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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Jun 08. 2024

낭만적인 프라하의 햄버거, 맛있는.

Nase maso in Prague, 2023

나의 유럽 미식 여행기의 두 번째 장소는 낭만적인 도시 프라하입니다.

'프라하의 연인' 이라는 옛날 드라마도 있을 만큼 친숙한 도시인데요, 프라하 성을 비롯하여 중세 또는 근대 유럽 도시의 모습이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어 야경이 특히 유명한 도시입니다. 프라하 성을 비롯한 프라하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요.


오래 된 올드카를 타고 돌아보는 프라하의 야경

제 개인적으로도 이 동유럽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을 꼽는다면, 프라하에서의 올드카 투어를 꼽고 싶습니다. 프라하 구시가지와 프라하 성 일대를 오픈 형태의 오래된 올드카를 타고 돌아보는 투어입니다. 여름에 해가 늦게 지는 프라하라서 9시부터 한시간 정도 투어를 돌았는데요,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실 것 같은데, 정말 그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 올드카를 타고 중세 또는 근대 유럽 도시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잊혀지지 않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올드카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좋고, 그냥 야간에 구시가지를 걸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구시가지는 워낙 야경이 유명하다보니 10시가 넘은 시각에도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구시가지에서는 특별히 치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으슥한 골목이나 외곽은 당연히 피해야겠죠.)


사실 이 멋진 도시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같은 동부 유럽이라고 해도,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며 도시가 대부분 파괴되어 프라하와 같이 중세 / 근대의 모습을 보존하지 못했는데요. 체코는 나치의 침공 당시 빠르게 항복했기 때문에 별다른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 1000년 가까운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들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래저래 많은 비난을 받은 결정이었으나, 결국 프라하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꼴레뇨와 비슷한, 비엔나 슈바이처하우스의 슈텔제 / 프라하의 굴뚝빵, 뜨르들로

멋진 풍경과 야경이 유명한 도시 프라하. 프라하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시나요.

프라하 여행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아마 굴뚝빵으로 유명한 뜨르들로와 꼴레뇨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꼴레뇨를 먹어보지 못했는데요, 대신이라기엔 애매하지만 비엔나에서 유사한 음식인 슈텔제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 뿐 아니라 체코는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은 국가입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체코는 모든 면이 육지 국경으로 둘러싸인 내륙국입니다. 그리고 산지와 분지로 이루어진 국토를 가지고 있구요. 그래서 음식도 육류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꼴레뇨 또한 돼지고기 요리구요. 또 유명한 비프 타르타르도 고기 요리죠. 해산물을 찾아보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 중 저희가 찾은 곳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햄버거 가게, 나세마소(Nase maso) 입니다. 구 시가지의 북쪽, 들로우하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육점을 겸하고 있는 가게로, 햄버거 말고도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가게임에도, 저희가 방문한 시간대가 애매해서 그런지 한국인은 한 팀밖에 볼 수 없었고 대기하는 분들은 대부분 젊은 외국 관광객 또는 로컬 고객들로 보였습니다.


나세마소 내부

내부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안쪽에서는 각종 고기를 정형하고 있습니다. 로컬 고객들은 고기를 사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햄버거 가게라기보다는 정육점 느낌이 강하죠. 가게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위생 상태도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햄버거는 워낙 잘 나가서 그런지 저렇게 패티를 대량으로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고기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기할 만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밖에 긴 스탠딩 바 형태로 자리를 만들어 두었는데요, 거기서 기다리다 보면 음식을 가져다 줍니다. 가게 안에 자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아 앉아서 먹기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햄버거 자체는 먹는 시간이 짧으니 자리의 회전율 자체는 좋은 편입니다.


주문은 이렇게 키오스크로 할 수 있어요. 대부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버거를 주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버거는 총 네 종류인데, 고기가 생고기냐 숙성 고기냐, 그냥 햄버거냐 치즈버거냐로 나누어집니다. 저희는 기본 햄버거와 숙성 치즈버거, 그리고 논란(?)의 체코 콜라를 두 병 주문했습니다. 로컬 콜라는 우리나라 블로그 등의 후기에서는 상당히 불호가 높은 음료였죠. 체코는 워낙 맥주가 유명하니 사실 맥주를 선택하시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콜라는 딱 김 빠진 콜라 느낌이거든요. 버거 가격은 사실 저렴하지 않습니다. 기본 햄버거는 255코루나로 만 오천원 정도 합니다. 파이브가이즈 버거 정도 가격이라고 보시면 대략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햄버거가 나왔습니다. 단면을 보면 정말 고기가 두툼하게, 크게 들어가 있습니다. 햄버거 구성 자체는 상당히 단촐합니다. 큼지막하게 들어간 패티와, 예의상 들어간 수준의 오이 피클과 약간의 야채, 그리고 빵. 이 버거는 누가 봐도 고기가 주연입니다. 빵 두께보다 고기 두께가 더 두꺼운 정도니까요. 


커팅된 부분을 보면, 갈아놓은 지 오래 되거나 보관을 잘못해 퍽퍽하거나 메말라 바스라지는 느낌이 아니라 약간의 점성이 느껴질 만큼 좋아 보입니다. 또, 잘 구워진 고기 향이 강하게 납니다. 상대적으로 빵은 조금 평범한 느낌을 주는데요, 빵이 별로 맛이 없다기보다는 그만큼 고기의 존재감이 강력합니다. 감자튀김 등을 별도로 주문하지 않아 양이 어느정도일지 감을 못 잡았는데,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될 양입니다.


사실 처음 나온 것을 보고 살짝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야채가 많이 들어가 퍽퍽하지 않은 버거, 소위 빵집 햄버거를 좋아하거든요. 야채는 사실 별로 없고 두툼한 고기가 속재료의 대부분인지라 퍽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패스트푸드 햄버거에 비해 소스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입 먹어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사실 이 햄버거는 고기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햄버거를 먹었을 때 '빵' 보다는 '고기'를 먹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고기에 빵과 약간의 야채를 곁들여 먹는다고 해야 할까요. 코 끝에 감도는 향도 잘 구워진 소고기의 육향입니다. 그리고 고기에서 배어나오는 육즙도 충분합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름진 소고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지방의 맛보다는 살코기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눈을 감고 이 햄버거를 다시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군침 돌게 만드는 고소한 고기의 향, 그리고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에 퍼지는 향과 육즙입니다. 마블링이 좋은 한우를 한 점 먹었을 때는 불을 만난 지방의 고소하면서도 기름진 맛이 입 안을 감싸는데, 그 맛과는 다른 맛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유명 수제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을 일이 있었습니다. 아보카도, 치즈 등 나세마소의 버거보다 훨씬 다채롭게 속을 채운 버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훨씬 완성도 높은 균형잡힌 버거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나세마소의 버거가 더 인상에 남았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패티의 온도감이었는데요, 나세마소의 버거는 갓 나왔을 때 패티에 따스함이 느껴졌고, 식은 고기가 아닌 따뜻한 고기를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육향과 육즙이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면, 최근 먹었던 버거는 여러 재료를 넣느라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인지, 나온 시점에 패티가 약간 미지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먹다 보니 점차 차가워졌구요. 아무리 육즙을 풍부하게 품고 있는 질 좋은 고기여도 차가워지면 맛이 반감되는데, 같이 들어간 재료들이 따스하게 내기 어려운 재료들이 좀 있어서 그랬는지, 혹은 어쩌다가 저희가 방문한 날 조리상의 실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 맛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나세마소의 햄버거가 새삼 다시 생각납니다.

정크푸드라는 이야기도 있고, 영양학적으로 보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모두 어우러진 완전식품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나세마소의 햄버거는 그런 점에서 보면 단백질의 비중이 매우 높은 버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단순한 버거라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질 좋은 고기를 맛있게 구워 그 자리에서 바로 제공함으로써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정육 식당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단순한 방법을 통해 충분히 맛을 낸 햄버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프라하의 뜨르들로, 그리고 프라하의 유이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인 La degustnation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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