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aiyang Fu in Beijing, 2024
보통 중국 4대 요리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중국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지형과 기후가 다양하고, 또 그에 따라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요리가 발달해 왔습니다. 지금이야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재료를 구해 요리를 할 수 있지만, 과거 유통망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러한 기후와 지역이 음식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요리도 각자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4대 요리라는 표현은 다양한 지역 요리중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일종의 가장 큰 대분류로서의 요리 계통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는 아주 먼 과거부터 사용된 개념은 아니고, 비교적 근대의 개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식 중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산동 요리입니다. 가장 친근한 요리죠. 제가 여행한 베이징 요리도 이 산동 요리에 속합니다. 산동 지역은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나라였던 노나라의 근거지로 그 역사가 깊은 곳이기도 하고, 명, 청대에는 황궁이 자리한 곳이었기 때문에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베이징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지만, 산동반도 자체는 바다에 접해 있기 때문에 해산물 또한 풍부했던 곳이죠.
또,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휩쓴 음식, 훠궈의 본고장인 사천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천짜장'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는데요, 내륙인 사천은 고추의 매운 맛이나 사천후추의 얼얼한 맛을 활용하여 '마라'한 맛을 냅니다. 이 사천후추의 얼얼함은 묘하게 중독되는 독특한 맛인데요, 베이징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이디라오에서부터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킹스 조이의 음식까지 이 얼얼한 맛을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요리중 가장 고급 요리라고 손꼽히는 요리인 광동요리도 빠질 수 없습니다. 광동요리는 우리에게 고급 요리로 알려진 샥스핀, 제비집 등이 속하는데요. 중국의 미슐랭 3스타 고급 레스토랑들은 상당 수 이 광동 요리, '칸토네제' 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동성과 홍콩, 마카오 일대에서 유명합니다.
마지막 요리는 아마도 가장 생소하실, 장쑤 요리입니다. 머릿속에 중국의 지도를 떠올려 보면, 베이징 인근을 산동 요리, 내륙의 사천 지역을 사천 요리, 홍콩과 마카오 일대의 가장 남쪽을 광동 요리라고 보면, 베이징과 홍콩 사이의 넓은 지역 중 바다에 접해 있는 상하이와 강소성 일대의 요리가 바로 이 장쑤 요리입니다. 상하이 요리는 제법 알려져 있는 편인데, 이 상하이 요리나 난징 요리 등이 이 장쑤 요리에 해당합니다.
이 장쑤 요리의 근간을 이루는 요리 중 하나가 바로 '회양 요리' 라고 합니다. 회양은 회안부터 양주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양주라는 표현이 익숙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손오가 도읍했던 건업 등이 이 양주 일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읽으며 오나라의 애매함(?)이 항상 의아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유비의 촉나라는 한 왕조 부흥이라는 깃발 아래 끊임없이 북벌에 나서는데, 오나라는 지도로 보면 땅도 위나라 못지않게 넓은데 딱히 천하통일같은 대업에는 영 의지가 없는 것 같았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이 남쪽 지방은 사실상 황무지로, 오나라 당시쯤에나 개발이 시작되던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땅은 넓은데 아직 생산력도 특별히 높지 않고, 통제는 더더욱 되지 않는 지역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 오나라 시절 개발이 시작되고, 이후 수나라는 대운하를 개통하여 화북과 강남을 연결하게 됩니다. 강남의 경제력은 오히려 화북 지역을 앞서게 되었고, 이 회양 일대에는 강을 통해 사천과 형주 등지에서 오는 풍부한 물산, 개발된 남쪽 지역과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식자재 등으로 인해 요리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이징을 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인 베이징 덕의 원형 또한 장쑤 요리의 한 갈래인 난징 요리의 '옌수이야' 가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죠.
상하이나 장쑤성에 가본 적이 없어 이 계열의 요리를 접해볼 일이 없었는데요, 베이징에 이 회양 요리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인 'Huaiyang Fu', 우리 식으로 읽으면 '회양부' 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다만 상당수의 베이징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그렇듯 이 식당도 몇 곳의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을 받은 지점은 융허궁 근처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너무나도 더웠던 베이징의 7월, 난뤄구샹을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도 땀이 흐르기 시작한 날씨였습니다. 스치하이의 야경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지만, 이 많은 인파가 만들어 내는 열기를 견디면서 스치하이를 산책할 체력이 없었습니다. 사실 입맛도 영 없었지만, 식사를 하지 않고 들어가면 아쉬울 것 같아 근처 식당을 찾던 중 '회양부' 의 스치하이 지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Dongcheng에 있다는 지점에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일정상 맞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 운 좋게 시간과 장소가 맞아 떨어졌습니다.
내부는 일반적인 고급 중식당 느낌인데, 베이징보다는 마카오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의 인테리어기도 했습니다. 안쪽으로 공간이 더 있는 것 같고, 바깥쪽으로는 이렇게 홀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리가 있어 어렵지 않게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현지의 중식당에는 이렇게 두 개의 젓가락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양식과 달리 중식은 하나의 큰 접시에 음식을 담아 내고, 이를 덜어 먹는 식이기 때문에 덜어먹기 위한 젓가락을 하나 더 줍니다.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젓가락으로 음식을 자신의 개인 접시에 덜고, 다른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가운데 놓인 음식에는 개인이 입에 댄 수저는 닿지 않으니 위생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죠.
작은 복숭아 같은 과일이 웰컴 디쉬처럼 놓여져 있습니다. 회양부는 가격이 아주 비싼 식당은 아니었습니다만, 전반적인 인테리어나 기물, 분위기나 간단한 과일 등 전반적으로 첫 인상이 괜찮은 식당이었습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날 너무 덥고 힘들어서 회양 음식을 다양하게 먹어본다기 보다는 그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아무 거나 주문해서 먹었다는 점인데요, 그만큼 너무 힘든 하루기는 했습니다. 생선 요리를 하나 주문하려고 했는데, 조리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민물 게 요리를 주문할 정도였죠.
살짝 엿볼 수 있는 회양 요리의 특징. 회양 요리는 칼솜씨가 좋은 요리사들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단순한 채소 볶음이지만 새 모양으로 당근을 오려 내어 멋을 살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채소 볶음은 어느 식당이던 주문해서 실패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 채소볶음과 달리 센 불에서 빠르게 익혀내어 아삭한 식감과 푸릇한 색감이 잘 살아 있고, 또 보통 닭 육수 등을 넣어 같이 볶기 때문에 채소의 맛과 육수의 감칠맛이 같이 느껴집니다. 이 요리도 어중간하게 익혀 채즙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빠르게 강한 불로 잘 볶았습니다.
다음은 이 식당의 추천 메뉴였던 포크번. 밑을 기름으로 지져서 바삭한 식감을 살렸습니다. 안쪽의 육즙도 촉촉하게 살아 있었고, 아래 지진 부분에는 깨를 잔뜩 묻혀 고소한 맛이 납니다.
색감이 좋습니다. 지친 입에는 개인적으로 아삭한 채소볶음이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색감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장쑤 요리의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마지막에 나온 요리인 민물 게와 대비하면 더욱 잘 드러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포크 번은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든든합니다.
회양 요리는 아니지만 하나 같이 주문한 광동식 크리스피 치킨.
베이징에 오리가 있다면 광동에는 크리스피 치킨이 있다고 합니다. 회양 요리도 아니고, 북경 요리도 아니긴 하지만 홍콩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같이 주문했습니다.
반마리 기준으로 128위안, 우리 돈으로 3만 원이 되지 않는 가격입니다. 물론 치킨을 생각하면 두배 가까운 가격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광동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급 식당에서는 훨씬 비싸기도 하고 대표 메뉴로 꼽기도 하는 음식이니 이 정도면 저렴한 가격이 아닌가 (아니면 너무 더워서 정신이 없었거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크리스피 치킨의 단면. 중국에서는 닭이나 오리, 거위를 자르는 방식이 우리와 달라 이렇게 뼈 째로 잘라 버립니다. 껍질은 아주 바삭하고, 안쪽은 그렇게 정육을 해서 그런지 그런 부분만 냈는지 아주 촉촉하고 기름이 올라 있습니다.
마지막 요리로 나온 민물게 요리입니다. 색감이 정말 예쁩니다.
녹색의 야채볶음과 붉은 색의 민물게 요리를 같이 놓으면 정말 그 색이 예쁜데요, 사실 피곤해서 입맛이 별로 없었는데 은근히 자극적으로 살짝 매콤하고 짭짜름한 맛이라 생각보다 잘 먹었습니다. 게는 하나하나 잡고 살을 발라 먹어야 하니까 다소 번거로움이 있기는 합니다만,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먹을 만 한 맛입니다.
사실 장쑤 요리의 한 갈래인 상해 요리에서는 이 민물게가 굉장히 유명한 요리입니다. '따자셰' 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저는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중국 음식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비중 있게 다룰 만큼 유명한 요리고, 또 게 한마리가 상당히 비싼 고급 요리입니다. 상해 요리와 인접한 회양 요리 또한 다양한 민물 생선을 이용한 요리가 유명한데, 게 요리 또한 맛이 좋았습니다.
여담으로, 저 게 아래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흰 가래떡이 깔려 있습니다. 딱 떡국 떡이었는데, 이 짭짜름한 양념하고 같이 먹으면 맛이 괜찮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약간 간장 떡볶이 같은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대표적인 장쑤 요리 중 하나인 사자두 같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봤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제가 주문했던 음식들도 맛이 좋았지만, 이왕이면 장쑤나 회양의 대표 요리를 먹어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그런 아쉬운 마음이 새로운 여행을 결심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척 더웠던 4박 5일간의 베이징 여행은 이 날로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4일 차에는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좋았던 북해공원과, 현재 가장 맛있는 북경오리 식당으로 꼽힌다는 Duck de Chine, 그리고 융허궁과 베이징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King's Joy를 방문했습니다. 하나씩 기록을 남겨 보려고 합니다.