에서 새우의 맛 보다는 피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막스 누들이나 이후 다른 홍콩과 마카오의 유명 가게에서 완탕을 먹었을 때는 대부분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머릿속에 각인된 반면, 피는 어땠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는데 나중에 다른 곳에서 먹으니 새우보다는 피가 씹히는 느낌이 강해서 다소 아쉬웠다.
육수는 색이 진해 보이는데, 보통 말린 가자미를 비롯해 각종 건어물과 닭 육수를 활용하여 낸다고 한다. 처음 나왔을 때는 말린 갑각류의 향이 상당히 강하게 올라온다. 흔히 중국 본토의 탕면 하면 생각나는 우육면과 같은 향신료의 향이 아니라 좀 더 친숙한 향이라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오히려 호불호가 갈린다는 면발이 관건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면이 정말 입맛에 맞는 편이었다. 마치 덜 익은 것 같이 꼬들거리고 찰기가 없는 면인데,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런 면에 익숙할 가능성이 높다. 하카타 돈코츠 라멘을 하는 가게에 가면 면의 삶기 정도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딱딱'하다고 표현하는 면을 주문하면 대략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장점은 면이 붙지 않고 불지 않으며, 살짝 오독오독 하다고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정도의 식감이다.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굴 소스를 곁들인 제철 야채 볶음. 완탕면은 갑각류의 맛이 느껴지는 진한 국물과, 새우가 들어 있는 완탕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으면서도 곁들일 야채를 찾고 싶을 수 있는데, 이 때 같이 곁들이면 좋을 듯 싶다. 굴소스야 우리가 아는 그 맛이고, 이런 채소 볶음은 살짝 데친 다음 빠르게 볶아 낸다는데 푹 물러버리지 않았으면서도 또 아삭한 식감은 없어 그 데침의 정도가 절묘하다. 우리도 사실 나물을 할 때 짧은 데침 시간에 따라 곤죽이 되어버리거나 나물이 다시 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 채소도 그 맛있는 타이밍을 잘 맞춘 느낌이다.
완탕면을 한 번 먹어보긴 해야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미루어 두었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늦은 시간이나마 방문해서 먹어 보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면의 독특함. 개인적으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돈코츠 라멘의 딱딱한 면을 좋아하는데, 그런 식감을 극대화하여 꼬들꼬들하고 찰기 없는 면의 느낌을 잘 맛볼 수 있었다. 감칠맛 강한 진한 육수와 함께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맛인데, 우리나라 어디에 가면 이 맛을 느낄 수 있을지 열심히 찾아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