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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Oct 27. 2024

베이징의 인사동, 난뤄구샹

이 날, 여행 일정이 여러모로 애매해진 터라, 늦은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은 다음 호텔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이징의 더위는 상상 이상이었던지라, 한낮에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저희처럼 7월, 8월에 베이징을 방문할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정말 마음 단단히 먹고 가장 시원한 옷을 챙기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에어컨이 쌩쌩 나오는 호텔에서 씻고, 옷도 갈아입고, 조금 기운을 차린 다음 남라고항, 난뤄구샹으로 향했습니다. 여행 기간에는 대부분 디디추싱을 이용했는데, 아주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일반 택시는 딱 두 번 이용했는데, 한번은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때로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다른 한 번은 이화원에서 왕푸징으로 이동할 때였는데요. 바가지 요금은 물론이고 중간에 내리라고 하는 등 정말 문제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호텔 측과 이야기해 보니, 허가받지 않은 택시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베이징에서는 디디추싱을 이용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난뤄구샹은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입니다. 베이징은 후통이라는 골목길이 유명한데요, 사합원이라는 전통 가옥의 형태로 인해 생겨난 긴 골목입니다. 사합원은 집을 네 개의 담으로 둘러 싸고, 담장 안에 마당과 주택이 있는 구조입니다. 외부로부터 폐쇄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담과 담들이 맞닿아 긴 골목을 형성하는 식입니다.


베이징에 위치한 수 많은 후통 중 유독 난뤄구샹이 유명해지게 된 이유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난뤄구샹 내에 위치한 유명한 연기학교인 중앙희극학원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중앙희극학원은 중국의 3대 연기학교로 불리는데요, 이 연기학교로 인해 젊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이 후통 골목에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카페나 식당들이 생기고, 이들이 또 베이징 내의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식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중앙희극학원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배우인 공리나 장쯔이, 탕웨이 같은 배우들의 출신 학교로 유명합니다.


긴 후통은 도보로 왕복하기에도 어렵지 않은 거리입니다. 고궁박물원 쪽, 난뤄구샹 역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쭉 올라간 다음, 난뤄구샹이 끝나는 골목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쭉 직진하면 종루와 고루를 만날 수 있고, 종루와 고루를 거치면 유명한 스치하이, 십찰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모두 도보 이동이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습니다. 다만 날씨가 문제였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인사동에 가면 사실 특별히 신기할 것은 없지만 외국인들은 흥미롭게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왜 외국인들이 인사동에서 소소한 소품이나 먹거리들을 관심있게 보는지 알 수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오리들이 걸려 있습니다.



난뤄구샹 거리는 중간중간 양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차량이 지나가지 못하는 골목입니다. 사람이 제법 많기는 하지만 길이 일직선이기도 하고, 사회주의 국가 답게 공안이 요소요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혼잡하다거나 사람이 많아 밀려나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구걸할 때도 QR코드를 사용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난뤄구샹에서 정말 QR코드를 사용하는 걸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공안이 워낙 많아서 노골적으로 구걸하지는 못하고, 길 옆에 서서 QR코드를 들고 있는 정도입니다.


난뤄구샹은 지네 후통이라고도 불리는데, 양 옆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골목들이 마치 지네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입구에서 보는 모습과 다르게, 건물 안쪽으로는 제법 깊은 공간이 있습니다. 

왕푸징 거리에서도 이런 식의 가게들을 볼 수 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속으로 깊고 크게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미슐랭 인증을 받은 두즙을 병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두유와 달리, 발효된 콩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향입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따뜻하게 팔고 있습니다.


바로 앞 글에서 썼던 팡좡창 69호 짜장면집. 난뤄구샹에도 있는데요, 첸먼에 있는 곳보다 규모가 더 크고 사람도 많습니다. 사진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이징에서는 유명한 관광지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국내 여행을 상당히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가장 선호하는 국내여행지가 베이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식당을 위주로 사진을 찍기는 했습니다만, 난뤄구샹에서는 식당 외에도 다양한 가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치파오를 파는 가게도 있어서 기념으로 하나 구매하기도 했는데요, 약 2만원부터 10만원까지 가격대에 따라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전통적인 치파오라기 보다는 개화기 시대의 양장과 결합한 치파오의 느낌이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더 세련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현지인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한편, 베이징에서 굉장히 유명한 밀크티인 헤이티도 난뤄구샹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날 헤이티만 두 번 먹었는데요, 첸먼에서는 제법 기다려야 했지만 난뤄구샹에서는 금방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가게들도 있고, 육포, 각종 사탕을 파는 화이트래빗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인형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는데, 예쁜 토끼 인형이 있어서 기념으로 하나 사기도 했습니다. 



난뤄구샹의 북쪽 끝에는 이러한 또 다른 거리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종루와 고루를 향해 가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이 거리가 일반적인 베이징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각종 가게들을 볼 수 있었고, 또 저녁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인지 길거리에 테이블을 놓고 식사를 하는 현지인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베이징의 명물인 종루와 고루입니다. 붉은 것이 고루, 회색 벽돌로 된 것이 종루입니다. 각각 북과 종으로 시간을 알리던 건물입니다. 생각보다 제법 오래 된 건물들로, 현대 베이징의 모습을 갖춘 영락제 시기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밤에는 북을, 낮에는 종을 쳐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종루와 고루는 가운데 광장을 두고 서로 맞닿아 있는데요, 광장에서는 말로만 듣던 현지인들의 광장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음악을 틀어 놓고 마치 체조처럼 운동을 하는데, 혼자 하는 사람도 있고, 여럿이 같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리듬에 맞게 춤을 추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종루와 고루는 들어가 볼 수도 있습니다만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종루와 고루를 지나면, 그 유명한 스치하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스치하이에서는 배를 빌려 야경을 보며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고, 한적하게 산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여기까지 오느라 완전히 지쳐 스치하이를 구경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는데요, 사람도 많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회양부' 라는,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의 지점이 있어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지점은 옹화궁 건너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운하가 이 스치하이까지 이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날씨가 좀 덜 더웠더라면 스치하이를 거닐며 그 유명한 스치하이의 야경을 볼 수 있었을텐데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던 난뤄구샹 구경이 의외로 재미있어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요, 막상 뭐 볼게 있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딱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다만 그냥 평소에 볼 수 없던 다양한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외 여행을 나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베이징에 들른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들른다면 맛있는 밀크티를 들고 좀 더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은 곳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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